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통상전쟁 전운 고조)세탁기·철강 수출길 비상…반도체는 '기우'
철강업계 수출길 막힐라 노심초사
반도체는 과점구도, "우려는 지나쳐"
세탁기 이후 냉장고 TV도 보복관세 우려
2018-02-20 18:28:31 2018-02-20 18:28:31
[뉴스토마토 이지은·신상윤·왕해나 기자] 미국 정부가 한국산 세탁기, 태양광전지·모듈에 대한 세이프가드(긴급수입조치)에 이어 강력한 철강 수입 규제안을 꺼내들었다. 연초부터 국내 산업 전반으로 수출전선에 적색등이 켜졌다. 미국 상무부가 한국을 포함한 주요 철강 수입국에 높은 관세 부과를 권고하는 방안을 발표하면서 대미 수출에 직격탄을 예고한다.
 
미국 정부의 보호무역주의가 국내 산업 전체로 옮길 수 있다는 우려도 커졌다. 나아가 한국산 냉장고와 TV도 관세 영향권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특허 침해 제소로 우회적인 압박을 받고 있는 반도체도 안전지대는 아니지만 그나마 과점시장의 주도권을 삼성, SK가 쥐고 있다.
 
철강업계 수출길 막힐라 노심초사
 
20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는 지난 16일(현지시간) 철강수입이 미국 경제 및 국가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무역확장법232조 보고서를 백악관에 전달하고 철강 수출국에 고관세를 적용하는 등 수입규제에 나서야 한다고 권고했다. 무역확장법232조는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될 경우 수입제한이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한국·중국을 포함한 12개 국가에 대해 최소 53% 이상의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이 권고됐다. 모든 외국산 철강재에 최소 24%의 관세를 부과하거나 대미 수출량을 지난해의 63% 수준으로 제한하는 방안 등도 거론됐다.
 
한국 철강업계 가운데 세아제강과 휴스틸, 넥스틸 등 강관 제조사들의 피해가 클 전망이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철강제품의 대미 수출 규모는 355만t이다.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인 56%를 강관이 차지하고 있다. 강관 제조사들은 최대 1조원이 넘는 매출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상무부의 권고를 인용해 관세를 부과할 경우 강관 제조사들은 해외 생산공장을 활용할 계획이다. 세아제강은 지난해 6월부터 미국 내 제조법인 자회사 SSUSA를 통해 상업생산을 하고 있다. 연간 15만t 규모다. 넥스틸은 올 상반기 중 국내 생산공장 가운데 일부를 미국으로 옮기기로 했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대응과 별도로 정부의 외교적 해결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53%의 관세가 부과되면 사실상 미국 수출에 의미가 없는 것"이라며 "공장을 해외로 옮긴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닌 만큼 정부가 외교적으로 접근해 최악의 상황에 이르지 않도록 협상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정용강관. 사진/세아
 
반도체는 과점구도, 미국이 불리
 
반도체업계는 통상압박이 반도체 특허 침해로 확대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실제 ITC는 지난달 19일(현지시간)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제조업체와 이를 활용한 PC 제조사를 상대로 관세법337조 위반 여부 조사에 착수했다.
 
앞서 미국의 반도체 업체 비트마이크로는 국내 SSD 제조사를 비롯해 HP, 델, 레노버 등 PC 제조업체들이 특허를 침해해 관세법337조를 위반했다고 소송을 제기했다. SSD는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를 뛰어넘는 대용량 저장장치로 낸드플래시 기반으로 제작된다.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삼성전자는 지난해 38% 점유율로 압도적 1위를 기록했다. SK하이닉스도 11%로 5위다. SSD 시장에서는 삼성전자가 점유율 1위를, SK하이닉스는 7위를 차지하고 있다. 비트마이크로가 제소한 특허 소송의 대상은 SSD 외에 PC 제조업체도 포함됐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점유율을 고려하면 사실상 국내 기업들이 주 타깃이라는 관측이다. 
 
이번 조사가 관세법337조에 따른 제소로 이뤄진다는 점에서 향후 수입 규제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337조는 미국 기업이나 개인의 지적재산권을 침해했을 경우 ITC가 수입 금지를 명령할 수 있는 조항이다. 다만, 반도체는 공급처가 제한된 과점시장인 만큼 미국이 국내 업체의 수입을 제한하면 자국 수요기업의 구매비용이 오르게 된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트럼프 정부의 통상 압박 분위기에 따라 이번 일이 정치적으로 흘러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도 "이번 제소는 통상 이슈가 아닌 특허 이슈"라고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SK하이닉스의 청주 반도체공장 생산라인. 사진/SK하이닉스
 
세탁기 이후 냉장고·TV도 보복관세 우려
 
가전업계도 노심초사다. 앞서 안전지대로 꼽혔던 한국산 세탁기가 관세 영향권에 들어간 데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한국산 TV에 대한 관세를 언급해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3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무역 회의에서 "미국에서는 TV를 만들지 않고 대부분 한국에서 수입하는데 이는 한국이 덤핑했기 때문"이라며 "상호세(reciprocal taxes)를 부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LG전자는 미국에 수출하는 TV를 멕시코 공장에서 생산한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적용받는 멕시코에서는 미국 수출 TV에 관세가 붙지 않지만 미국이 NAFTA를 파기할 경우 멕시코산 TV에 대해서도 30% 이상의 높은 관세가 부과될 수 있다.
 
또 세탁기 세이프가드를 청원한 월풀이 냉장고건을 다시 제소할 가능성도 있다. 월풀은 지난 2011년 4월 ITC에 삼성전자와 LG전자 냉장고에 대한 반덤핑 관세 부과를 요청했지만 모두 '혐의없음'으로 기각된 바 있다.
 
가전업계 관계자는 "무역 불균형 등을 내세우며 보복성 높은 관세를 부과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이지은·신상윤·왕해나 기자 jieune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나볏 테크지식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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