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우찬 기자] 2013년 남양유업 사태는 ‘갑질’을 사회 바깥으로 끌어냈다. 본사 직원의 대리점주에 대한 폭언이 담긴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파장을 불러일으킨 이 사건은 한 직원의 도를 넘은 막말을 넘어 제품 밀어내기, 보복성 계약 해지 등 구조적으로 만연한 갑의 횡포를 드러냈다. 남양유업 사태를 계기로 을(乙)로 표현되는 중소 자영업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조직인 을비대위가 꾸려졌고, 현재 전국을(乙)살리기운국민운동본부라는 공식 조직으로 발전했다. 김동규 조직국장은 “이익단체로서 상인들의 연합이 아니라 생존권과 사회적 가치, 연대, 공동체를 위한 상인단체를 만들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 국장은 지난 9월14일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 사퇴를 위한 릴레이 1인시위도 했다.
왜 박성진 중기부 장관 후보자 반대 1인시위를 했나.
박 후보자는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업계 관련 철학이나 경험이 없는 분이었다. 시민으로서 가져야할 역사적 의식이나 종교적 다양성을 존중하는 의식이 결여됐다. 지켜보고만 있어서는 안되겠다고 마음먹고 작은 목소리라도 내게 됐다. 유통상인연합회에서 토론을 거쳐 릴레이 1인시위를 하자고 결론이 났다. 사퇴는 사필귀정이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후보였다. 검증이 부실했다.
홍종학 후보자는 최근 중기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됐는데.
완벽한 인물은 없겠지만 중소상인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철학을 가진 분이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중기부는 중소기업, 벤처기업, 소상공인을 아우르는 부서다. 홍 후보자가 을지로위원회 위원으로 있을 때 전국을살리기국민운동본부와 입법과정이나 현안에 함께 대응을 한 적이 있다. 비정규직이나 소상공인 관련 문제에 대해 현장 감각은 있는 분이다. 교수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에서 활동을 할 때도 경제민주화·재벌개혁 전문가로 통했다. 문재인 정부의 첫 번째 중기부 장관으로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청문회 과정을 철저하게 거쳐야 하지만 불필요한 이념 논쟁이나 정치적 공세는 안 된다.
전국을살리기국민운동본부는 최근 어떤 문제에 집중하고 있나.
재벌유통업체들의 경영전략은 백화점-대형마트-SSM(Super Supermarket·기업형 슈퍼마켓)으로 이어진다. 최근에 새롭게 복합쇼핑몰이 나타났다. 하남 스타필드, 타임스퀘어 등이다. 재벌유통기업들이 대형마트 과열 출점 경쟁으로 수익성이 떨어지니까 복합쇼핑몰을 탄생시켰다. 규모 자체를 기존 대형마트보다 10~20배 더 크게 만든다. 대형마트 때문에 골목상권, 전통시장이 많이 무너졌는데, 복합쇼핑몰은 워낙 규모가 커서 기존 상권에 미치는 파괴력이 대단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 막 생기고 있는 초기 단계라 시민이나 상인이나 체감은 적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진정한 상생을 위한다면 기존 상권에 진입을 차단한다든지 법·제도적으로 규제할 필요가 있다. 골목상권이 속수무책으로 무너질 수 있다.
카드수수료 문제도 있다. 카드수수료율은 대형마트가 1%대인데 중간층 상인들은 2%대이다. 출발선 자체가 다르다. 대형마트 수준으로 공정하게 카드수수료를 맞춰야 한다. 예를 들면 동네에 있는 규모가 좀 큰 마트라면 카드수수료가 한 달에 2000만~3000만원이 나온다. 이것만 줄이면 마트 직원의 최저임금을 올린다든지 지역 공동체를 위해 기금으로 쓴다든지 할 용의가 있다.
임대료 문제도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이다. 상권을 살려놓으면 상인이 쫓겨난다. 서울의 경우 환산보증금(보증금+(월세×100))이 4억원 이하일 때에만 권리금을 인정한다. 보통 월세 200만~300만원에 보증금을 합하면 4억원이 넘기 일쑤다. 상인들은 아예 보호를 받기 어려운 현실이다. 환산보증금 제도를 유지하려면 기준을 10억원 이상으로 바꿔야 한다. (환산보증금이 서울 4억원, 수도권과밀억제권역 3억원, 광역시 등 2억4000만원을 넘으면 건물주는 월세를 올리는 데 제한이 없다) 계약갱신권도 최소 10년(현행 최대 5년간 계약갱신 요구 가능) 보장해야 한다. 1년 장사하고 쫓겨나면 누가 인테리어에 투자하고 장사하겠는가. 건물주와 임차인 상생할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100년 가게 나오려면 100년 장사를 할 수 있는 구조가 돼야한다. 임대료 걱정 없이 장사할 수 있는 환경으로 변화가 필요하다.
문화도 바뀌어야 한다. 일본의 경우 건물주가 바뀌지 장사하는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건물 가격이 올라가면 상인들 덕분에 올랐다는 걸 안다. 집값이 오르면 팔고 나갈지언정 장사하는 사람을 내쫓고 다른 사람을 들여와 임대료 차액을 노리지 않는다. 장사하는 사람의 권리를 지킨다. 건물가격 상승은 상인들이 만든 무형의 가치다. 이 같은 사회적 가치가 인정받아야 한다.
최저임금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나.
최저임금 인상, 최저임금 1만원에 동의한다. 소비자의 주머니가 든든해져야 가게에 가서 소비할 능력이 생긴다. 소비자가 노동자이고 아르바이트생이다. 노동자든 상인이든 자기 노동력을 투하해 돈을 버는 사람이다. 자영업자 중에 스스로 일하지 않는 사람은 소수다. 노동자와 자영업자는 현실이 비슷하다. 진정한 을(乙)들의 연대를 해야한다. 우리끼리 밥그릇 뺏는 싸움이 아니고 재벌들의 독식 구조를 깨는 문제다. 현실이 녹록하지 않은 건 사실이다. 먹고 살길 바빠서 최저임금 인상 자체가 공포감으로 다가오는 부분이다. 카드수수료 인하, 중소상권 보호 등 정책으로 최저임금 인상에 대처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해야한다.
또한 노동자도 상인도 노동시간이 단축돼야 한다. 일만 하고 돈만 버는 게 행복일까. 철학의 문제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전통시장 상인들은 설, 추석 등을 제외하면 쉬는 날이 거의 없다. 못 쉬기도 하고, 쉬지 않는 문화도 있고. 관리비, 임대료, 인건비 등을 해결해야 하니까. 상인들도 노동시간 단축을 원한다. 긴 안목에서 노동시간을 단축해야 한다. 상인 간 연대도 필요하고 정책 모델도 만들 수 있다고 본다. 노동시간이 줄어야 문화생활도 즐기고 정치에 관심도 가질 수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소상공인의 상생 가능한가.
재벌 1, 2, 3세까지 확장되면서 가족 간에 더 지분을 나눠먹어야 하는 구조가 됐다. 나눠줘야 할 사람이 많아지는데, 해외로 진출하거나 첨단 산업·기술 쪽으로 눈을 돌리는 게 아니라 골목상권에 침투해 미장원, 빵집, 떡볶이를 파는 거다. 재벌 스스로 상생에 응할지 의문이다. 독식 구조를 무너뜨릴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상생 기금 몇 억원 준다고 해서 상생이 되는 게 아니다.
앞으로 이익단체로서 상인들의 연합이 아니라 생존권과 사회적 가치, 연대, 공동체를 위한 민주적인 상인단체를 만들어나갈 계획이다. 상인들도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갖고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상가임대차보호, 카드수수료 인하, 중소기업 적합업종 등 당면한 과제를 조금씩이라도 해결해나가야 한다. 상인들이 ‘함께 행동하니 해결이 가능하다’는 효능감을 느낄 수 있는 게 중요하다. 작은 결과라도 조금씩 달성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김동규 조직국장이 지난 9월14일 오후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박성진 당시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 사퇴 릴레이 1인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우찬 기자 iamrainshin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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