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노동의 그늘)②병원은 ‘선택 아닌 필수’…문제는 인력 확충
열악한 노동환경에 야간 전담 근무제 도입까지
전문가들 “고정 야간노동, 건강에 악영향 우려”
노조 “만성적 인력난 해결돼야 의료 현장 개선”
2025-11-18 13:42:57 2025-11-18 14:36:11
[뉴스토마토 안창현 기자] 직업환경의학 전문의들은 장시간 노동과 높은 노동강도를 가진 한국 사회에서 야간노동은 위험하다고 진단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야간노동을 '전담'으로 하는 노동 형태는 더욱 위험하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그러면서 새벽배송과 야간노동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에서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최우선으로 보장하는 방향의 논의가 진행돼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일터건강을 지키는 직업환경의학과의사회'는 지난 13일 성명을 내고 “최근 몇 년 사이 급증한 야간노동이 노동자들에게 수면장애를 유발하고 과로를 심화시켜 질병과 사고 위험을 크게 키우는 현실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며 “모든 야간노동을 전면적으로 금지할 수는 없지만, 불필요한 야간노동은 최대한 줄이고 정부는 야간노동 최소화 원칙을 명확히 천명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문제는 24시간 의료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병원에서 야간노동이 ‘선택이 아닌 필수’ 노동이란 점입니다. 더구나 핵심 보건의료 인력인 간호사의 경우, 일부 병원에선 야간전담간호사 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야간전담간호사 제도는 현장 간호사들이 야간근무를 포함한 불규칙한 교대제를 가장 힘든 일로 꼽는 상황에서 간호 인력 부족에 대한 정책적 대안으로 제시된 겁니다. 
 
최복준 보건의료노조 정책실장은 “야간 전담 근무제는 만성적인 인력난 해결을 위해 야간근무를 고정적으로 담당하는 인력을 두고 나머지 인력들이 그나마 규칙적인 교대제를 유지하기 위해 시행됐다”며 “당시 현장에서도 의견이 엇갈렸지만, 과도한 업무 부담과 규칙적인 근무시간에 대한 열망이 커서 우선 도입된 측면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야간근무 일수를 제한하고 노동강도를 줄이는 등 보호장치를 마련했지만, 야간노동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면 장기적인 대안이 될 수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서울 시내 대학병원에서 간호사들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보건복지부가 권고하는 ‘간호인력 야간근무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야간근무는 월 14일 이내로 제한하고, 2일 이상 연속한 경우 48시간 이상의 휴식을 보장하도록 했습니다. 또 건강권 보호를 위해 연속 3일, 연속 기간 3개월 이하로 제한하고, 또 1년에 최대 9개월까지 야간 전담 근무를 할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습니다. 다만 윤석열정부 때인 2023년 10월에 야간근무 일수가 기존 14일에서 15일로 늘어났습니다. 
 
야간 전담 근무 경험이 있는 간호사들을 인터뷰한 적 있는 강모열 서울성모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야간전담간호사들은 흔히 위장장애와 체중·생리 주기 변화를 경험한다”며 “면담에 응한 간호사들은 돈을 적게 벌더라도 가능하면 야간 전담을 안 하거나 최소한으로 1년에 한두 달까지만 하고 싶다고 하다”고 전했습니다. 이어 “야간근무가 저연차에 강제되는 분위기도 있고, 야간 전담 근무를 위해 계약직 직원을 채용하기도 한다”면서 “야간 업무 강도가 높고 수면시간 보장이 없는 국내 간호사 현실에서 고정 야간근무는 노동자의 몸과 마음을 망가지게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직업환경의학 전문의기도 한 류현철 노동부 산업안전보건본부장은 지난해 11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기관지인 <일터>에 ‘고정야간노동은 더 위험하다’라는 칼럼을 기재한 바 있습니다. 해당 칼럼에 따르면 병원에서 야간전담 근무가 도입되던 당시에는 야간전담간호사들은 3교대(낮·저녁·밤 근무) 간호사보다 직무 만족도가 높고, 생활 패턴이 규칙적이면서 야간수당을 받는 등 장점이 뚜렷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하지만 최근 진행된 심층면접 연구들에선 간호사 연차가 올라갈수록 야간 전담을 꺼리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평가입니다. 급여가 많아지거나 관리자나 환자와의 갈등이 적은 반면, 응급상황 발생 시 대처 자원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거나 생리 주기 변동, 사회적 활력 저하 등을 호소하는 사례가 높다는 겁니다. 
 
보건의료노조가 지난 6월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2025년 보건의료노동자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앞서 근로복지공단은 지난해 7월 19년5개월 동안 야간교대근무를 하다 유방암을 진단받은 간호사에 대해 산업재해 인정 판결을 내린 바 있습니다. 직업성 암 인정 기간은 25년입니다. 하지만 20년 미만의 기간에도 야간근무 기간과 불규칙한 교대근무를 업무상 유방암 발생 원인으로 그 위험성을 인정했습니다. 
 
전문가들은 특정 인력에게 야간근무를 전담하게 하고 수가를 가산하는 정책이 아닌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무엇보다 24시간 근무가 불가피한 병원에서 안정적인 교대제 근무 시행될 수 있도록 인력 확보가 시급하다는 지적입니다. 
 
한 전직 간호사는 “수도권 대학병원에서 7년간 간호사로 일을 하다 너무 지쳐 결국 사직하게 됐다”며 “간호사 1명이 병원에 근무하는 8시간 동안 16명의 입원 환자에게 검사와 수술, 응급 상황, 기록 업무 등을 동시에 해야 한다. 환자 말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 중요하지만, 환자와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치고 일하는 게 현실”이라고 토로했습니다. 
 
보건의료노조가 4만4000여명의 노동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2025년 보건의료노동자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전체 응답자의 15.6%가 최근 2년 동안 ‘한 번 이상의 업무상 사고 및 재해를 경험했다’고 응답했습니다. 사고 발생 원인으로는 인력 부족(76.3%), 수면장애 및 피로 누적(68.8%)이 높은 수준으로 꼽혔습니다. 또 보건의료 노동자 3명 중 2명(63.4%)은 최근 3개월 사이 이직을 고민한 적이 있다고 답했는데, 그 이유로는 열악한 근무조건(43.0%)과 노동강도(29.0%)가 가장 많았습니다. 직장생활 만족도 조사에서도 인력 수준에 대한 만족도가 28.8%로 모든 조사 지표 중 가장 낮게 조사됐습니다. 
 
안창현 기자 chah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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