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영기자] 삼성이 "최악은 면했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특검으로 피로도가 높아졌고, 리스크도 여전하지만 산적한 경영 현안에 눈을 돌릴 수 있는 여유는 벌었다. 특히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미래전략실 해체를 비롯한 고강도 인적쇄신에 대한 의지가 확고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조만간 실행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졌다.
삼성은 19일 새벽 이 부회장에 대한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 직후 “불구속 상태에서 진실을 가릴 수 있게 돼 다행으로 생각한다”는 짧은 공식입장을 내놨다. 불구속 상태에서 여전히 수사가 진행되기 때문에 특검을 자극할 만한 발언은 엄격히 자중하는 분위기다. 삼성 수뇌부의 기소 가능성도 열려 있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수사도 계속되고 재판도 기다리고 있어 한숨 돌리는 정도지, (구속영장 기각에)의미를 많이 둘 상황은 아닌 것 같다”며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특검과의 결전에 임했던 삼성 법무팀은 영장 기각을 확신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법무팀이 영장을 받아들자마자 기각을 확신했었다”고 또 다른 고위 관계자가 귀띔했다. 변호인단의 조력도 컸다. 법정 사투 속에 이 부회장을 구해낸 삼성 변호인단은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을 역임하는 등 법리에 정통한 송우철 변호사와 BBK사건에서 특검보를 맡았던 문강배 변호사 등 화려한 면면으로 관심을 모았다.
이 부회장이 풀려남에 따라 오랜 시간 가슴에 품었던 개혁 구상도 현실에 옮겨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미래전략실 해체가 최우선 대상으로 꼽힌다. 이 부회장은 지난달 6일 국회 국정조사 1차 청문회에서 “국민 여러분과 의원님들에게 (미래전략실에 대한)부정적 인식이 있으면 없애겠다”고 말한 바 있다. 앞의 고위 관계자는 “구속됐어도 미전실은 해체할 계획이었다”며 “쇄신에 대한 이 부회장의 의지가 강하다”고 밝혔다. 또 “미전실 공백은 사장단협의회를 운영해 메울 수 있다”며 이미 대안도 마련했음을 시사했다.
복수의 핵심 관계자 등에 따르면, 대국민 약속의 의미를 지니는 국회 발언을 실행에 옮겨 여론의 반전을 꾀할 수 있는 데다, 부친의 그림자가 짙은 미래전략실을 두고서는 '이재용의 삼성'은 실현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현 미래전략실 수뇌부에 대한 불신도 크다는 전언이다. 한 관계자는 "칼을 언제 빼들지 결정만 남은 것 같다"고 말했다.
앞서 2008년 삼성 특검 당시 이건희 회장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미래전략실 전신인 전략기획실을 해체한 선례가 있다. 이후 삼성은 사장단협의회와 각 계열사의 독립경영체제로 운영됐다. 지주회사 체제 전환도 대안이 될 수 있지만 현 시점에서는 여론이나 제도적 난관이 많다는 게 지배적 관측이다. 미래전략실 해체와 동시에 지연돼 온 사장단 인사 및 조직개편도 실행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내부에서는 "특검 수사가 한창이라 변수가 많은 상황에서 미전실 해체는 도움이 안 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한편 뇌물혐의에 대한 소명 불충분으로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SK와 롯데 등 다른 출연 기업들도 구속수사의 위험에서 벗어났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이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이나 승마지원 등 지원 금액이 가장 큰 데도 영장이 기각됐으니 다른 기업들에 대한 대가성 입증이 가능하겠냐는 얘기가 많이 나온다”고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미르와 K스포츠재단에 대한 출연금까지 뇌물죄로 엮은 것이 패착"이라며 "나머지 기업들은 한결 부담을 덜었다"고 분석했다.
반면 특검이 배수진을 칠 것에 대한 우려도 있다. 특검의 다음 타깃으로 거론되는 한 기업 관계자는 “지켜보는 것 외에 달리 의견을 내기는 어렵다”며 “영장을 재청구한 사례도 있었기 때문에 불구속수사로 굳혀졌다고 섣불리 예측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여론에 대한 부담도 커졌다.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이 일제히 반발하고 나선 가운데, 유력 대선주자 중 한 명인 이재명 성남시장은 “대한민국이 재벌공화국임을 입증한 것”이라고 혹평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미 4대 재벌 개혁을 공약했다. 촛불 민심의 위력을 절감한 정치권이 대선을 앞두고 민심에 편승할 가능성도 높다.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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