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남윤서 기자] 정책금융기관 내 '유리천장'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습니다. <뉴스토마토> K-정책금융연구소가 모니터링하는 13개 기관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25년 말 기준 정책금융기관의 여성 임원 비율은 9.5% 수준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상임 임원만 따로 보면 이 비율은 3.1%로 줄어듭니다. 여성 인력은 충분히 확보돼 있음에도 임원 승진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구조가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23일 <뉴스토마토> 취재 결과, 산업은행, 기업은행, 수출입은행, 무역보험공사, 주택금융공사, 주택도시보증공사(HUG), 기술보증기금, 신용보증기금,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한국벤처투자,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해외인프라도시개발지원공사(KIND) 등 13개 정책금융기관 중 산은, 기은, 수은 등 국책은행 3곳과 무보, 주금공, HUG를 포함한 총 6개 기관에는 여성 임원이 단 한 명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조사 대상 기관 중 절반가량이 여성 임원 ‘0명’ 상태입니다.
국책은행의 경우 여성 직원 비율이 40~50%대에 달하고, 그 외 정책금융기관들도 대부분 30%대를 웃돌고 있습니다. 조직 구성원의 상당수가 여성임에도 임원은 여전히 드문 상황입니다. 채용 단계에서는 성별 다양성이 일정 수준 확보됐지만, 고위직으로 갈수록 여성 비율이 급격히 줄어드는 구조가 고착화됐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여성 임원 있어도 '비상임'…정책금융 '형식적 다양성'
여성 임원이 있는 기관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여성 임원이 비상임 직책에 집중돼 있는 구조가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정책금융기관의 상임 임원은 기관장과 감사, 이사 등으로 상근하며 기관 운영의 실질적 의사결정을 담당합니다. 비상임이사는 이사회 의결과 경영 감독 역할을 수행하지만 일상적인 경영에는 직접 관여하지 않습니다.
기보와 중진공은 여성 임원 3명을 두고 있지만 모두 비상임입니다. 해진공과 KIND도 각각 여성 임원 1명을 두고 있으나 모두 비상임입니다. 신보는 여성 임원 2명 중 1명만 상임이며, 캠코 역시 상임 여성 임원은 1명에 그칩니다. 일부 기관을 제외하면 여성 임원은 대부분 비상임 직위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처럼 여성 임원 비율에 비상임 직책을 포함하면 마치 성별 다양성이 확보된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조사 대상 13개 기관의 비상임 임원 가운데 여성 비율은 9.5%지만, 상임 기준으로 환산하면 여성 비율은 3.1% 수준에 불과합니다.
이에 일부 기관은 여성 인재 육성 계획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기보는 2030년까지 여성 임원 비율을 35% 수준으로 확대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여성 직원 채용부터 관리자 양성, 임원으로 이어지는 인재 육성 체계를 구축하겠다는 방침입니다. 수은은 올해 핵심 보직인 인사·재무 분야에 여성 인사부장·재무관리부장·자금부장을 배치했습니다. 수은 측은 조직 관리자 중 여성 비율도 전년 대비 25.9%로 높였다고 밝혔습니다. 무보 관계자는 "올해 중 여성 이사 1명 선임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할 예정"이라며 "임원추천위원회 외부위원을 전원 여성으로 구성하는 방안을 1월 이사회에서 의결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정책금융 성별 다양성 '공허한 기준'…강제력 도입 필요
정부는 공공기관의 성별 다양성 확대를 위해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왔습니다. '공기업·준정부기관 경영지침' 제43조는 임원 임명 시 여성 비율이 20% 이상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13개 정책금융기관은 모두 이 기준에 미달하는 상태입니다. 해당 규정이 '노력 의무'에 그치는 탓에 목표를 달성하지 못해도 별도의 제재나 불이익이 없기 때문입니다. 목표가 존재하지만 이행하지 않아도 되는 구조에서는 실질적인 변화가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같은 제도 환경에서도 기관의 인사 의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도 합니다. 기은은 올해 상반기 여성 부행장 2명을 신규 선임하며 여성 고위 임원 수를 3명까지 확대했습니다. 해당 기관 기준으로 역대 최대 규모입니다. 이는 여성 임원 확대가 인재 부족이 아니라 조직의 의지와 인사 구조에 달린 문제라는 해석으로 이어집니다.
전문가들은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강제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신혜정 한국여성민우회 여성노동팀장은 "여성 임원이 없는 이유로 '적합한 대상자가 없다'는 이야기도 많이 나오지만, 왜 그런 사람이 없는지, 조직이 여성들이 계속 일할 수 있는 구조인지에 대한 고민은 부족하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이재명정부가 고용평등 임금공시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만큼, 제도가 얼마나 내실 있게 작동하는지를 지켜봐야 한다"고 강조하며 "채용·승진·임금 등 전반의 성별 격차를 드러낼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서재익 한국ESG위원회 상임회장은 "여성 임원 비율을 경영평가 정량 지표로 편입하고 미달 기관에 단계적 제재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또한 "상임·비상임을 구분한 여성 비율 최소 기준 설정과 알리오 시스템을 통한 정기 공시로 실질적인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박상진 산업은행 회장이 2월25일 서울 여의도 산은 본점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남윤서 기자 nyyyseo@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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