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영기자] 최순실 게이트가 재계로 번졌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요청으로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대기업 관계자들이 검찰에 줄 소환되고 있다. 이들은 모금을 강요당한 피해자라며 억울하다는 입장이지만 부정에 가담한 공범인 데다, 정권 부역 논란도 끊이질 않는다. 특히 대가성에 따라 범죄혐의가 성립될 수 있어 재계의 긴장감은 극도로 높아졌다.
검찰은 지난달 30일 소진세 롯데그룹 정책본부 대외협력단장(사장)과 이석환 대외협력단 CSR팀장(상무)를, 31일에는 SK그룹 대관 담당 박영춘 전무를 불러 조사했다. 롯데는 계열사를 통해 K스포츠재단에 총 45억원을 출연했다. 이후 재단의 추가출연 요청에 5월초 70억원을 더 냈다가 검찰의 압수수색 직전 돌려받았다. SK도 이미 43억원을 출연한 상태에서 추가로 K스포츠재단으로부터 80억원 출연 요구를 받았다. 정현식 전 사무총장이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과 최순실씨 지시를 받아 출연 요구를 했다고 증언했다. SK 측이 30억원으로 낮춰 역제안했으나 이번에는 최씨 거부로 성사되지 않았다. 검찰은 그룹 관계자들에게 추가출연 요청을 받은 경위와 외부 압력이 있었는지 여부 등에 대해 집중적으로 캐물은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롯데·SK를 시작으로 두 재단에 출연한 나머지 대기업 관계자들도 차례로 소환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삼성과 한화의 경우 최씨의 딸 정유라씨의 승마를 매개로 각종 후원 등을 해왔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황이다. 포스코는 차기 회장 후보로까지 거론되는 실세 황은연 사장이 최씨가 실 소유주로 의심되는 더블루K 측과 배드민턴팀 창단을 논의한 사실로 곤혹스런 처지에 빠졌다. 전임 정준양 회장 시절의 악몽도 되살아났다. 포스코와 함께 주인 없는 기업으로 불리는 KT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재단 출범을 전후해 사면 등 총수의 사법처리 문제와 면세점사업권 등 각종 이권이 걸려있던 그룹들로서는 대가성 의혹마저 불거지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안 전 수석이 대기업에 직접 전화를 거는 등 재단 모금에 개입한 정황이 사실로 확인되면 출연 기업에게도 뇌물죄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고 본다.
한편, 1일 재벌닷컴과 경제개혁연대에 따르면 재단에 출연금을 낸 기업은 모두 53곳이다. 이중 절반에 가까운 23곳이 10억원 이상의 거액을 쾌척했으며, 지난해 대규모 적자 등으로 법인세를 내지 못한 곳도 재단 출연에는 지갑을 열었다. 대한항공은 지난해 적자를 기록해 법인세를 한 푼도 내지 못했지만 재단에는 10억원을 출연했다. 두산중공업도 지난해 적자에도 4억원을 냈다. CJ E&M과 GS건설 역시 적자였지만 각각 8억원과 7억8000만원을 냈고, 2년째 적자인 아시아나항공과 GS글로벌도 각각 3억원과 2억5000만원을 출연했다. 이밖에 금호타이어(4억원), LS니꼬동제련(2억4000만원), GS이앤알(2억3000만원), LG전자(1억8000만원), LS엠트론(6200만원) 등도 출연기업 명단에 올랐다. 대다수 기업들은 재단에 고액을 출연하면서도 이사회 결의를 거치지 않는 등 절차상의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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