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우리나라 재정은 비교적 건실하게 관리돼온 것으로 인식되지만, 최근 수년간 국내외적 요인들이 중첩되면서 그 적자폭이 증가한 바 있다. 실제 우리나라의 관리대상 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1% 내외 수준에서 안정적으로 유지돼 왔으나,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의 대응과정에서 대폭 증가한 바 있으며, 이후 대규모 외부 충격은 없었지만 사회전반적인 복지수요 증가와 관련 재정지출이 확대되면서 재정적자의 폭이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 재정상황을 낙관하기 어려운 이유는, 향후 개선 여지가 좀처럼 예측되지 않는다는 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재정의 기초는 경제상황이다. 즉 생산, 소비, 분배로 대변되는 경제의 기초체력(fundamental)이 재정여건을 결정하는 것이다. 국내 산업은 이제 본격적인 저성장 기조에 진입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향후 세수입의 극적인 증가를 기대하기 어려움을 의미한다. 쉽게 말하면, 많이 벌고(생산), 많이 쓰는(소비) 가운데 세금수입의 자연스러운 증가도 기대할 수 있는 것인데, 많이 벌고 많이 쓰는 기본적 여건에 대한 전망이 밝지 않다는 것이다.
반면 정부가 써야할 돈인 재정지출은 지속적으로 증가, 어쩌면 매우 급격하게 증가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에서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인구 고령화 때문이다. 고령화는 그 자체로 경제 활력 저하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노년층이 주된 수혜계층이라 할 수 있는 연금, 보건 등 복지지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에 향후 재정지출의 빠른 증가를 피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심각한 것은 고령화의 문제가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좀처럼 이를 반전시킬 실마리가 찾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재정건전성을 확보하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겠지만, 우리 경제의 안정성과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도 매우 필요한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도 경험했지만, 재정은 단기적인 경제위기에 가장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정책수단이다. 하지만 효과적인 재정대응을 위해서는 재정건전성의 확보가 필수적으로 전제돼야 한다. 즉, 효과적 대응을 위해서는 정부가 쓸 돈이 충분히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실제 글로벌 금융위기를 잘 극복했던 국가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국가재정을 안정적으로 관리해 재정적자가 작은 국가들이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세입을 확충하고, 지출을 관리하여 적자를 안정적 수준에서 관리하는 방안들은 외적으로는 단지 ‘재정이 건전하게 관리되고 있음’으로 표현될 뿐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우리 경제의 위기대응 능력을 강화해 경기 충격을 효과적으로 극복하게 하는 매우 중요한 기능을 수행한다.
즉, 재정건전성은 국가경제의 안정성과 지속가능성을 확보해두는 가장 효과적인 방안인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새 정부에서 가장 중요한 정책목표로 설정해야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재정건전성의 확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향후 어떻게 재정건전성을 확보할 것인가. 기본적인 방향은 세수를 안정적으로 증가시키면서, 재정지출의 증가를 감당 가능한 수준으로 조절하는 것이다. 이번 대선주자들의 공약들 가운데에도 수많은 복지공약들이 포함돼 있다. 어린이들의 교육부터 노년층의 생활안정과 관련된 광폭의 복지정책들이 계획돼 있다.
이러한 정책들 대부분이 현실적인 필요성에서 비롯된 것이니, 무조건적으로 백안시할 필요는 없겠지만 정부가 쓸 수 있는 돈이 제한된 것도 사실이다. 꼭 필요한 일부터, 우선순위에 입각해 사업을 선별해내는 과정도 필수적이다.
사실 이보다 더 어려운 것은 재정수입, 즉 세수를 증가시키는 것이다. 우리의 재정여건 상, 향후 증세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는 재정지출 증가를 감당해내기에는 현재 조세구조의 지속가능성이 높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떠한 방식으로든지 세금은 더 걷어야 할 것이지만, 세금을 증가시키는 것은 경제 활력을 위축시켜 자칫 경기회복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신중히 접근해야한다.
소득세를 올리면 당장 세금이 증가할 수 있겠지만, 일을 해 돈을 더 벌고자 하는 사람들의 의욕을 위축시킬 수 있다. 마찬가지로 소비세를 더 걷으면 덜 쓰고 덜 팔리는, 즉 소비침체를 악화시킬 수 있다. 가뜩이나 장사가 안돼 어려움을 겪는 중소상인들의 어려움이 가중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기업이 여유가 있어 보인다고 법인세를 올리게 되면 기업은 세금부담 증가에 대응해 투자를 줄이게 될 것이다. 투자감소는 경제활력 위축으로 나타나겠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일자리가 함께 감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취업난에 시달리고 있는 청년층이나, 생계를 위해 계속 일을 해야 하는 가장들, 노년층을 생각해볼 때 보다 현명한 판단이 필요해 보인다.
따라서 증세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저 ‘세금을 올리는’ 단순하고 쉬운 일이 아니며,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가급적 최소화하면서 목표하는 세수를 얻어야 하는 대단히 어려운 일인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세금을 더 거두는 일은 ‘부자증세’나 ‘조세정의’라는 감정적 수사에 휘둘려 쉽게 결정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보다 합리적으로는 먼저 얼마를 더 거둘 것인지 그 상한을 먼저 정하고(조세부담율, 국민부담율의 결정), 어떤 세목을 통해 이를 달성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지를 따져봐야 하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반드시 추진되어야 하는 것은 재정준칙을 보다 강화해 적용하는 일이다. 재정준칙은 그 도입형태에 따라 재정수지준칙, 채무준칙, 지출준칙, 수입준칙 등으로 세분화돼있지만, 그 기본정신은 재정지출이 방만하게 증가되지 않도록, 재정이 감내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지출을 통제하는 규율을 의미한다.
실제로 재정준칙은 OECD 국가들 대부분이 도입하여 운영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역시 일부 시행하고 있다. 강력한 재정준칙의 도입과 시행이 각국에 재정건전성에 의미있는 영향을 미치고 있음은 다수의 연구결과들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많은 국가들에서 앞 다투어 재정준칙을 도입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재정준칙이 도입된 국가들의 도입 과정을 살펴보면, 대개는 재정적자의 문제가 심각해진 이후에 건전성 회복을 위해 도입하는 경우가 많지만 어떤 국가들에서는 인구고령화의 진행 등을 의식하여 재정적자를 사전적으로 통제하려는 의도에서 추진한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의 상황은 후자의 성격에 조금 더 가까워 보이지만, 재정준칙의 도입은 더 이상 미루어서는 안 될 것으로 보인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사실 우리나라는 지난 2016년 잘 구축된 재정준칙인 ‘재정건전화법’의 도입을 시도한 바 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이유로 국회의 동의를 구하지 못했고, 결국 입법까지는 이르지 못한 경험이 있다. 기존의 제도나 경제여건을 구조적으로 변화시키는 정책들은 필연적으로 관련 이해당사자들의 갈등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충분한 시간을 두고 점진적으로 추진하되, 당초의 정책의도가 변질되지 않도록 국민들과의 충분한 소통과 합의를 거쳐 보다 강력히 추진함이 바람직할 것이다. 큰 틀에서 국가재정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은 단지 정부의 경제적 형편에 대한 것이 아닌, 국가경제의 전반적 안정성과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매우 중요한 정책과제라 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브리핑룸에서 '국민이 만든 10대 공약'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국가미래연구원·김상겸 단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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