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반도’는 ‘지옥’인가
2025-04-01 06:00:00 2025-04-01 06:00:00
좀비 세상이 된 대한민국.
 
영화 <반도>에서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오로지 대한민국에만 좀비들이 난립한다. 원인은 모른다. 영화의 목적은 좀비 세상이 된 이후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그래서 시선은 ‘생존자’들을 좇는다.
 
좀비가 되지 않은 인간들은 모두 인간일까? 이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는 먼저 인간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다. 인간은 ‘인간성’을 갖췄을 때 인간이다. 631부대원들은 좀비가 아니지만 인간이라고 볼 수도 없었다. 그들이 인간성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외부 요인 때문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인간성을 내던진 이들이었다. 좀비에 물리는 것은 내 의지와 상관없는 일이어서 어쩌면 불가피한 ‘피해’를 당하는 것이지만, 스스로 인간성을 버려 더 이상 인간이지 못한 자들은 좀비보다 더 한 괴물이 되었다.
 
이런 세상에서 활개를 치는 것이 있으니 바로 종교다. 연상호 감독의 단골 소재가 이 두 가지다. 좀비와 종교. 종교는 종교이되 사이비 종교다.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인간이 아닌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런 사이비 종교가 지배하는 세상을 연 감독은 <지옥>으로 보여줬다.
 
연 감독이 그리는 디스토피아는 정확히 우리의 현실을 반영한다. 정말 그렇다. 지금의 우리 현실이 딱 지옥 같다. “너는 몇 월 며칠 몇 시에 죽는다!”고 고지하는 영화 속 정체 모를 존재는 지금의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일지도 모른다. 영화처럼 생명을 잃는 죽음은 아닐진대 탄핵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마치 진짜 죽을 것처럼 헌재 판결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인다. 매주 광화문에서 목청을 높이는 어떤 목사는 현실판 정진수 의장과 닮았다. 그를 따르는 광신도들은 매주 성실히 광화문 광장을 메운다. 극성 유튜버들과 추종자들은 또 어떠한가. 화살촉 집단의 현현이라 할 만하지 않은가.
 
그럼 대체 좀비보다 더 한 인간성 포기자들과 지옥 세계를 ‘창조’하는 광신도들은 왜, 어떻게 생겨나는지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신이 믿고 싶은 게 신인가요? 아니면 그냥 두려운 건가요?"
 
정진수 의장은 되레 사람들에게 묻는다. 확고한 믿음으로 종교를 갖는 것인지, 언제 고지의 존재가 나타나 내가 죽는다는 사실을 말해줄지 두려워 종교를 갖는 것인지를. 인간은 나약하기에 두려움을 이유로 종교를 갖는 것을 탓할 수는 없다. 문제는 정말 단죄가, 죽음이 두렵다면 선해져야 하는데 사람들의 행태는 반대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고지를 받은 사람을 향해 돌을 던지는 것, 즉 마녀사냥을 일삼거나 종교에 반하는 자들을 악의 세력으로 몰아 인간들끼리 서로 심판하고 벌하기 바쁘다. 이성을 잃고 인간성을 내버린 좀비의 모습이다. 광기에 휩싸이면 인간은 좀비가 되어가는 줄도 모르게 좀비가 된다.
 
두려움과 불안, 공포가 광기로 변해가는 것을 막는 방법은 없을까. 방법은 없지 않을 것이다. 없으면 만들면 된다. 그런데도 연상호 감독이 매번 디스토피아만 그려내는 데에는 작금의 문제가 방법의 유무에 있다기보다 우리가 방법을 찾는 것마저 포기한 것처럼 절망에 빠져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몇 시간 뒤면 새로운 세상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
“제가 있던 세상도 나쁘지 않았어요.”
 
긴 사투 끝에 좀비의 땅 ‘반도’를 떠나는 준이에게 미군은 ‘새로운 세상’이 있다는 걸, 그곳에는 희망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했다. 하지만 준이는 전 세계가 버린 그 땅도 ‘나쁘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그건 포기하지 않는 엄마가 있어서였고 그런 엄마가 곁에 있어서였다. 진짜 희망은 포기하지 않는 누군가의 존재이다. 또 포기하지 않게 하는 누군가의 존재이다. 우리가 서로에게 그런 존재들이 된다면 ‘반도’는 결코 ‘지옥’이 아닐 것이다. 지옥이 아니어야 한다.
 
이승연 작가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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