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안창현 기자] 야간노동의 위험성은 오래전부터 제기됐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2007년부터 야간노동을 '2급 발암물질'로 분류하고 있으며, 프랑스와 핀란드 등 해외 선진국들은 야간노동을 원칙적으로 금지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국내에선 아직까지 별다른 규제 장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는 사이 야간노동으로 인한 과로사 사고들이 이어졌고, 최근 '새벽배송 금지' 논란 등은 사회적 쟁점으로까지 부각됐습니다. 다양한 현장의 목소리를 들으며 야간노동에 대한 논의를 해 나갈 시점입니다. (편집자 주)

"야간 근무가 있는 날엔 저녁 6시에 출근해서 아침 9시에 퇴근해요. 연달아 야간 근무를 서려면 출퇴근 시간 빼고 낮엔 쪽잠을 자다가 바로 출근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야간 근무 둘째 날이 되면 집중력도 떨어지고 멍한 상태에서 일하게 됩니다. 그다음 비번에 쉬더라도 몸이 잘 회복되지 않아요. 하루이틀이면 그런대로 버티겠지만, 몇 년째 이 짓을 계속하다 보면 몸이 죽어납니다."
인천공항 자회사에서 근무하는 이호현(34)씨는 9년 동안 터미널 운영 일을 하고 있습니다. 3조2교대로 '주주야야비휴'(주간-주간-야간-야간-비번-휴무) 근무 형태를 반복합니다. 일주일 총 근무시간은 48시간입니다. 하지만 업무 특성상 주 6일 중 이틀은 연속 야근을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는 연속으로 야근을 하는 날에는 보통 3시간 정도밖에 못 잔다고 했습니다. 일하는 중간 휴게시간이 주어지지만, 업무 특성상 제대로 쉬기가 힘듭니다. 터미널 운영 서비스는 공항 내 각종 여객 업무와 안내, 시설 운영, 유실물 관리 등의 다양한 업무가 24시간 내내 이뤄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씨는 "공항 안내 데스크와 콜센터 운영, 유모차 수거부터 교통약자 지원까지 업무 분장이 다양하다 보니까 상황이 생기면 휴게시간에도 일을 나가야 한다"며 "평균 2~3만보를 걷는데, 신입 직원이 들어와서 1년 정도 있으면 발목 부상이나 족저근막염에 걸려 병가를 내는 일이 잦다"고 했습니다. 이어 "불규칙한 수면 등으로 뇌심혈관계 질환도 많이 생긴다"며 "나 같은 경우도 협심증이 의심된다는 진단을 받고 적정한 수면 시간(7~9시간)을 권장받았다"고 말했습니다.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에서 공항 노동자들이 터미널 유리 외벽 물청소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실제 연속 야간노동에 시달리는 인천공항 자회사 노동자들은 고혈압과 당뇨, 이상지질혈증 유병률이 일반 국민보다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가 공개한 직장인 건강검진 자료를 보면, 진난해 기준으로 교대 노동자 약 2200명의 뇌심혈관질환 기저질환 유병률은 29.9%를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국민건강보험공단 통계연보에 따르면, 2023년 기준으로 대한민국 국민(20~64세)의 관련 유병률은 평균 19.3%(2023년 기준)입니다. 공항 노동자들의 뇌심혈관질환 기저질환 유병률이 국민 평균보다 10%포인트나 더 높은 겁니다.
교대 노동자는 고혈압 유병률 17.2%(국민 평균 13.9%), 당뇨 유병률 9.7%(국민 평균 5.9%)도 높습니다. 각종 질환에서 유병률 수치가 일반 국민 평균보다 높다는 건 교대노동이 건강에 얼마나 큰 악영향을 미치지는 잘 보여줍니다. 공공운수노조에 따르면, 인천공항 자회사 노동자들의 뇌심혈관 질환 유병률은 매년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올해만 해도 뇌심혈관 질환으로 인한 사고가 3건이나 발생했습니다. 지난 3월부터 8월까지 자회사 노동자 5명은 야간 근무 중 사망하거나 추락사하기도 했습니다.
이동진씨(47)가 소속된 셔틀트레인 유지·보수 사업부에선 올해 2명이 뇌출혈로 쓰러지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이씨는 "주간에는 터미널 사이로 많은 열차가 운행되기 때문에 긴급 장애가 아니면 정비를 할 수 없고, 주로 야간 근무 때 작업하는 경우가 많다. 야간 업무 강도도 더 세다"면서 "3개 조가 24시간 돌아가는 상황에서 연속으로 야근을 하면 제대로 쉬지 못하고 현장에 투입될 수밖에 없으니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든 게 사실"이라고 토로했습니다.
인천공항 보안경비 업무를 맡고 있는 박종철(36)씨도 "보안경비대는 퇴사율이 굉장히 높다. 야간 근무가 힘들어서 퇴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인천공항이 확장되면서 공항 외곽 거리가 40㎞에 달하게 됐다. 야외 근무에 투입되고 철수하는 시간만 따져도 차로 30분 정도 걸린다"고 했습니다. 이어 "공항공사는 노동자 건강 문제가 부각되자 3조 근무를 4조 근무로 바꿨지만, 자회사 외곽 사업소에선 인력 충원도 없이 아직까지 3개팀이 맡아서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총파업 현수막이 붙은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에서 공항 노동자가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문재인정부 때인 2018년 정부는 인천공항공사 비정규직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실제 비정규직 약 1만명 가운데 정규직으로 전환된 건 240여명에 불과합니다. 대다수 인력은 공항공사 자회사들이 설립된 후 자회사로 고용이 전환됐습니다. 게다가 지난해 말 인천공항이 4단계 확장을 완료하면서 공항 면적은 2배 가까이 늘었습니다. 반면 그에 맞는 인력은 충원되지 않았습니다.
박씨는 "당시 '비정규직 제로' 정책으로 공항 자회사가 설립되고 고용승계가 이뤄졌지만, 처우는 나아진 게 없고 노동 강도만 더 높아진 것 같다"며 "자회사가 모회사의 관리감독 아래 있어서 눈치만 보는 상황이다. 모회사의 지원이 없으니 자회사의 업무 수행 능력은 떨어지고, 그러면 다시 모회사는 예산을 깎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했습니다.
인천공항공사 자회사 노동자들이 모인 인천공항지역지부는 최소한의 건강권을 지키기 위해 연속 야간 근무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현재 3조2교대를 4조2교대로 개편해야 한다는 겁니다. 인천공항지부 관계자는 "4조2교대 개편은 이미 5년 전에 노·사·전문가협의회에서도 합의했던 내용"이라며 "실제 개편안을 마련해 지난해 시범 운영하기로 했지만, 사측의 반대로 중단됐다"고 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아직까지 규제 방안이 마련되지 않은 야간노동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혜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직업환경의학전문의는 "야간노동이 수면 건강이나 심혈관계, 암 발생 등 건강에 미치는 나쁜 영향은 이미 많은 연구를 통해 알려졌다"며 "노동자의 건강을 위해선 야간노동을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지만, 불가피하다면 야간노동 시간이나 횟수를 줄여서 노출을 최소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안창현 기자 chah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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