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가 악화되면서 기업 구조조정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하지만 뼈를 깎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감독 책임을 지고있는 금융당국, 채권단인 산업은행과 시중은행 등이 각자 역할을 지니고 있지만 막상 문제가 수면위로 떠오르면 서로 '폭탄'을 넘기기 바쁜 상황이다.
16일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구조조정은 해당 기업 뿐만 아니라 금융당국, 채권단 등 모두에게 '피'를 묻히는 작업"이라며 "이를 회피하려고 하거나 정치적으로 접근하게 되면 과거 STX, 경남기업 같은 좋지 못한 사례가 계속 반복될 것"이라고 일침했다.
◇금융당국, 경남기업 등 트라우마…부실 책임은 국책은행으로
일단 그동안 기업구조조정의 중재자 역할을 해왔던 금융당국의 감독 범위는 애매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대우조선해양 등 기업부실 우려는 커지고 있지만 과거의 구조조정 개입 트라우마 탓에 선제적으로 나서는 것에 주저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구조조정대상 대기업은 올해 35개로 작년보다 1곳 늘었다. 또 작년에는 포함되지 않았던 전자업계에서도 구조조정 대상 기업이 나오는 등 산업 전반으로 기업 부실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경남기업 사태 이후 구조조정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손으로 작용하던 금감원의 입지는 더욱 약해졌다. 경남기업 구조조정에 개입했던 금감원 전직 임원들이 특혜 의혹으로 검찰 조사를 받자 금감원에는 '구조조정에는 끼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는 분위기가 퍼졌다. 감사원도 보고서를 통해 법적 권한도 없이 구조조정 과정에 개입해서는 안된다며 금감원을 위축시켰다.
이후 불필요한 개입은 막돼 꼭 필요한 의견조정 기능은 살리기 위해 채권단의 동의를 받으면 금감원이 기업구조조정에 개입할 수 있도록 명문화한 기업구조조정촉진법 개정안 발의됐다. 하지만 법무부와 대법원이 반대의사를 보이며 이 역시 불투명해졌다.
그 사이 기업구조조정의 공은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으로 넘어갔다. 대우조선해양 문제는 대주주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것을 이유로 전적인 책임을 산은으로 몰아가는 분위기다. 산은과 함께 1조2000억원 수준의 부실대출을 제공한 수출입은행도 대우조선해양 정상화를 위해 힘을 합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를 두고 금융권 관계자는 "대우조선해양 사태만 봐도 금융위와 금감원이 하나같이 산은에 일을 떠넘기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운신 폭 좁아진 시중은행…공동책임의 늪으로
기업 구조조정에 있어 채권단으로 있는 시중은행들의 운신의 폭도 더욱 좁아지고 있다. 금융당국이 정부 방침에 맞춰 암묵적으로 부실 기업에 대한 자금회수가 쉽지 않도록 압박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대규모 손실에 타격을 입고 있는 국책은행의 우는 소리에 민간 은행들도 공동 책임을 져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이에따라 시중은행 등 채권단이 '공동책임'을 지는 기업구조조정 전문회사가 출범한다.
기업구조조정 전문회사 설립 추진을 위한 투자자 간 양해각서(MOU) 체결 절차가 지난 11일 마무리됐으며 산업·수출입·기업은행 등 국책은행 3곳을 비롯해 우리·신한·국민·하나·농협은행 및 자산관리공사(캠코) 등이 지분에 참여했다.
내달 본계약을 맺고 나면 10월 경 기업구조조정 전문회사가 본격 출범할 것으로 보인다. 참여 기관들은 1조원 상당의 자본금을 조성하고 2조원 상당의 대출 약정도 제공할 예정이다.
하지만 시중은행들은 당국의 계획대로 '시장주도형'으로 추진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품고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1조원 상당의 자본금으로 출자하고 2조원 가량의 대출 약정을 제공하기 때문에 수천억원대 규모의 중소기업 여신만 소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기업 여신을 다루기에는 구조조정 전문회사 규모가 작다는 것이다.
다른 은행 관계자는 "시중은행들이 나눠 같는 지분율을 동일하게 쪼개어 부담을 줄이겠다고 하지만 규모가 큰 산업은행이나 수출입은행과 똑같이 책임을 나눠갖는 것은 무리"라며 "국책은행과 당국은 뒤로 빠지고 민간 은행을 내세우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산업은행은 정부에 대우조선해양 실사가 끝나면 매각작업을 벌일 방침이다. 사진/뉴시스
이종용·원수경·김민성 기자 kms0724@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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