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기성기자] “평가할 만한 일조차 없었다.”
27일로 출범 1개월을 맞는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박근혜)에 대한 촌평이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26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비대위 성격 규정조차 불분명했다”며 “당 쇄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 박근혜 개인의 대선 프로젝트를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 불분명한 채 한 달을 보냈다”고 평했다.
이어 “무분별한 이벤트만 속출했지, 근본적 쇄신은 없었다”며 “쇄신을 하려면 박근혜 위원장이 2선으로 물러나야 한다”고 말했다. “수성(守城)에만 매달려 몸 사리기에 그치기 때문에 쇄신과 맞닿을 수 있는 부분이 없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조사분석실장도 같은 날 기자에게 “내놓은 쇄신안 또한 말만 무성했지, 성과로 이어지지 못했다”며 “당내 갈등 역시 제어하지 못하고 오히려 확산시켰다”고 부정적 평가를 내렸다.
이어 “현 상황에서는 비대위가 정권 말기 터져 나올 집권여당의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이 있는가에 대해 근본적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위기에 처한 한나라당을 떠맡으면서 외면했던 대중적 관심을 일정 부분 기대로 돌린 측면은 있다”고 말했다.
◇쇄신파 “이젠 각자도생. 기대 접었다”
당내 평가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한 쇄신파 의원은 “대안이 없다는 이유로 대중적 지지도가 높은 박근혜 한 사람에게 당을 통째로 넘겼는데 기대했던 쇄신은 전혀 없었다”며 “쇄신은 개인 의지나 역량이 아닌 시스템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쇄신파 의원은 “관성이 너무 강하다”고 말했고, 역시 쇄신파로 분류되는 한 의원은 “자기 것을 지키기에 급급했다”고 말했다.
그간 재창당 등을 요구하며 쇄신파를 이끌어 온 한 핵심 의원은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다. 기대 자체를 접었다”며 “이제 각자도생(各自圖生)이다. 나도 살아남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특히 “쇄신파는 없다”며 “박근혜 위원장이 한마디 하면 다 깨갱 하는데 무슨 쇄신파냐”고 반문했다.
그외 쇄신파 의원들은 “좀 더 지켜보자”며 말을 아꼈다. 공천심사를 눈앞에 둔 상황에서 혹여 ‘찍히는’ 것에 대한 눈치 보기로 해석됐다.
◇‘부글부글’ 친이계, ‘토사구팽’ 친박계
친이계 의원들은 기자의 평가 요구에 “계파 갈등으로 몰지 말아 달라”고 했다. 이명박 대통령 탈당을 두고 한바탕 전쟁 직전까지 치달았던 내홍의 후유증이 강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한 친이계 의원은 “우리라고 해서 왜 할 말이 없겠느냐”며 “지금은 당 전체를 위할 때”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천이 보복 차원에서 친이계 솎아내기에 그칠 경우 그때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친박계라고 해서 다들 박 위원장을 거들며 비대위 편에 서지 않았다.
대부분의 친박계 의원들은 “박 전 대표가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면 당이 어떻게 됐겠느냐”며 “지금은 위기를 수습하는 단계로 비대위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낙천 대상자로 이름이 거론되는 중진 의원들은 달랐다. “지난 4년 동안 갖은 수모를 감내했는데 지금에 와서 내친다는 게 말이나 되느냐”는 게 중진들 본심이라고 한 친박계 의원은 전했다. 한마디로 토사구팽(兎死狗烹) 당하게 생겼다는 얘기다.
이는 한나라당의 본류이자 박 위원장의 정치적 근거지인 영남권 중진 의원들의 공통된 기류라 박 위원장이 감내할 부담은 더욱 컸다.
◇“비대위, 박근혜 1인에 좌우될 수밖에 없는 구조”
당내외 평가를 야박하다고 탓하기엔 비대위의 성적표가 너무 초라하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20대의 이준석 클라세스튜디오 대표를 비대위원으로 영입하며 젊은 층과의 소통 회복에 나섰지만 정치적 이벤트에 불과했다는 게 당내 중론이다.
한 당직자는 “김종인·이상돈, 두 비대위원을 제외하고 비대위를 이끌어갈 내공이 있는 인물들은 보이지 않는다”며 “두 사람조차 박 위원장과의 싸움이 힘겨운데 어떻게 나머지 위원들이 대항하거나 의견을 표명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신율 교수는 “비대위 구성 자체가 박 위원장에게 좌지우지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고 말했다.
한발 더 나아가 공천심사를 진두지휘할 공심위원장의 인선이 길어지는 이유 또한 박 위원장이 제 입맛에 맞는 인사만을 찾기 때문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상돈 비대위원으로부터 “공심위원장으로 가장 적합하다”고 평가된 윤여준 전 의원의 경우 전날 기자와의 통화에서 “박 위원장의 생각은 다를 것”이라고 단언한 뒤 공심위원장을 맡을 가능성에 대해 “박 위원장이 (제게) 제안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실현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일축했다.
◇갈등 재확산, 소모적 논쟁에 동력 빼앗겨
뿐만이 아니다. 당 정강 ‘보수’ 삭제와 관련해 소모적 논쟁을 이어갔고, 급기야 이명박 대통령 자진탈당 요구까지 제기되면서 해묵은 친이·친박 갈등이 재연되기에 이르렀다.
당시 이재오 의원은 “이는 패륜아가 할 짓”이라며 “비대위원들이 (박근혜) 위원장을 모시고 나가 ‘대통령과 단절했으니 이제 정부 실정에 책임 없다’고 말하는 게 더 선명하지 않느냐”고 반박, 내홍은 분당 직전으로까지 치달았다.
또 주요거점 전략공천 20%, 지역 현역의원 하위 25% 공천 원천배제 등 인위적 기준 잣대가 등장하면서 친이계, 특히 수도권의 친이계를 겨냥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마저 자아냈다. 더불어 박 위원장이 공심위의 손을 빌려 친박계 고령 중진의원들을 내칠 것이라는 소문마저 나돌았다.
이외에도 쇄신파가 요구한 원내정당화 역시 시기상의 이유를 들어 원점으로 회귀됐다. 앞서 정두언 의원을 필두로 한 쇄신파의 재창당 요구 역시 일축되기는 마찬가지였다.
30일 선보일 새 당명에 대해서도 “재창당을 뛰어넘는 수준의 쇄신이란 게 결국 당명 개정이냐”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야심차게 출범했던 비대위가 내놓는 정치쇄신이 이름 바꾸기에 그칠 것이 확실시되면서 소속 의원들의 기대감은 한풀 꺾였다.
◇당정 협의 없는 정책쇄신, 무늬만 쇄신?
박 위원장이 가장 역점을 둔 정책쇄신 역시 초라하다는 지적이다.
정부의 KTX 및 인천국제공항 민영화 방침에 제동을 걸고 카드 수수료율과 등록금 대출 금리를 인하키로 한 게 그나마 눈에 띄는 성과로 꼽힌다.
그러나 당정 협의 한 번 제대로 거치지 않은 집권당의 일방적 발표라서 재원 마련에 대한 실증적 대안이 없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대표적인 게 저소득층 100만 가구 전월세 대출이자 경감 대책이다. 1조원이라는 막대한 재정이 소요됨에도 구체적 재원 확보 마련 방안은 빠졌다.
출자총액제한제 검토, 재벌개혁 역시 거론될 될 때만 하더라도 출총제 부활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지만 제도적 ‘보완’이라는 미봉책을 내놓는 것에 그쳤다. 유통재벌 규제 방안 또한 한때 검토됐지만 내부 반발에 없던 일로 치부됐다.
또 당 정강·정책에서 ‘복지’를 1순위로 끌어올린다지만 당내 의원들조차 선언적 의미 이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이 과정에서 당내 논란을 낳았던 ‘보수’ 삭제나 출총제 부활, 유통재벌 규제 등은 모두 박 위원장의 요청에 의해 폐기된 것으로 전해졌다.
70여일 앞으로 다가온 총선에 임해야 하는 박근혜 비대위의 현 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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