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하면서 촉발된 중동 전쟁으로 글로벌 에너지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이란은 석유 매장량 4위, 천연가스 매장량 2위 국가로 이란에 대한 공격과 산유국이 밀집한 중동 국가에 대한 군사적 타격과 긴장은 에너지 공급량 급감으로 이어져 국제 에너지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미국은 지난 1월 초에는 석유 매장량 1위, 천연가스 매장량 9위 국가인 베네수엘라를 공격해 마두로 대통령을 납치한 바 있다. 미국이 향후 석유와 가스의 안정적 확보와 함께 이란과 베네수엘라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중국을 압박하기 위한 의도적인 전쟁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하지만 정작 중국은 2030년까지 전기화율(최종 에너지 소비 중 전력 비중) 35% 달성을 목표로 산업과 운송, 난방 등 전 분야에서 화석연료(석탄, 석유, 가스)를 전기로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중국의 전기화율은 2020년대 초반 20%대에서 불과 2~3년에 만인 2023년에 30%를 돌파하면서 가파르게 상승했고 유럽과 미국의 전기화율(약 24%)을 이미 넘어섰다. 물론 중국의 연간 석유 소비량 중 수입 비중이 70%를 넘어서고 전체 수입의 절반 정도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구조이기에 이번 전쟁에 따른 타격을 어느 정도 입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와 전기차, 배터리 산업과 공급망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최근 전쟁을 계기로 세계 최대 ‘전기 국가’로의 도약에 더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에너지 안보의 패러다임은 과거 석유·가스 중심에서 전기화(Electrification)와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이미 전환되고 있다. 산업·수송·난방의 급속한 전기화와 재생에너지의 대거 편입이 이러한 변화를 이끌고 있다. 전통적인 에너지 안보는 중동 등 특정 지역의 자원 수급 안정성에 의존했으나, 최근의 에너지 안보는 에너지 자립을 위해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이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산업과 수송(전기차), 난방 등 전 영역에서 전기화가 진행되면서 안정적인 전력망 운영과 공급이 국가 안보의 핵심 과제가 되고 있다.
한국은 에너지의 약 94%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원유 및 정제 원료의 70% 이상을 중동 지역에서, 천연가스는 호주와 카타르, 말레이시아 등에서 전량 수입하며, 석탄은 호주와 러시아, 인도네시아 등에서, 원자력발전의 원료인 우라늄은 러시아와 영국, 카자흐스탄에서 수입하고 있다. 이렇게 수입된 원유는 산업 부문(정유, 석유화학 등)과 수송 부문에서 대부분 소비되고, 가스는 산업과 난방, 전력 생산에, 석탄은 전력 생산과 산업(특히 철강)에, 우라늄은 전력 생산에 쓰인다. 한국의 에너지 안보는 이처럼 화석연료 수입에 대부분 의존하고 있어 전쟁 등 외부 충격에 근본적으로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한국의 전기화율은 2010년대에 접어들면서 20%를 넘어섰고 2023년에는 약 22%를 기록하면서 전기가 석유(약 46%) 다음으로 최종 에너지 소비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2024년 기준 전체 발전량 중 석탄(28.7%)과 가스(28.1%), 유류(0.1%) 등 화석연료를 태워 전기를 생산하는 비중이 약 57%에 이른다. 원자력발전(31.7%)까지 고려하면 수입 에너지로 전력을 대부분(88.5%) 생산하고 있는 셈이다.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연료전지, 석탄액화가스 제외)로 국내에서 생산하는 발전량 비중은 8.5%에 불과하다. 그만큼 전력 안보가 취약하다.
전력 안보의 핵심은 재생에너지 비중을 대폭 늘리고, 이에 따른 기술 기반을 마련하는 일이다. 그린엑스포 참가자가 태양광 모듈 부스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5일 청와대에서 열린 중동 상황 대응을 위한 국무회의에서 “국제유가 문제나 원유 조달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 반복될 수 있는 일”이라며 “이 기회를 살려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신속하게 대대적으로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도 석유 등 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 체계를 재생에너지 중심의 ‘전기화(Electrification)’ 체제로 전환하는 것을 국가 생존의 핵심 전략으로 보고 있다. 석유 의존도 탈피와 전기화 가속을 위해 재생에너지와 전기차 확대, 석유화학산업의 구조 개편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재생에너지를 중심으로 한 전기화 역시 새로운 과제를 제시한다. 태양광과 풍력으로 대표되는 재생에너지로 생산되는 전력의 변동성을 단기적으로 보완하려면 에너지저장장치(ESS)와 V2G(Vehicle-to-Grid) 등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한 기술이 필요하다. 향후 장주기 변동성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P2G(Power-to-Gas), P2H(Power-to- Heat) 등 재생에너지로 생산된 전력을 다른 에너지 형태로 변환하는 기술(섹터 커플링)과 산업도 필요하다. 현재 세계 각국은 배터리 산업과 전력 변환 기술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앞으로의 전력 안보는 더 많은 화석연료를 확보하느냐가 아니라 재생에너지를 중심으로 한 안정적인 전력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배터리와 전력 변환 기술을 어떻게 확보하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권승문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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