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중국, 일본 동북아 3국이 자유무역협정(FTA)을 논의하기 시작했습니다. 십수년도 더 된 논의가 다시 이어진 것인데요. FTA가 실현될 경우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필두로 한 보호무역주의가 팽배해지는 가운데 안정적인 방어막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쉽지 않습니다. 논의만 되고 이뤄진 게 없었던 과거가 이를 증명합니다. 3국의 FTA는 왜 어려울까요? 과연 실현 가능성이 있긴 한 걸까요? 토마토Pick이 한중일 FTA 논의를 살펴봤습니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왕원타오 중국 상무부장, 무토 요지 일본 경제산업상과 함께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제13차 한일중 경제통상장관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동북아 새 경제블록 생기나
지난달 30일 한중일 3국은 경제통상장관들이 모여 FTA 협상 재개 추진을 합의했습니다. 3국 장관 간 회의가 개최된 건 2019년 12월 이후 5년여 만인데요. 3국은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회복과 3국의 교역, 투자 확대를 강조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공통의 글로벌 이슈에도 함께 대응해야 한다”고 했는데요.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상호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예고한 가운데 이에 대한 대응을 모색하기 위한 자리라는 것을 보여주는 방증입니다.
3국은 이미 여러 분야에서 가까워지는 추세인데요. 중국이 한한령을 사실상 해제했고, 우리나라도 중국인 단체관광객의 한시적 비자 면제를 허용했죠. 중국과 일본도 점진적인 일본산 수산물 수입 재개를 합의하는 등 역사·외교 문제로 경색된 관계가 일부 완화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섞이지 못하는 세 나라
최근 세계는 인접국가끼리 뭉치며 경제블록을 만들고 있습니다. 유럽 국가들이 뭉친 유럽연합(EU), 남미의 남아메리카 공동시장(Mescosur), 동남아의 아세안(ASEAN) 등이 있죠. 심지어 미국도 멕시코, 캐나다와 무역협정(USMCA)을 체결했습니다. 그러나 한자와 불교, 유교 등 비슷한 가치관을 공유하면서도 결코 섞이기 쉽지 않은 지역이 바로 한국과 일본, 중국이죠. 세 나라는 오랜 세월 역사적으로 엮였는데요. 정치·경제적으로는 협력과 반목을 반복했지만 서로를 싫어하는 국민 정서만큼은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북한 문제로 중국을, 과거사 문제로 일본을 기피하죠. 일본은 독도와 과거사 문제로 우리나라를, 센카쿠 열도의 영토 분쟁 등의 이유로 중국을 기피합니다. 중국 역시 같은 이유로 두 나라를 꺼리고요. 켜켜이 쌓인 갈등은 실제로 FTA 협정의 난제로 작용했습니다.
새 경제블록 전망은
한중일은 예전부터 뭉칠 수 없지만, 뭉치기만 한다면 어마어마한 규모의 새 경제블록이 생길 것이라는 전망이 컸습니다. 실제로 중국과 일본은 국제통화기금(IMF)가 발표하는 명목 GDP에서 각각 세계 2위, 4위를 기록하는 경제대국입니다. 우리나라도 해마다 12~14위로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죠. 한중일 3국의 GDP를 단순 합산하면 EU보다도 높을 것으로 전망될 정도입니다. 또 WTO 기준 지난해 1~9월 수출 상위 10대 국가에 3개국 모두가 포함됐죠(1위 중국, 5위 일본, 6위 한국). 무엇보다도 기존 국제정세와 궤를 달리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정책으로부터 안정적인 시장을 개척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일 것입니다.
FTA 시도 멈춘 이유
실제 2010년대는 3국 간 FTA가 진지하게 논의됐습니다. 2016년 10차 협상까지 진행했고, 당시에는 협정 범위와 개방의 수준까지 논의했죠. 그럼에도 논의가 파국을 맞은 건 크게 두 가지 이유인데요. 우선 경제적인 이유입니다. 3국은 모두 제조업 강국으로 반도체, 자동차, 철강 등 핵심 수출 산업이 겹치는 요소가 많았죠. 섣부른 계약이 자국 산업에 너무 큰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역시 삼국 간 관계 때문이었는데요. 2010년대 후반부 들어 일본과 위안부 문제로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규제, 한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GISOMIA) 파기 등의 정치적 갈등이 있었고, 중국과는 사드 반입을 계기로 한한령이 번졌습니다. 1기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면서 미중 무역분쟁도 본격화했고요.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려 하긴 했습니다만, 상대적으로 친미 성향인 한일 양국은 중국과 더 멀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러 사태로 인해 협상은 차일피일 미뤄졌고, 2020년대 들어 코로나19 팬데믹까지 겹치면서 논의는 기약 없이 미뤄졌습니다.
갈 길 먼 3국 FTA
3국 FTA는 한 치 앞을 알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상술한 논란들로 해묵은 앙금을 해결하기까지 갈 길이 구만리이기 때문이죠. 사실 한국전쟁 이후 동북아의 정세는 늘 북·중·러와 한·미·일의 대립이었습니다. 이번 경제통상장관회의에서 중국이 미국의 관세정책을 비판했지만 한·일 장관은 말을 아낀 것에서부터 이러한 관계가 드러나죠. 특히 우리나라는 바로 위에 북한을 둔 만큼 안보 파트너인 미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독도 영유권 문제, 한복-한푸 논란 등 국민 정서마저도 서로 맞지 않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중일 FTA는 글로벌 제조·무역의 중심축이 될 높은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단기적 실현은 어렵겠지만 검토할 만한 매력적인 요소가 많은 만큼 정부가 외교적 노력을 통해 윈-윈하는 결과를 도출했으면 합니다.
안정훈 기자 ajh76063111@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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