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을 '한·중·일'이라 부르지 못하고…
(황방열의 한반도 나침반)2년 2개월 만에 주변국 표기 순서 되돌린다
2025-11-18 06:00:00 2025-11-18 06:00:00
2023년 9월6일 당시 윤석열 대통령은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이른 시일 내에 한·일·중 정상회의를 비롯한 3국 협력 메커니즘을 재개하기 위해 일본·중국과 긴밀히 소통해가겠다"면서 중국보다 일본을 먼저 말했다. '한·중·일' 표현 순서를 바꾼 것인데, 대통령실은 "우리 정부 들어 가치와 자유의 연대를 기초로 미·일과 보다 긴밀한 협력이 이뤄지고 있다"면서 "그런 점에서 북·미보다 미·북으로 보고 있고 '한·중·일'보다 '한·일·중'으로 부르고 있다"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일 한·중 정상회담이 열리는 경북 국립경주박물관에 도착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영접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999년 마닐라 동남아국가연합(ASEAN)+3(한·중·일) 회의를 계기로 만들어진 한·중·일 정상회의가 다자회의 무대 계기가 아닌 한·중·일 세 나라 역내에서 별도로 정상회의를 한 것은 2008년 일본 후쿠오카가 처음이었다. 그 뒤 일본·중국·한국 순으로 개최 순서가 정해졌다. 이에 따라 청와대와 외교부는 2010년대 초반부터 3국 정상회의 관련 발표에서는 원칙적으로 '한·일·중'으로 표현하고, 다른 일반적 사안들에서는 '한·중·일'로 했다. 정부 내 다른 부처들도 보통 '한·중·일'로 표기했고, 언론과 학계 등 민간도 마찬가지였다. 2010년에 중국이 일본을 밀어내고 국내총생산(GDP) 세계 2위로 올라선 이후로는 더 확고해졌다. 
 
그런데 윤석열정부가 이 순서를 돌연 바꿔버린 것이다. 중국 관변 매체들은 예민하게 반응했다. 특히 평소 중국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으로 잘 알려진 <환구시보>는 '윤석열 한·일·중 발언, 한국인만 이상하게 들은 것이 아니다'는 사설로 비난했다. 
 
윤석열, 한·중·일을 한·일·중으로…'일본에 아낌없이 퍼주는 외교' 상징
 
그런데 대통령 자신도 입에 붙지 않았는지 같은 달 국무회의에서는, 다시 '한·중·일'이라는 표현을 두 번 썼다. 의문이 제기되자 그는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를 통해 "앞뒤 맥락이 주로 중국 문제를 얘기하는 단락이었기 때문에 중국을 강조한다고 그렇게 말했는데, 우리가 객관적으로 중국과 일본 관계를 얘기할 때는 한·일·중으로 나도 알고 있고 그렇게 정리하겠다"고 해명했다. 대통령실은 여기에 덧붙여 "한·일·중으로 통일해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결국 '한·일·중'으로 대못이 박힌 셈인데, 윤석열정부의 외교 기조인 '일본에 아낌없이 퍼주는 외교'를 상징하는 한 단면이라 할 만하다. 
 
그는 같은 달 20일 오후(현지시간) 뉴욕 유엔(UN)총회 기조연설에서 '북·러' 표현도 '러·북'으로 바꿨다. 대통령실은 "민족 공조라고 해서 북한이 어떤 짓을 하든 맨 앞자리에 불러줘야 한다는 것은 우리 정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자유민주주의·법치·인권 가치에 대해 얼마나 한국과 진정으로 협력하느냐가 1차 기준"이라고 했다. 윤석열정부엔 2023년 9월이 '주변국 표기 순서 정리 기간'이었던 셈이다. 그 직전인 8월에 미국 버지니아주 캠프데이비드에서 한·미·일이 정상 차원에서는 처음으로 '공동의 위협에 대응하는 3자 협의체'를 공식화한 시점이었다는 점이 그 배경이었을 것이다. 
 
국책 연구기관 연구원들에게까지도 '한·중·일', '북·중·러', '북·미', '북·일', '북·러'를 '한·일·중', '중·러·북', '미·북', '일·북', '러·북'으로 바꾸라는 지시가 내려갔다. 곳곳에서 "논문, 보고서 내용에 따라 각자 알아서 표기하면 될 일인데…연구자로서 자괴심을 느낀다"는 불만이 터지기도 했다. 
 
2년 2개월 만에, 이재명정부가 이를 되돌리기로 했다. 대통령실은 16일 언론에 "동북아 3국 표기를 '한·중·일'로 통일해 사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가장 많은 사람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표기로 통일해 불필요한 논란을 없애려는 것"이라면서 "지난 정부의 표기 혼용으로 '어느 나라와 더 가깝나' 하는 등의 소모적 논쟁이 이어졌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17일에는 "정부는 국제회의체에서 관련국 간 별도로 합의된 룰이 없는 경우 관행과 언어적 편의 등을 고려해 국가명 표기 순서 방식을 계속 유지한다는 방침"이라며 "한·중·일 정상회의의 경우 의장국 순(한·일·중)으로 표기해온 것을 제외하고는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한·중·일'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불필요한 혼선이나 해석의 논란을 방지하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지난 달 30일 경북 경주 APEC 정상회의장에서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관세·안보 팩트시트 발표 직후 '공개 의미'
 
이재명정부 출범 5개월 만이라는 점에서 다소 늦은 감도 있지만, 정부의 '택일'에는 의미가 있어 보인다. 한·미 정부는 지난달 29일 경주 한·미 정상회담과 그 후속 협의를 종합한 관세·안보 팩트시트(설명자료)를 지난 14일 동시에 발표했다. 이 팩트시트에는 중국은 한 번도 직접 명시되지는 않았지만, 중국 견제 강화를 담으려는 미국과 이를 최대한 방어하려는 정부의 치열한 협상이 곳곳에 반영돼 있다. 
 
핵추진잠수함 건조는 문제는 물론이고 "양국은 북한을 포함해 동맹에 대한 모든 역내의 위협에 대한 미국의 재래식 억제 태세를 강화할 것"이라는 대목도 눈에 띈다. '역내의 위협'은 사실상 중국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되는데, 지난해 한·미 국방장관 간 안보협의회(SCM) 공동성명 중 '북한의 침략' 대목이 '북한을 포함한 모든 역내 위협'으로 강도를 높인 것이다. 
 
정부는 이를 "양측은 2006년 이래의 관련 양해를 확인한다"는 대목을 집어넣어 기존 '전략적 유연성' 합의를 재확인하는 선에서 제어했다. 2006년 1월에 노무현정부의 반기문 외교부 장관과 미국 아들 부시 행정부의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부 장관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인정하면서도 "미국은 한국이 한국민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 지역 분쟁에 개입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한국의 입장을 존중한다"는 내용에 합의한 바 있다. 
 
팩트시트의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 유지·일방적 현상 변경 반대", "항행의 자유 보장", "강제노동으로 생산된 상품 수입 대응" 등도 중국 관련 대목들이다. 
 
중국은 지난달 29일 한·미 정상회담과 그 추이를 예의 주시하면서 반발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미 동맹이 결코 대만 문제에 불을 붙이지 않기를 바란다"(지난 13일 다이빙 주한 중국대사)는 반응이 대표적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4일 팩트시트 확정 사실을 직접 발표하는 자리에서 "지난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통해 그동안 어려움을 겪던 한·중 관계가 이제 개선될 전기가 마련됐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이 또 "정부는 중국과의 꾸준한 대화를 통해 양국 관계 발전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길을 흔들림 없이 이어갈 것"이라고 강조한 것도, 이런 점을 감안한 발언이었다. 
 
황방열 통일외교 전문위원 bangyeoulhwang@gmail.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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