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기성기자] 유력 대선주자들이 과거 재벌그룹 총수와의 인연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경제민주화가 이번 대선을 좌우할 시대과제로 등장하고, 재벌개혁 이슈가 그 핵심에 자리한 탓이다.
타격을 먼저 입은 이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다.
야권의 유력주자이기도 한 그는 지난 2003년 분식회계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최태원 SK그룹 회장에 대한 선처를 호소하는 내용의 탄원서에 서명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이중성’ 논란에 휩싸였다.
안 원장은 당시 재벌가 2·3세와 벤처 기업인들의 모임인 ‘브이소사이어티’(V-SOCIETY) 회원으로서, 동료회원인 최 회장 구명을 위해 회원 전체가 서명한 탄원서에 함께 이름을 오렸다.
논란이 확산될 조짐을 보이자 안 원장은 보도자료를 내고 사실을 인정함과 동시에 비판을 수용했다. 그는 “10년 전의 탄원서 서명에 대해 당시에도 부담을 느꼈고, 내내 그 일이 적절한 것이었는지 생각해 왔다”며 “인정(人情) 에 치우칠 것이 아니라 좀 더 깊이 생각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여권은 즉각 대대적인 공세에 나섰다. 안풍을 다시 점화시킨 대담집 ‘안철수의 생각’을 비롯해 그가 평소 제기한 문제의식과 상반된다는 게 공격의 주된 논거였다. 박근혜 캠프는 물론 당 대변인 등 주요 당직자들까지 총동원돼 검증에 힘을 쏟았다.
실제 안 원장은 지난달 19일 출간된 저서에서 재벌 총수 비리에 대한 단호한 엄벌은 물론 순환출자 금지, 금산분리 강화, 공정거래법 강화 등 재벌개혁 정책 방향성에 대해 동의했다. 특히 “재벌개혁이 제대로 되지 못한 이유 중에는 경제범죄에 대한 사법적 단죄가 엄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단호한 ‘외부적 접근’을 주문하기도 했다.
연일 맹공을 퍼붓던 새누리당도 재벌 총수와의 인연에 발목이 잡히고 말았다. 2008년 이명박 정부의 8·15 광복절 기업인 사면 당시 환영 논평을 내며 적극 옹호했던 행적이 부메랑이 된 것이다.
윤상현 당시 한나라당 대변인은 “건국 60년을 맞이해 반목과 갈등을 치유하고 국민을 하나로 모으고자 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고뇌에 찬 큰 결단으로 받아들이며 환영한다”고 말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등이 사면 대상에 포함됐으며, 윤 의원은 현재 박근혜 캠프의 공보단장을 맡고 있다.
박근혜 의원도 과거 족쇄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강원일보에 따르면 그는 지난 2006년 12월 강원도 평창을 방문한 자리에서 박용성 IOC위원(현 대한체육회장·두산중공업 회장)의 사면 문제에 대해 “국회 차원에서 적극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비자금 조성과 횡령, 분식회계 혐의 등으로 실형을 선고받았던 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은 이듬해 2월 참여정부 출범 4주년을 맞아 특별 사면됐다.
여야 대표주자로, 현재 지지율 1위를 놓고 피 말리는 접전을 이어가고 있는 두 사람의 과거 재벌그룹 총수와의 인연이 결국 덫이 된 모양새다.
민주통합당 한 관계자는 2일 “대선주자들 중에 재벌 총수들과 어떤 식으로라도 연이 없는 사람이 과연 누가 있겠느냐”며 “정도의 차이”라고 말했다. 당내 컷오프(예비경선)를 통과한 한 대선후보 캠프 관계자는 “재벌과는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 답”이라고 말했다.
2012년 경제민주화 광풍 속에 재벌 총수들은 가까이 하지도, 멀리 하지도 않는 적절한 거리를 유지해야만 하는, 그러면서도 내심 부담스러운 일종의 배척 대상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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