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백겸 기자] 응급실 미수용(뺑뺑이) 문제가 반복되는 가운데 최근엔 응급실에서 취객을 퇴원시켰다가 뒤늦게 뇌경색이 확인된 당시 의료진에겐 금고형이 선고됐습니다. '청주 태아 사망 사건'으로 논란이 된 응급실 뺑뺑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의료진의 응급의료 기피부터 해소해야 하는데, 정작 의료진에겐 업무상과실의 책임을 물림으로써 응급의료 기피를 더욱 부추긴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정부의 필수의료인력 확충 방안도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현장에선 악순환만 반복됩니다.
서울 시내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 앞에 구급차들이 대기하고 있다.(사진=뉴시스)
'만취'에 가린 소뇌경색…법원 "주의 의무 소홀" 의료진에 금고형
8일 법조계와 의료계 등에 따르면,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 형사3단독 강태규 부장판사는 지난 6일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로 기소된 의사 A씨엔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 B씨에겐 금고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습니다.
이들은 지난 2018년 6월 충남 천안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하던 중 술에 취한 채 복통·구토, 어지럼증 등을 호소한 20대 환자를 육안으로만 관찰한 뒤 퇴원시켰다가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20대 환자에게 뇌 MRI 검사 등 적절한 신경학적 조치를 하지 않았다가 영구 장애를 입혔다는 겁니다.
당시 4년차 응급의학과 전공의였던 A씨는 20대 환자를 대상으로 CT만 촬영한 후 관련 설명 없이 1년차 전공의 B씨에게 환자를 넘겼습니다. B씨도 추가 검사 없이 육안으로만 환자를 관찰하다 환자를 퇴원시켰습니다. 그러나 환자는 이후 다른 병원에서 '척추동맥 박리에 의한 소뇌경색' 진단을 받았고, 결국 신체 일부가 영구히 마비되는 장애를 입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B씨는 의무기록에 신경학적 검사를 시행한 것처럼 거짓으로 기재, 의료법을 위반한 혐의까지 적용됐습니다.
법원은 두 사람이 의사로서 환자에 대한 주의 의무를 소홀히 한 점을 인정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2023년 개정된 의료법(제8조)은 금고 이상의 형 선고나 집행유예, 선고유예를 받으면 그로부터 2년 동안 의료인이 될 수 없다고 규정했습니다. 두 사람은 자칫 의사 면허를 박탈당할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잇따르는 '뺑뺑이 참변'…의료진 처벌과 제2 청주 태아사망 우려
응급의료계는 이번 판결이 의료진의 응급의료 기피와 현장 이탈을 가속화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대한응급의학회는 7일 성명을 내고 "당시 환자는 과음으로 인해 적절한 신경학적 검사가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다음 세대 젊은 의사들이 응급의료와 필수의료, 지역 의료 종사를 기피하게 만드는 원인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제2의 청주 태아 사망 사고 우려도 큽니다. 이 사고는 지난 1일 밤 충북 청주에서 양수가 터진 임신 29주차 산모가 충청권 상급병원 6곳으로부터 진료를 거절당한 끝에 부산까지 이송됐다가 결국 유산한 일입니다. 지난 2월 말에도 대구에서 조산 증세를 보였던 쌍둥이 산모가 4시간 만에 수도권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아이 한명이 숨졌습니다.
국회는 응급실 뺑뺑이를 해결하기 위해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 방지법'(응급의료법 개정안)을 지난해 10월 통과시켰습니다. 응급의료기관이 119구급대원 등 응급환자를 이송하는 자와 직접 통신할 수 있도록 전용수신 전화를 설치·운영하도록 하는 게 핵심입니다.
그러나 의문은 여전합니다. 응급구조 현장에선 병원의 허락을 받아야만 환자를 이송할 수 있는 응급환자 이송 구조도 바꿔야 한다고 주문합니다.
반면 의료계는 응급치료 후 최종 치료 단계에서 발생한 의료사고의 법적 책임을 의료진에게 묻는 사례가 계속 발생한다면 제2의 청주 사고는 불가피하다고 주장합니다. 김찬규 대한응급의학의사회 대변인은 "의료진이 소송 위험에 노출되면 환자가 거부해도 무조건 과잉 검사를 하거나, 위험도가 높은 환자의 수용 자체를 기피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에 근본적으로 필수의료 인력을 확충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됩니다. 정부는 지난 2월 지역·필수·공공의료 인력 확충을 위해 의과대학 정원을 단계적으로 증원하기로 했습니다. 다만 실제로 의료인력이 늘어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의료분쟁조정법도 통과됐지만…악순환 속 실효성 논란은 여전
정부·여당은 응급의료를 비롯한 필수의료에 대한 법적 부담을 해소하기 위해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을 추진, 지난달 30일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해당 개정안은 중대한 과실이 없는 고위험 필수의료 행위로 인한 의료사고에 대해 의료인 등이 설명 의무를 충족하면 업무상과실치사상죄의 형을 감면하는 내용이 골자입니다.
이에 대해 의학계는 일단 환영하는 분위기지만, 해석이 모호한 부분이 많아 아직 부족하다는 입장입니다. 김 대변인은 "중대한 과실, 설명 의무 등은 해석이 모호해 현장에서 느끼기에 불충분하다"며 "개정법의 취지대로 응급실의 수용성이 증대할지는 속단하기는 이르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개정된 의료분쟁조정법을 두고 "환자 권리를 침해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지난달 논평을 통해 "보건의료인만이 면책 특혜를 누리고 피해자는 진술권마저 박탈당하는 위헌적 법안"이라며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정부는 필수의료 인력 충원을 위해 어쩔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29일 "고위험 필수의료에 종사하는 전문의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기본권을 부득이하게 제한했다"고 했습니다. 복지부는 의료계와 시민단체의 걱정에 대해 의료계와 환자단체 관계자,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해 세부 내용을 논의해 시행령 등을 정비할 방침입니다.
김백겸 기자 kb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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