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보라기자] "아이들에게 존재에 대한 확신을 주고 싶어요. 한 번 더이름을 불러주고, 잘했다고 한 번 더 말하고, 못 해도 괜찮다고 얘기하고요. 무엇보다 아이들이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요. 그렇게 하면, 아이들은 정말 달라지거든요. "
'세상에서 사람들을 가장 많이 움직이게 하는 기업'을 표방하는 휴브는 서울 경기도권 지역아동센터 아동들을 대상으로오렌지클럽 운영을 시작했다. 휴브의 정지혜 대표는 꾸준한 스포츠 놀이를 통해 밝고 긍정적으로 변해가는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을 떠올리며 눈을 반짝였다.
지역아동센터에는 마음이 아프고 사랑이 부족한 아동들이 많다. 경쟁하고 이기는 스포츠가 아닌 모두가 뛰노는 스포츠놀이를 진행하며 격려하고 칭찬했다. 때론 무례하고 버릇없이 구는 아이들때문에 속상할때도 있었지만 사랑으로 보듬었다. 아이들은 바뀌어갔다.
정 대표는 "스포츠는 협동심과 배려심, 사회성 발달과 책임감 등 여러방면의 능력을 키울 수 있는 전인교육적 성격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휴브는 스포츠놀이를 '시스템적'으로 뿌리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동네아이들의 움직임클럽, 오렌지클럽
오렌지클럽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이들. 사진/휴브
정지혜 휴브 대표는 대학에서 체육학을 전공한 뒤 사회적기업 '휴브'를 설립했다. 휴브는 모든 아이들이 다양한 팀스포츠를 쉽게 즐길 수 있는, 동네기반의 오렌지 클럽을 운영하고 있다. Huve 는 Human Movement 의 약자로 사람들의 움직임을 의미한다.
정 대표는 초등학교 내내 다섯시까지 친구들과 공을 차며 놀았다. 축구를 하며 팀플레이의 매력을 느꼈고 살아있음을 온몸으로 체험했다. 체육과 단체 활동의 흥미는 자연스레 체육학 전공으로 이어졌다.
체육학과 재학시절, 강남 지역 어린이들을 위한 놀이 '주말체육 활동'강사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정기적으로 그룹지어 있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체육활동을 진행하는 일이었다. 교육에 지쳐있는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에너지를 발산했다.
정 대표는 "하루는 강남 아이들의 체육 강사 알바를 끝내고 안산 집에 와서 부모님이 하시는 수퍼에 앉아 있는데 동네 어린이들이 외국인들이 즐비한 거리에서 위험하게 놀고 있는거에요. 너무 큰 문화적 괴리에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죠"
부모가 가난하다고 아이들까지 불건강하며 움직임에 제약을 받는것은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어렸을때 움직임 자체에 빈부격차가 있어서는 안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대학생활 내내 체육의 대중화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
V-코치와 놀이를 즐기는 아이들. 사진/휴브
대학 재학 중 잠시 스포츠 마케팅 회사에 다녔지만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체육교사가 되어 현 시스템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스포츠와 경영을 접목한 기업을 직접 만들기로 하고 경영학을 복수전공했다.
비영리단체는 규모가 작고, 사기업을 세우면 사설 학원이 될 것 같았다. '사회적 기업' 이라는 형태가 스포츠의 대중화라는 공익적 성격에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카이스트 사회적기업가 MBA과정에 합격하면서 본격적으로 사업을 구상하기 시작했고, 올해 3월 법인을 설립했다.
휴브는 사람들이 다양한 움직임 활동에 꾸준히 참여할 수 있도록 대상별 움직임클럽을 운영한다. 현재는 초등학교 아동(8세~13세) 대상의 '오렌지 클럽'을 운영하고 있다. 청소년(14세~19세), 청년(20세~39세), 중장년(40세~59세), 실버세대(60세 이상) 대상 등 다양한 연령을 대상으로 한 움직임클럽(000클럽)을 만드는 것이 휴브의 장기적인 목표다.
◇이기고 지는 게임이 아닌 누구나 참여하는 '놀이'
휴브의 오렌지축구 샘플.
우리나라 아이들, 특히 10대 아동과 청소년들의 체육 참여율은 낮은 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 아동들의 학습시간은 늘어나는데 비해 여가시간은 줄어들고 있다. 줄어드는 여가 시간 중에서도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있다. 운동부족으로 인한 비만, 성인병을 유발할 수 있고 정서발달도 해칠 수 있다.
기존 스포츠에 대한 벽도 있다. 이겨야 하고, 잘해야 하는 경쟁일변도의 문화가 아이들에게까지 젖어있어, 잘하지 않으면 아예 움직이지 않는 아이들이 많다고 정 대표는 안타까워했다.
정 대표는 "아이들에게 진짜 필요한 놀이는, 아이들이 서로 함께 몸을 움직이면서 노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스코어를 따져 누가 누구를 이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노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렌지클럽 프로그램은 아이들이 일상 속에서 쉽게 즐길 수 있는 '스포츠의 놀이화(Playfication)와 스포츠를 잘 알기 위한 활동인 '인문적스포츠'로 구성된다. 인문적스포츠란 몸으로 뛰어노는 놀이 뿐 아니라 스포츠활동을 머리로 이해하기 위한 교육을 일컫는다.
휴브는 누구가 다 참여할 수 있도록 다양한 팀스포츠를 놀이화하고 있다. 경기를 위한 연습은 놀이로 하고, 경기는 제도를 바꿔서 진행한다. 오렌지축구, 오렌지농구, 오렌지 럭비 등 세 종류의 오렌지스포츠를 고안했다. 휴브 내 하뭄움직임연구소를 통해 움직임컨텐츠를 꾸준히 개발하고 있다.
예를 들어 오렌지 축구의 룰은 보통의 축구경기와 다르다. 보통의 축구경기는 골을 누가 넣든 모두 1점으로 집계한다. 반면 오렌지 축구는 한명이 골을 넣으면 3점, 동일인물이 두번째 골을 넣으면 1점을 획득하게 된다. 두명이 골을 넣은 팀과 한명이 두 골을 넣은 팀 중 두명이 골을 넣은 팀이 이기는 식으로 게임을 설계해 축구경기라는 놀이에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게 했다. 오렌지축구의 36개 움직임을 만들었다.
휴브는 해당 지역 체육학과 전공학생을 'V-코치'로 교육시켜 아이들의 교육을 담당하게 한다. V-코치에게는 용돈벌이가 되고 아이들은 V-코치를 통해 오렌지클럽에서 뛰어논다. 현재 서울 경기 지역내 V-코치를 20명 가량 확보한 상태다.
◇협동조합 형태로 재정비
뛰어노는 아이들. 사진/휴브
지난해 휴브는 창신동의 지역아동센터를 시작으로 오렌지클럽을 운영했다. 아동센터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보고 동네 주민들이 문의를 해올 정도로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현재 서울시와 경기도 내 12개 센터(25명씩), 280여명의 놀이를 담당하고 있다.
기존에는 자생한방병원 같은 기업후원을 받아 지역아동센터 10곳의 오렌지클럽을 진행했다. 오렌지클럽은 일시적인 지원이 아니라 지속적인 후원이 필요한 탓에 정 대표는 요즘 B2C 형태의 비즈니스를 고민하고 있다.
정 대표는 "협동조합을 만들어 개인별로 3만원 가량을 받고 주말마다 놀이를 진행하는 식의 형태로 새로운 시도를 해볼 것"이라며 "이러한 비즈니스에 기존의 지역아동센터와 초등학교 방과후 프로그램 등을 얹는 방식을 구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범사업으로 '구'단위에 B2C 비즈니스를 진행할 계획이다. 유휴공간 매핑을 통해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공간도 데이터베이스화할 예정이다. 일 년여간 오렌지클럽을 진행하며 겪은 시행착오를 통해 프로그램도 재정비 하고 있다. 서울 경기 권역을 대상으로 오렌지클럽을 운영하지만 수도권 외 지역으로 확장할 계획도 갖고 있다.
연말이 다가오지만 정 대표는 쉴 틈이 없다. 정 대표는 "다시 창업하라면 못할 것 같다"고 손사래쳤다. 처음 사업을 구상하고 지금의 형태로 자리 잡기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내부 시스템을 다잡으면서 콘텐츠도 제작하고 외부활동까지 도맡고 있다.
정 대표는 "오렌지클럽에서 신나게 활동한 초등학생 친구들이 중, 고등학생이 되고 어른이 되어서도 신나게 움직일 수 있는 '000클럽'을 만들어 모든 사람들의 보편적인 활동권을 위해 일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보라 기자 bora11@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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