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기성기자] 삼성디스플레이가 고수해오던 RGB 외에 WRGB 선택지를 꺼내들었다. 다만 LG디스플레이와의 자존심이 걸려 있는 데다 기술 특허까지 겹쳐 있어 구현까지 녹록치 않은 험로가 예상된다.
삼성디스플레이는 그 일환으로 최근 협력사에 WRGB 관련 구매의향서(LOI)를 전달했다. 장비 업계 관계자는 19일 “업계엔 이미 알려진 사실”이라며 “삼성이 WRGB 방식 OLED 패널 라인을 본격 구축하려 한다”고 전했다.
삼성디스플레이가 WRGB 카드를 꺼낸 데는 수율의 한계가 직접적 원인이 됐다. 적·녹·청, 세 가지 픽셀로 구현하는 RGB 방식만으로는 기술적 난제를 풀어내기가 쉽지 않았다. 이는 결국 라이벌 LG전자의 OLED TV 출시를 지켜만 봐야 하는 굴욕적 상황에 이르게 만들었다.
특히 윤부근 삼성전자 소비자가전(CE) 사장의 확언(“2012년 연내 출시”)이 '허언'이 되자 맏형 삼성전자가 직접 나섰다. 삼성디스플레이로서는 심리적 압박이 상당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돌파구를 모색할 수밖에 없는 처지로 내몰린 것이다.
결국 삼성디스플레이는 이달 WRGB 도입을 내부적으로 최종 확정했다. 내년 하반기 양산을 목표로 올 2분기에는 관련 시설투자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삼성디스플레이 관계자는 “투자 등에 관한 내용을 언급하기는 어렵다”며 “다만 WRGB 방식에 대해서는 이미 연구개발을 상당히 진행해온 상황”이라고 이 같은 사실을 간접 시인했다.
'군불' 때기도 병행됐다. 그간 RGB 방식의 우수성을 역설하던 입장에서 LG디스플레이가 채택한 WRGB로의 전환에 따른 시장의 해석이 부담이 됐다. 'RGB=삼성, WRGB=LG'라는 인식을 깨지 않으면 자칫 백기투항으로 비쳐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LG디스플레이와의 특허전과 관련 ‘삼성이 WRGB 채택을 위해 LG와의 화해, 나아가 크로스 라이선스(교차특허) 합의를 원한다’는 오해(?)도 불식시켜야만 했다. 때문에 언론창구를 가동, “시장 상황에 맞게 탄력적으로 대응할 뿐 한 가지 방식만을 고집하지 않는다”는 말을 흘리기 시작했다.
WRGB로의 여지를 열어둠과 동시에 LG와의 자존심 문제도 고려됐다. 중소형 OLED TV 등 비교적 저가 라인업에는 WRGB 방식을, 대형 프리미엄 OLED TV에는 기존의 RGB 방식을 각각 적용하는 투 트랙 전략을 통해 RGB에 대한 기조도 함께 가져갈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상반기 중 시장에 내놓을 55형 OLED TV와 곡면(Curved) OLED TV에는 기존의 RGB 방식을 채택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복수로 간다. 한 가지 방식을 고집하진 않는다”며 “또 WRGB가 특정업체의 전유물은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다. 기존 입장보다 상당 부분 유연해졌지만 LG에 대한 경계심만은 지키려는 분위기다.
한편 삼성과 LG는 OLED 특허와 관련해 소송과 협상을 동시 진행 중에 있다. 양측은 지식경제부 중재로 특허 침해에 따른 가처분 소송은 취하했지만 본안소송은 일정대로 진행 중에 있다. LG는 삼성의 보상을 전제로 크로스 라이선스 협의 가능성을 열어뒀다.
LG는 2010년 코닥의 OLED 사업부문을 인수하면서 특허관리 회사인 GOTL을 설립했다. WRGB 방식의 원천기술을 상당수 보유 중이다. LG전자와 LG디스플레이가 각각 지분 33.73%를 보유 중이며, LG화학도 1.81%의 지분을 들고 있다. LG의 덫이 삼성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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