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원수경기자] 군부독재정권 시절이던 1980년대 '해방전후사의 인식'과 리영희, 함석헌의 저작집을 펴내고, 외환위기 후폭풍이 한참이던 1990년 말과 2000년대 초 '로마인 이야기'로 큰 반향을 일으킨 한길사가 올해 말 창립 40주년을 맞는다. 1976년 동아일보 해직기자였던 김어호 현 대표는 그해 12월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 한길사를 설립됐다. 김언호 대표는 "한길사 40주년은 한국 현대 지성사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고 자평했다. 그는 "한국 민주주의 운동은 책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역사의 변동 과정 속에 있었다는 것에서 보람을 느낀다"며 지난 시간에 대한 감회를 털어놨다.
김언호 한길사 대표. (사진제공=한길사)
김 대표를 만나기 위해 찾은 경기 파주출판도시 한길사 사옥의 집무실에는 지난 40년간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쌓여있었다. 책장과 책상도 모자라 바닥부터 쌓여있는 수많은 책을 보며 책으로 만들어진 요새 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었다. 낡은 책과 새 책이 한데 뒤엉켜 쌓여있는 그 곳에서 누렇게 바래고 끄트머리가 해진 월간 '사상계'가 눈에 띄었다.
"1961년에 고등학교에 들어갔는데 사상계는 그 전부터 이름을 알았었죠. 사상계는 지금의 월간지와는 다릅니다. 문학과 세계정세, 역사철학, 사회이론이 다 담긴 종합 인문학 잡지라고 볼 수 있어요. 그 책을 읽고 세상 문제에 대해서 눈을 뜨게 됐고 중요한 사상가인 함석헌 선생 같은 분을 만났습니다. 1980년대 함석헌 선생 전집 20권을 만들고 2000년대 들어서 저작집 30권을 만들었습니다. 이번에 다시 40주년을 맞아서 광복절을 전후로 함석헌 선집 3권을 다시 낼 예정입니다. 함석헌 선생은 21세기 아시아에 우뚝 서는 사상가, 한국이 세계에 내 놓을 수 있는 사상가입니다. 그런 분의 책을 40주년에 맞춰서 낸다는 게 기분이 좋습니다."
사상계와 함께 김 대표가 살면서 만난 많은 서점들도 그를 출판의 길로 이끌었다. 부산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그는 고등학교 1학년때 발발한 5·16 군사 쿠데타를 피해 우연히 발을 디딘 보수동 책방골목에서 운명을 느꼈다고 했다. 국제시장 건너편에 있는 보수동 책방골목은 한국전쟁 직후인 1950년대 생겨나 아직도 자리를 지키고 있다. "5·16 쿠데타가 일어날 때 탱크가 서 있어 겁나서 피했는데 주위를 둘러보니 보수동 책방 골목이었어요. 중학교를 다니던 시골에는 책방이 없었는데 보수동에는 책이 정말 많았죠. 보수동은 제겐 책의 고향같은 곳입니다."
신문사 사회부 기자시절 퇴근길에 종종 들렀던 종암동의 파출소 옆 작은 책방도 잊을 수 없는 곳이라고 덧붙였다. "맘씨 좋은 서점 아저씨와 이야기를 주고받다 가끔 책을 한두권씩 샀죠. 그 서점에 드나들었다는 게 굉장히 좋은 추억입니다."
김 대표는 서점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올 4월 전세계 22곳의 서점 탐방기인 '세계서점기행(한길사)'을 펴냈다. 지난 2002년 문을 닫은 종로서적 부활을 위한 운동도 펼치는 등 서점 살리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2000년도에는 우리나라의 서점 수가 3500개였습니다. 그런데 올해 보니 2000개도 안됐어요. 절반 가까이가 줄어든 겁니다. 대신 온라인 서점이 생겼지만 온라인 서점과 오프라인 서점은 다릅니다. 오프라인 서점을 통해서 독자들은 책을 만지고 책과 대화할수 있어요. 인간관계에서도 손잡고 얼굴을 마주하고 숨소리를 들으며 호흡하는게 중요한 것처럼 책과의 대화, 책과의 만남이 중요한데 요즘엔 그런 것을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서점은 진정한 의미의 깊은 사유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우리 사회의 문화적 인프라에요. 서양에서도 한동안 온라인 서점이 강세였지만 이제는 다시 오프라인 서점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고 실제로 오프라인 서점도 늘고 있어요. 요즘 우리도 각성하는 듯 작은 서점이 생기고 있는데 좋은 흐름이라 봅니다. 하지만 좀 더 체계적이고 연륜이 오래된 서점도 있어야 하는거죠."
오래된 서점을 살리기 위해 김 대표는 종로서적 부활을 추진중이다. "종로서적은 국내에서 제일 크고 제일 오래된 서점으로 상징적인 의미가 있어요. 시민들이 십시일반 정신으로 참여하는 방식(크라우드 펀딩)을 생각하고 있는데 종로서적에 대한 추억이 있고 그 곳에서 공부해서 사회적,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함께 할거라 생각합니다. 이익을 도모하는 서점이 아니라 서로가 공동체적인 서점을 하자는거죠."
김 대표는 조만간 서울 순화동에서 새로운 개념의 책방도 선보일 예정이다. 새책과 고서적이 함께 있고 미술작품도 함께 전시되는 공간을 만들어 토론과 회의의 장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아르헨티나의 시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이름을 따와 '인문예술공동체 보르헤스'라고 이름을 붙였다.
"새로운 인문학 운동의 거점을 만들고 싶어요. 사회 각계의 좋은 인사들을 멤버로 모아 같이 공부도 하고 음악회도 열고 고전이나 인문학 강의도 열 생각입니다. 회원들끼리 토론도 하고요. 강연료나 이런 부분 때문에 기본적으로 유료회원으로 운영할 예정입니다. 혼자 공부하면 힘들지만 같이 하면 비용도 더 적게 들거에요."
원수경 기자 sugyu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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