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우리 마을' 풍경 통해 일상을 사색하다
2012-09-18 19:26:55 2012-09-18 19:28:15
[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아워타운>은 1차 세계대전의 수습과 경제공황의 여파로 어수선하던 1930년대에 미국작가 손톤 와일더가 쓴 희곡이다. 오래전 작품이지만 일상의 소중함을 다룬다는 점 때문에 전세계에서 하루도 공연되지 않는 날이 없을 정도로 이제껏 많은 사랑을 받았다. 우리나라에서도 아마추어에서 프로에 이르는 수많은 극단들이 이미 여러번 무대에 올렸다.
 
그러나 대중적인 인기에 따른 반작용인지 그동안 작품의 질은 들쭉날쭉했던 게 사실이다. 일상의 이야기라는 점 때문에 극이 지나치게 평이하게 흘러 작품의 의미나 무게가 전달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무대에 다양한 추상과 상징을 사용하는 한태숙 연출의 <아워타운>이 반가운 이유다.
 
'삶은 죽음을 위한 연습'이라는 게 이번 한태숙이 연출한 <아워타운>의 키워드다. 1막은 배우들의 공연 연습, 2막은 좀더 진전된 모습의 연습, 3막은 실제 장면으로 구성했다. 줄거리로 보자면 각 막은 우리 마을의 하루, 사랑과 결혼, 죽음과 재탄생을 차례로 보여준다.
 
세상의 관심사에서 비껴난 조용한 마을을 배경으로 소소한 일상이 반복되지만 한태숙 연출 특유의 그로테스크함이 무대를 감싸며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무대의 전반적인 이미지는 황량함이다. 회색빛 무대에는 앙상한 나뭇가지를 연상시키는 소품이 자리하고 있다. 대표적 소품인 의자의 경우 등받이가 허약한 나뭇가지로 되어 있고 여기다 철제의 차가움까지 더했다. 의자는 장면에 따라 결혼식 하객의자로 사용되다 무덤 묘비로 기능하기도 한다.
 
 
 
 
 
 
 
 
 
 
 
 
 
 
 
 
 
 
 
 
 
무대감독 역할의 캐스팅도 이 공연의 차별화 지점이다. 대개의 경우 남자배우가 맡는 무대감독역을 중성적인 여배우 서이숙에게 맡긴 덕분에 극에 생기는 균열은 극대화된다. 
 
검은색 정장 차림을 한 무대감독은 마치 절대자처럼 시시때때로 무대상황에 개입한다. 이로 인해 극은 '인생이 곧 연극'이라는 관점을 효과적으로 유지할 뿐만 아니라 관객으로 하여금 인생에는 '인간과 함께 하는 영원한 무엇', 즉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떠올리게 한다. 연극 <열하일기만보>에서 '네발 짐승 연암'으로 분하는 등 이미 비슷한 서사적 역할을 수행했던 배우 서이숙의 진가가 이 공연에서 다시 한 번 드러난다.
 
이밖에 마을 사람으로 등장하는 배우들의 라이브 연주도 관객으로 하여금 줄거리에서 한발짝 떨어져 무대를 감상하게 돕는 요소다. 조지와 에밀리의 결혼식 장면에서 하객으로 등장하는 이들은 콘트라베이스, 첼로, 하모니카 등을 가지고 멘델스존의 결혼행진곡을 직접 연주한다.
 
여러가지 장치와 이야기를 통해 연극 <아워타운>에서 강조하는 바는 '죽음을 의식하는 삶의 태도'다. 삶과 죽음을 받아들이는 삶의 철학이 바로 설 때 우리네 삶도 허망함에서 벗어난다는 것이다. 죽음을 인식하면서부터 삶은 가치있게 시작될 가능성을 얻는다.
 
조지와 결혼했지만 아이를 낳다가 죽은 에밀리가 삶에 대한 집착으로 이승에 다녀온 후 남긴 대사가 특히 인상적이다. 
 
"너무 빨라요. 서로 눈 마주할 시간도 없을 정도로." "살면서 자기 삶을 제대로 깨닫는 인간이 있을까요? 매 순간마다요?" 에밀리의 대사를 통해 극은 무심코 지나쳐온 하루하루, 다시 돌아가도 같은 경험일 수 없는 그 순간이 소중했음을 내비친다. 극 말미에 옛 기억을 다 잃고 가만히 앉아 있는 죽은 자들을 보고 있노라면 오늘 내가 누구를 만나고 어디에서 무얼했는지를 새삼스레 떠올려 보게 된다.
  
작 손톤 와일더, 연출 한태숙, 출연 서이숙, 박용수, 김정영, 김세동, 김용선, 박윤희, 정운선, 손진환, 지영란, 신덕호, 이화룡, 이기돈, 이지혜 등, 10월 14일까지 명동예술극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나볏 테크지식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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