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주가 채권추심원들과의 업무 계약 내용에 지휘·감독 규정을 포함하지 않았더라도 실제 업무에서 지휘·감독했다면, 채권추심원들은 근로자로 인정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번 판결은 단기 근로계약을 맺으면서 지휘·감독 규정을 삭제해 근로자성 인정을 회피한 뒤 실질적으로 근로자들을 지휘·감독해 온 업계의 관행에 제동을 건 것이어서 주목된다.
대법원 3부(주심 김신 대법관)는 김모씨 등 5명이 농업협동조합자산관리회사를 상대로 낸 퇴직금청구소송의 상고심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원고승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되돌려 보냈다고 22일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는 계약서 양식을 변경하면서 업무수행 시간과 장소, 실적관리 등 채권추심원에 대한 지휘·감독 규정을 삭제했으나 계약 체결 이후에도 채권추심원들을 팀별로 관리했고 업무실적에 따라 시상이나 경고 등을 한 점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피고는 계약서 양식이 변경된 후에도 종전 계약서를 사용하는 등 계약서 양식 자체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계약 변경에 대해 원고들에게 제대로 설명을 하지 않은 한편, 채권추심업무는 피고 사업의 핵심업무로서 채권추심 인력이 상시적으로 필요했기 때문에 채권추심원들에 대해 지휘·감독을 하고자 하는 유인이 컸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렇다면 계약서 양식 변경 이후에도 원고들의 업무수행 방식과 피고 지휘·감독 정도가 근로자성을 달리 판단할 수 있을 정도로 실질적으로 변경되었다고 볼 만한 자료가 부족하므로 계약서 양식 변경으로 원고들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게 되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이와는 달리 변경된 계약서 양식에 따라 계약을 체결한 이후부터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원심은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고 판시했다.
김씨 등은 2002년 10월부터 농협자산관리와 채권추심업무계약을 맺은 뒤 6개월 단위로 재계약하면서 추심업무를 해왔는데, 농협자산관리는 김씨 등에게 별도 사무실을 마련해주고 출퇴근 상황과 업무실적 등을 감독하거나 독려하는 등 김씨 등을 지휘·감독해왔다.
농협자산관리는 이후 2008년 2월 자신들과 채권추심업무계약을 체결한 채권추심원들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라는 대법원 판결이 확정되자 근로자로 인정한 계약근거인 출퇴근 관리와 업무실적 등에 대한 감독 규정을 계약서에서 삭제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김씨 등을 실질적으로 지휘·감독했다.
김씨 등은 계약 종료로 퇴사하면서 퇴직금 지급을 요구했으나 농협자산관리는 "계약상 위임계약에 따라 채권추심업무를 수행했기 때문에 근로자로 볼 수 없어 퇴직금 지급 대상이 아니고, 특히 계약 변경 이후에는 지휘·감독한 적이 없기 때문에 퇴직금을 지급할 수 없다"고 거절했다. 이에 김씨 등이 소송을 냈다.
1심은 김씨 등의 청구를 받아들였으나 2심은 계약변경 이후 농협자산관리 사이에는 근로관계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며 김씨 등의 청구 중 일부만 받아들였다.
대법원. 사진/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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