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42년 독재자' 카다피 시대, 사망으로 종식
'포스트 카다피' 시대, 탄력 받을 듯..장애물이 많다는 지적도
2011-10-21 09:43:02 2011-10-21 10:12:45
[뉴스토마토 김선영기자] 리비아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사진)가 19일(현지시간) 고향 시르테에서 생포된 뒤, 총상으로 사망했다. 이로써 42년간 철권통치는 비참하게 막을 내렸다.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 함락을 계기로 리비아 정국은 반군의 손에 거의 넘어갔지만, 그동안 카다피의 소재는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일각에서는 카다피 일행이 현금과 황금을 싣고 이미 리비아를 빠져나갔다는 주장도 제기됐지만, 주변국들이 그를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부담감을 강하게 느끼고 있어 망명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었다.
 
카다피는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군이 리비아 군사작전을 펼치며 자신을 계속 압박해 오자, 간헐적으로 육성 또는 방송 연설 등을 통해 "이 땅을 떠나지 않고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결사항전의 의지를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연합군과 시민군의 공세에 카다피 세력은 서서히 힘이 빠졌고, 한 달 여 만에 붙잡히면서 카다피의 저항도 끝났다.
 
◇ 독재자 카다피는 누구인가?
 
무아마르 카다피(69) 전(前) 리비아 국가원수는 1969년 9월1일, 스물일곱 살의 나이에 동료 장교들과 무혈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았다. 국왕 이드리스 1세가 신병 치료차 수도 트리폴리를 비운 사이를 틈타 도시를 기습 점거한 뒤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정을 선포한 것이다.
 
카다피가 정권을 잡은 리비아는 헌법도 없는 독재국가였다. 카다피는 1975년 인민 직접민주제를 구상한 '그린북'을 내놓고 이를 이슬람 경전 코란에 견주며 통치기반을 강화했다.
 
카다피는 미국과 영국의 군사기지를 폐쇄하고 석유 회사를 국가 소유로 만들었으며 1911년부터 1943년까지 리비아를 식민 지배했던 이탈리아인들을 내쫓았다. 또한 1972년 문화 혁명을 주도해 음주와 도박을 금지했고, 이집트, 시리아 등과 함께 중동 지역 단일 아랍 국가건설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집권 초기 카다피는 제 3세계의 민족 해방운동을 지원하고 국내 정치범 수용소를 철폐하는 등 혁명가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2003년에는 오랫동안 각을 세워오던 서방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팬암기 테러 책임을 인정하면서 유족들에게 1000만달러씩 배상을 했고, 대량살상무기 계획도 자발적으로 포기했다.
 
하지만 그 뒤 테러와 핵 실험 의혹, 무자비한 인권 탄압으로 국제사회의 맹렬한 비난을 받았으며, '중동의 미친 개'라는 불명예스런 별명을 얻기도 했다.
 
억눌려왔던 리비아 민중의 분노는 올해 초 아랍 민주화를 계기로 폭발했다. 리비아 반군은 과거 카다피가 몰아냈던 서방과 손잡고 그를 벼랑 끝으로 몰아넣었고, 그는 몰락했다.
 
◇ 생포된 카다피, 부상으로 사망
 
리비아 과도정부의 미스라타 군사위원회는 이날 카다피의 고향인 시르테를 공격하던 소속 병력이 카다피를 생포했으나 심한 부상으로 결국 사망했다고 공식발표했다.
 
이날 새벽 리비아 과도정부를 이끌고 있는 반군국가위원회(NTC)는 나토군의 공습을 피해 달아나던 카다피를 발견한 후, 총격이 오갔으며 카다피는 머리와 다리에 심각한 상처를 입고 구급차에 후송됐으나 곧이어 사망했다고 전했다.
 
또한, 카다피는 발각 당시 거점이자 고향인 시르테의 한 땅굴에 숨어있었고, "쏘지마라, 쏘지마라"라고 외쳤다고 밝혔다.
 
이날 주요외신에 따르면, 카다피의 시신은 보안상의 이유로 비밀 장소에 보관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빅토리아 눌런드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성명을 통해 "국무부는 현재 카다피의 생포나 사살에 관한 언론 보도를 확인할 수 없다"며, 카다피가 생포됐거나 사살됐다는 언론보도를 아직 확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 리비아의 앞날은?
 
42년간의 독재정권이 막을 내리며 리비아가 향후 새로운 민주정권을 창출할 수 있을지 여부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반정부 시위를 이끌어온 NTC는 카다피 이후 헌법에 따라 8개월 내로 권력 이양을 위한 선거를 치를 것이라는 안을 마련해 놓고 있다.
 
'포스트 카다피' 시대를 이끌 인물 0순위로 꼽히고 있는 무스타파 압델 잘릴 NTC 위원장은 지난 9월13일 카다피를 권좌에서 몰아낸 뒤 트리폴리에서의 첫 연설에서 새 국정 방향을 제시하며 사실상 새로운 정권의 탄생을 알린 바 있다.
 
하지만 NTC는 수차례 새 과도정부의 내각 명단을 발표하겠다고 밝혔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해 발표를 계속 미루고 있어 NTC가 새로운 민주 정권 창출에 필요한 역량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리비아는 부족 수가 140여개에 이르는 등 부족이 수 갈래로 나뉘어 있어 새 정부 구성과정에서 부족들간의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내부 통합을 이끌어내야 하는 과정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따라 NTC의 새 정부 구성 작업이 카다피의 사망으로 일단 상당한 탄력을 받겠지만 지역별, 부족별 분란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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