문재인 대통령의 개헌발의로 정치권은 물론 온 나라가 들썩인다. 이번 개헌안은 통치구조에서는 4년제 대통령 중임제를, 기본권에서는 토지공개념 도입이 골자를 이룬다. 4년 중임제는 미국식이다. 미국과 다른 점은 부통령 대신에 국무총리를 그대로 둔다는 것이다. 미국 건국 초기에 헌법의 아버지들은 몽테스키외의 위대한 착각에 힘입어 권력분립 이론을 기반으로 대통령제를 창안했다. 그러나 대통령제는 왕들이 사라진 제3세계에 수출되면서 카를 뢰벤슈타인의 표현처럼 "민주주의에 대한 죽음의 키스"로 변모해버렸다. 대통령제에 대한 의회나 사법부 또는 언론의 견제장치가 미흡했던 탓이다.
대통령제의 부작용을 고려한다면, 국민들에 의해 선출되는 대통령이 외교와 문화·교육을 담당하고 의회 다수당 대표인 총리가 정치와 경제·사회를 관장하는 '내각·통령제'가 바람직스럽다. 대통령은 명칭 자체에 '명령(권력)이 통합되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므로 단순히 '통령'이라고 부르는 편이 좋다. 내각·통령제는 단순한 이원정부제가 아니다. 그러나 여론이 대통령제를 선호하고 있어 대안으로 부통령제를 제안한다. 권력구조는 통치방식에 해당하므로 얼마든지 타협이 가능하다.
우리나라는 식민통치 후 왕정복고를 단행하지 못했기 때문에 내각제의 기반이 약하다는 주장이 바로 대통령제 찬양론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어전회의보다 더 근엄하고 반대토론이 허용되지 않는 국무회의나 참모회의는 한국 대통령제의 경직성을 잘 설명해준다. 지방분권 이전에 '대권(大權)', 즉 대통령의 권력을 축소하면서 권력분립의 원리를 실천해야 한다. 부통령제는 내각제의 대안이 될 수 있다.
대통령 앞에서 다소 방자한 자세로 토론하거나 당당하게 사퇴 성명서를 발표하는 미국 참모들이나 장관들의 초상은 대통령제의 내부통제가 왕정의 상소제도에 못지않음을 시사한다. 대통령의 권력이 분할되면 대통령제의 경직성도 완화될 것이다. 대통령의 권력을 성공적으로 제어할 수 있다면 반세기 동안 실험을 거친 대통령제를 포기할 이유가 없다. 이제 와서 대통령제를 폐지하기에는 그 실험에 너무 많이 피를 흘렸다. 물론 계속 실패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실패를 두려워한다면 민주주의의 발전도 없다.
어떤 의미에서는 내각제를 완수하기 위해 왕정복고를 단행하는 것보다 대통령의 권력을 분할하는 편이 훨씬 쉬울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남아 있는 문제는 대통령의 권력을 어떻게 분할하고 통제할 것인가다. 우선 대통령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가장 필요하다. 박정희에 대한 우상화에서 보듯 대통령은 왕이 아니다. 심지어 왕조시대 왕도 갖가지 통제를 받았다. 임명직 국무총리보다는 선거직 부통령이 내부제어에 훨씬 더 효과적이다. 내부통제도 필요하다. 대통령의 24시간은 공공정보이다.
아울러 권력구조의 개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민주권 원리의 실천이다. 헌법 제2조 제1항에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원칙만 규정되어 있다. 실천경로가 미흡한 주권재민(主權在民)과 국민주권(國民主權)을 구체화하기 위해서는 국민주권법을 제정해야 할 당위성과 필요성이 절실하다. 그동안 다수 국민들은 이번 기회에 국정개혁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헌법개정 권력의 주체로서 주권을 행사하려 했다. 그러나 정작 국민주권을 조직하고 주권재민을 실천에 옮길 국민주권법과 같은 절차법이 없어서 거리에서 하릴없이 세월을 보낸 게 사실이다.
여야 정치지도자들의 셈법은 국민정서와 괴리를 빚는다. 대통령과 달리 국회는 국민들의 눈에 정쟁 장소로 비치기 쉽다. 여당은 높은 지지도를 자랑하지만 제도개혁과 정책추진 측면에서 보자면 여당의 프리미엄은 대통령의 역량에 힘입은 바가 크다.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국제정치 구도에서 또 사회경제적 난제들이 국가번영을 호시탐탐 노리는 상황에서 지금이야말로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개혁을 이뤄내야 할 시기다. 하지만 국정의 전당에서 매일 상대방의 단점만 시비하는 대치상황들이 아쉽다. 국민들의 좌절이 깊어지면 "내가 이러려고 국민 노릇 했나"라는 풍조가 생길지도 모른다. 국민들이 직접 발안하고 국정에 참여하여 대의제 민주주의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국민주권의 제도화가 급선무이다.
전재경 사회자본연구원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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