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다인 기자] "피해자들에 대한 증인신문은 적절치 않다. 피해자들이 객관적 상황을 인식할 수 있다면 가능하지만, 진술 자체가 오염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 10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중증 발달장애인 거주시설 ‘색동원’ 성폭력 사건 첫 공판준비기일에서 피고인인 원장 측 변호인은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발달장애인의 특성상 기억이나 표현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는데, 색동원 사건의 피해자들이 수사기관이 유도한대로 진술할 수 있어 진술의 신빙성이 의심스럽다는 취지입니다. 피고인 측은 이를 이유로 피해자 증인신문 신청도 보류했습니다.
인천 강화군 중증장애인 거주시설 '색동원' 시설장 김모씨가 지난 2월1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성폭력처벌법 위반(장애인 강간·강제추행) 및 장애인복지법 위반 혐의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처럼 지적장애인의 진술 신빙성을 문제 삼는 주장은 형사재판에서 반복돼 왔습니다. 특히 성폭력 사건에선 피해자 진술이 유일한 증거, 핵심 증거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지적장애라는 특성을 이유로 진술에 신빙성을 떨어뜨리는 방법은 가해자 측의 주요 방어 전략으로 활용될 정도입니다.
그러나 법원은 장애 여부만으로 진술을 배제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수도권의 한 형사 판사는 “지적장애인이라고 해서 진술능력이 당연히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일반 사건과 마찬가지로 진술의 구체성과 일관성, 다른 증거와의 부합 여부 등을 기준으로 신빙성을 판단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실제로 형사소송법 308조엔 “증거의 증명력은 법관의 자유판단에 의한다”라고 규정했습니다. 법관이 증거의 가치(증명력)를 종합적으로 자유롭게 판단하는 ‘자유심증주의’에 따라 장애인의 진술도 공정하게 평가한다는 설명입니다.
이주언 공익법단체 두루 변호사도 “지적장애인의 경우에도 신뢰관계인 동석이나 진술조력인 제도를 통해 법정에서 진술이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에도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실질적으로 동등한 수준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사법절차 및 사법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진술 일부 불일치 있어도 정황 부합하면 신빙성 인정
판례 역시 지적장애인의 특성(시점·장소 등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등의 문제)을 고려해 공소사실 특정 기준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형성돼 왔습니다. 일반적으로 공소사실은 범행의 일시와 장소, 방법 등 구제척인 범죄사실을 특정해야 합니다. 피고인의 방어권을 보장하는 차원입니다. 하지만 지적장애인이 피해자인 경우 공소사실을 비장애 사건과 동일한 수준으로 엄격하게 요구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대전고등법원은 2015년 5월 지적장애인 성폭력 피해자가 범행 일시를 정확히 특정하지 못하더라도 계절이나 사건의 전후 관계 등 다른 단서를 통해 특정할 수 있다면 공소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당시 재판부는 “(장애인의) 인지능력이나 사고과정에 비장애 피해자와는 다른 특성을 보인다”며 “(공소사실을 특정할 때) 비장애 피해자와 동일한 기준을 기계적·형식적으로 적용할 경우 자칫 성범죄 피해를 입은 지적장애인에 대한 법적 보호를 외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2013년 3월 대전지방법원도 지적장애인 성폭력 피해자의 진술 중 일부가 일관되지 않더라도, 전체적인 진술 취지가 일관되고 다른 증거와 부합한다면 신빙성을 인정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당시 재판부는 “장애인에 대한 성폭력 범죄의 경우 다른 성폭력 범죄와 달리 피해자가 범행 당시의 세부상황들을 정확히 기억하는 것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며 “피고인과 피해자의 통화내역 및 관련자들의 진술도 피해자의 진술에 부합하는 점 등을 종합하여 볼 때,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피해자의 진술은 신빙성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신다인 기자 shin12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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