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성공의 새로운 정의
2017-07-03 06:00:00 2017-07-03 06:00:00
한국에서 성공은 무엇으로 정의될까. 셀 수 없는 부를 거머쥐면? 사법시험·행정고시 같은 국가시험에서 1등을 차지하면? 이런 경우 대개 성공으로 정의되곤 한다. 스포츠로 좁혀 보면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되는 것, 그 중에서도 1등의 상징인 금메달리스트라면 성공으로 분류된다.
 
손기정 선생은 역사적 암흑기였던 일제강점기 한국을 세계에 알린 인물이다. 우리는 대부분 그를 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당당히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메달을 수여하는 단상에는 손 선생과 함께 또 다른 한국인이 있었다. 남승룡 선생. 그는 3위로 동메달을 획득했다. 손 선생에 가린 그를 우리는 많이 알지 못 한다. 언론에서 남 선생은 ‘비운의 마라토너’로 기억될 뿐이다.
 
“우리는 아버지께서 손기정 선생님의 그늘에 가렸다고 생각해 본적은 없습니다. 아버지께서 3등하신 것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1등이 우대받는 것은 당연하죠. 하지만 마라톤발전을 위해 노력한 아버지는 영원히 존경받으실 겁니다.”
 
지난 2001년 2월19일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병상에 있는 남 선생을 두고 딸 순옥씨는 이같이 말했다. 남 선생이 별세하기 꼭 하루 전이었다.
 
남 선생을 우리는 손 선생에 가린 ‘비운의 마라톤 영웅’이라고 불렀다. 그는 손 선생에 가려 야인처럼 살았다. 생전에 전남대 교수와 대한육상연맹 이사를 지냈을 뿐 지위에 큰 욕심을 갖지 않았다고 한다. 겸손하게 뒤에서 묵묵히 마라톤 발전을 바랐다.
 
그의 삶 또한 그랬다. 남 선생은 광복 이후 1947년 마로토너로서 황혼기에 접어든 36세 나이로 보스턴마라톤대회에 나섰다. 자신이 메달을 따려고 선수로 전면에서 뛰는 게 아니었다. 후배 서윤복 선생의 페이스메이커 구실이었다. 이 대회에 출전하기 전까지 서 선생은 국내대회만 두 차례 뛰었을 뿐 풍부한 경험은 없었다. 서 선생의 부탁을 받은 남 선생은 선수로서도 실력이 뒤처지지 않았지만 후배 사랑으로 코치 겸 페이스메이커로 나섰다. 서 선생은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그 뒤에는 남 선생이 있었다. 서 선생은 생전에 “그분이 옆에서 뛰며 끌어주지 않았다면 결코 우승할 수 없었다”고 했다.
 
우리 사회는 남 선생을 성공한 마라토너로 기록해야 한다. 실패한 2인자가 아닌 자신의 삶에 온전히 다다른 성공한 삶을 산 인물이라고. 성공을 새롭게 정의해야 한다.
 
이우찬 사회부 기자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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