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보라기자] "물은 그냥 '물'로 봐야죠. 미네랄 등 부가적인 얘기를 하면 안 되죠. 괜한 논란거리를 만드는 겁니다."

역삼투압 방식의 정수기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묻자 업계 관계자는 노골적으로 불편함을 드러냈다. 관련 보도가 오히려 논란을 부추겨 소비자들의 불신만 짙어진다고 불평을 이어갔다.
업체들 역시 주력하는 정수 방식에 따라 입장이 확연히 갈렸다. 상대의 정수 방식은 무조건 깎아내렸다. 나만 옳다는 얘기였다. 언제든 감정전을 넘어 상호비방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논쟁에 종지부를 찍어줘야 할 정부기관과 학계 역시 "논란인 것은 맞지만 실명을 내고 의견을 피력하기 힘들다"며 한발 뺐다. '책임'은 없었고, '탓'만 있었다. 전형적인 책임 떠넘기기로 시장의 혼란은 내 소관이 아니었다.(☞관련기사
'물값, 얼마내세요?')
특정 방식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언급하기 부담스러워한다는 점은 왜곡된 시장구도에 대한 방증이다. 전문가들과 대다수 업체들은 끝내 '안전한' 답을 내놨다. 소비자의 선택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이다. 사실상 제한받은 선택권과 우려도 역시 소비자 몫이었다.
물을 그냥 '물'로 바라보고 복잡한 잣대를 들이대지 말라는 시각은 위험하고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물로 인한 신체의 영향 등을 직간접적으로 증명하는 여러 자료들이 방송과 서적 등을 통해 노출되고 있다.
이 사이 실험결과와 언론의 검증, 다양한 필터 등에 대한 정보가 제멋대로 조합되고, 소문에 소문을 타며 소비자들 곁을 파고든다. 도대체 누구의 말이 맞고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소비자는 혼란의 연속이다. 물은 인간이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수요소인 데다, 건강과도 직결되기 때문에 공산품 구입하듯 대충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시장을 주도해온 업체들로서 입지에 맞는 책임감을 보여야 할 때다. 논란이 무섭다고 이를 좌시하거나 방관해서는 안 된다. 무엇이 옳다 그르다를 재단하자는 것이 아니다. 선택을 소비자에게 돌렸다면 그에 적합한 정보도 함께 제공해 소비자의 선택권을 존중해야 한다. 업계 스스로 소비자가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정수방식에 대한 장단점을 내보이고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소비자단체 역시 논란을 알면서도 눈을 질끈 감고 있을 단계가 아니다. 이미 보급률이 60%에 달했다. 정수기를 두면서도 내 아이를 위해 생수를 구입하는, 이중부담에 노출된 가정들도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무섭다고 피하기 보다 논쟁 한가운데 뛰어들어 논란을 주도해야 한다. 그 과정이 선행되지 않는 한 고착된 시장의 왜곡성은 수정되기 힘들다.
물을 '물'답게 섭취하기 위해 각 계의 어렵고도 불편한 노력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물'에 포함된 이해관계와 기득권이야말로 털어내야 할 불순물이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