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영·조승희 기자] 정부가 한국전력이 영위하던 전력 판매시장을 민간에 개방하기로 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공기업의 부실경영을 개선한다는 민영화의 취지에도 의구심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15일 전문가들은 공기업의 독점수익을 대기업에 나눠주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당장, 민간 발전사들이 수혜 대상으로 떠올랐다. 여기에다 경쟁을 통해 전기요금이 내릴 가능성도 사실상 제로에 가까워 재벌의 이해를 위해 국민 부담만 가중시킨다는 비판도 뒤따른다.
한전은 지난해 11조3467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전기요금으로 폭리를 취한 것은 아니다. 한전이 다수 발전사들로부터 구매한 전력단가가 낮아지면서 원가 부담이 줄었다. 석탄, 원자력 발전소가 늘어나고 민간에서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가 난립하면서 공급과잉 현상이 벌어졌다. 덕분에 누적 적자에 시달렸던 한전은 2013년부터 흑자로 돌아섰다. 그래도 여전히 부채가 109조원(1분기말 기준)에 달한다. 업황 개선을 계기로 국가경제 부담이던 부채를 낮출 수 있는 기회가 날아갔다.
일반적으로 경쟁구도는 가격인하를 유인하지만 전력시장의 경우 가격인상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국내 전기요금은 주택용이 OECD의 평균 61%, 산업용이 80%로 충분히 낮은 수준”이라며 요금인하에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에너지 신산업 사업자들이 시장에 신속히 진입할 수 있게 배려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자생력을 갖추지 못한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사업자들이 수익을 낼 수 있도록 돕겠다는 뜻이다. 그러자면 요금인상은 불가피하다. 정부와 한전은 그간 전기요금 정상화의 필요성을 줄곧 제기해왔다. 이번 개편의 저변에 요금인상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는 이유다.
전력 판매시장 개방으로 기존 민간 발전사들도 기회를 얻게 된다. SK E&S, GS EPS, GS파워, 포스코에너지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과거 국가적 차원의 전력대란 당시 다수의 LNG발전소를 지어 상당한 이익을 창출했다. 영업이익률이 40%를 넘나들면서 '땅 짚고 헤엄치기'라는 말까지 흘러나왔다. 하지만 원전 운영이 정상화되고 석탄발전소가 늘어나는 등 공급과잉 현상이 빚어지자 수익성이 급격히 추락했다. 적자 위기까지 몰린 민간 발전사들은 정부가 전력수요 예측을 잘못해 과다한 발전소 진입을 야기했다며 책임론을 꺼내기도 했다. 따라서 이들 민간 발전사가 판매시장에서 요금을 내릴 가능성은 극도로 적다. 반대로 한전은 민간 발전사들의 전력판매가격에 맞춰 요금을 인상할 기회를 얻게 된다. 요금이 ‘상향 평준화’될 것이란 얘기다.
스마트그리드 사업을 해온 통신사들이 수혜를 볼 것이란 전망도 있다. 통신서비스와 전력판매를 연계한 결합상품이 일본에선 이미 일반화돼 있다. SK텔레콤과 발전사를 모두 보유한 SK그룹이 상대적으로 사업접근이 용이하다. 송유나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위원은 “일본은 이미 민간 독점체제로 수십년간 운영돼왔고, 이를 깨기 위해 전력사들 간에 경쟁을 붙였다”며 “일본도 민간 개방돼 있는데 우리도 해야 한다는 단순 비교는 옳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또 "민간의 우세한 지배력에 의해 전력시장 전반이 개편될 것"이라며 "특히 민간기업의 수익성 보장을 위해 전기요금 체계 개편이 단행될 것"으로 확신했다.
가스 도매 개방도 민간 발전사들에게는 호재다. LNG를 수입해 전력 생산에 쓰고 남은 것을 팔 수 있다.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민간 발전사들이 LNG를 자가발전용으로만 수입해 쓰고, 남은 물량을 판매하는 것은 금지해왔다”며 “민간 발전사들 입장으로서는 이를 해결하는 게 숙원”이라고 말했다. 준비작업은 이미 진행 중이다. SK E&S와 GS에너지가 총 1조2851억원을 투입해 각각 5대 5 지분을 보유한 LNG터미널(저장탱크)이 내년 1분기부터 단계적으로 상업운전을 개시한다. 선행 투자에 나섰던 양사는 그동안 가스 시장이 개방되기만을 목 놓아 기다려왔다. 포스코도 재무 개선을 위해 2014년 광양LNG터미널 매각을 추진했다가 철회했는데, 이번 개방으로 활용도를 높일 수 있게 됐다.
가스 도매 개방이 소매가격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의견이 나뉜다. 그간 가스공사가 장기계약을 통해 가스를 들여오면서 해외 가스가격이 내릴 때는 제때 대응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민간 사업자가 스팟 물량을 공급하면 단기적으로는 가격이 내릴 가능성이 있다. 이에 대해 가스공사 노조 측은 구매력이 분산되면 도입가격이 더 비싸질 수 있다며 장기적으로 수급 불안을 야기한다고 주장한다. 시장 지배력을 확대한 대기업들이 장기적으로 소매시장까지 진출할 것에 대한 우려도 있다. MB 정부 시절 소매시장의 경쟁체제 도입방안이 검토됐지만 여론 등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됐다.
이재영·조승희 기자 leealiv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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