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불수지수(不數之數)`, 새해 경제전망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2012-12-28 16:00:00 2012-12-28 16:00:00
곁에 두고 가끔 펼쳐보는 책 중에 <역사 속에서 걸어나온 사람들>이라는 책이 있다. 나카지마 아츠시(1909~1942)라는 작가가 중국 고전 속 인물을 소재로 쓴 소설 4편을 묶은 것인데 그 중 활쏘기 달인 기창(紀昌)의 이야기에 이런 구절이 있다.
 
"명인(名人)은 `불사지사(不射之射)`라." 진짜 고수는 활과 화살이 없이도 목표물을 쏘아 떨어뜨린다는 말이다.
 
말년의 기창이 초대받아 간 어느 집에서, 분명 어디선가 본 듯 한데 도무지 이름이나 용도가 떠오르지 않은 물건이 있어 집 주인에게 '뭣에 쓰는 물건인가' 물었다.
 
처음에는 농담인줄 알았던 집 주인이 안색이 새파래지면서 하는 말이 "고금에 무쌍한 활의 명인이신 선생님께서 `활`을 완전히 잊으시다니! 아아, 이럴 수도 있단 말인가?" 그 후 한동안 그 동네에서는 화가는 붓을 감추고 악사는 비파의 현을 끊고 장인은 줄과 자를 손에 쥐는 것을 부끄러워했다는 이야기다.
 
안 쏘고도 명중하는 달인의 경지가 문득 머릿속에 떠오른 까닭은 이맘때면- 정확히는 매년 11월 중순쯤이지만- 넘쳐나는 각종 새해 전망들 때문이다.
 
국내외 내로라 하는 경제연구소, 금융기관 등에서는 어딘가 현학적이면서도 세련돼 보이는 수식어들을 곁들인 각종 전망치 숫자들을 내 놓는다. 일례로 내년 경제성장률 예측치를 보면, KDI 3.0%, 한국은행 3.20%, 산업연구원 3.10%, 현대경제연구원 3.50%, 포스코경영연구소 3.0%, 대우증권 2.90%, 삼성증권 2.60%, 국제통화기금(IMF) 2.70%,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1% 등이다.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이는 이 숫자들은 제각기 이를 발표한 기관의 권위를 등에 업고 `내가 더 잘 맞아`를 외치는 듯하다. 이마저도, 초반에 발표하는 전망치들은 꽤 높은 숫자로- 그래 봐야 소수점 첫째 자리에 좀더 `긍정의 힘`을 실은 정도지만- 시작해서 다음해 새로운 전망치를 발표하기 직전까지 슬금슬금 낮춰오는 양상이었다.
 
이런 애매한 숫자들이 난무하는 때에 중심을 잡으려면 `불수지수(不數之數)`, 셈하지 않고도 답을 맞추는 경지, 숫자에 얽매이지 않고 숫자를 이해하는 삶의 지혜를 길러야 한다.
 
내년도 올해보다 별반 나아지지 않을 것 같고, 잘해봐야 `성장률 2%대 후반`의 상태가 이어질 것이라고 행간을 읽는 편이 낫다. "하반기 완만한 회복세"라거나 "점진적 증가 추세" 등의 서술에 너무 큰 기대를 하지 않는 편이 투자 판단의 실수를 줄이는 길이 아닐까 싶다.
 
일본 경제와 한국 경제를 비교하며 `비슷한 양상이다`, `아니다 우리는 다를 거다` 갑론을박하는 논객들도 많은 것 같다. 그들이 근거로 제시하는 수많은 데이터들을 일일이 다 검증할 수는 없는 노릇이나, 우리 경제가 `추세 하향`의 상황이라는 점은 팩트(fact)라고 봐도 좋다.
 
일본은 20년간의 디플레이션에 빠져 `제로(0) 금리` 시대가 지속되고 있다. 저축을 해도 돈은 불지 않고, 그들이 창조해낸 재테크란 단어는 `사어(死語)`가 돼 버렸다.
 
한국도 지금 기준금리 2.75%에서 내년에 새 정권의 의욕에 힘 입어 한두 차례 인상할 여지가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결국은 1% 금리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저개발국가의 급속고성장 트렌드는 이제 한국과는 거리가 멀다.
 
석박사 전문가들이 내놓는 2013년 경제 산업전망은 잠시 제쳐 두고, 차분히 올 한 해를 정리해보자.
 
경쟁에서 승리할 방도를 좇아 쉴 새 없이 내달려온 2012년이었다면, 2013년은 주위도 둘러보며 함께 가고 같이 나누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활과 화살을 잊은 활쏘기의 명인처럼, 숫자를 잊자. 앙상하리만치 낮은 숫자들에 휘둘리지 않고 행복을 찾아가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
 
김종화 생활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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