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강석영 기자] 대장동 1심 선고 '항소 포기'와 관련해 '부당한 지시'를 주장하는 검찰의 집단행동은 정진우 서울중앙지검장에 이어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의 사의 표명까지 불러봤습니다. 반면 대검찰청이 항소 포기를 검토하라고 지시한 이유 중 하나인 검찰의 '별건수사' 관행을 반성하는 검사들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수사·공판팀의 판단은 옳았고, 여기에 제동을 거는 건 모두 부당한 지시, 윗선 개입이라고 주장하는 꼴입니다. '검사의 처분에는 오류가 없다'는 이른바 검찰의 무오류 신화에서 이번 검란 사태가 벌어졌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대장동 1심 선고 항소 포기 사태가 벌어진 지 13일자로 일주일째를 맞고 있습니다. 항소 포기 결정과 관련해 법무부와 대검, 중앙지검 수뇌부, 대장동 수사·공판팀 사이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당사자들 말이 엇갈리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부당한 지시, 수사 외압을 주장하는 쪽에 따를 경우 대검은 대장동 사건 수사·공판팀에 검찰권 남용을 이유로 항소 포기를 지시했습니다.
강백신 대구고검 검사가 지난 8일 검찰 내부망에 올린 글에 따르면, 박철우 대검 반부패부장은 지난 6일 대장동 1심 선고에 대한 검찰 측 항소장을 보고 받고는 담당 연구관을 통해 '대검 검토 요청사항'을 내려보냈습니다.
요청사항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1심 재판부는 2022년 1월1일 개정 형사소송법 이전에 기소된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배임) 사건에 대해서는 2022년 1월1일 이후 작성된 피의자신문조서에 대해서도 개정 전 형사소송법을 적용해 조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했는데 유사한 사례가 있는지 검토 △언론에 보도된 내용에 따르면 검찰의 별건수사, 검찰의 전면적인 배임 공소사실 변경에 대한 법원의 지적 관련 팩트체크 및 적법성 검토 등입니다.
여기 핵심은 대장동 1심 재판부가 이 사건의 공판을 진행하며 지적했던 검찰의 별건수사에 관해 소명하라는 겁니다. 대장동 1심 판결문에 따르면, 검찰은 김만배씨(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 등 대장동 일당을 배임죄로 기소한 뒤 같은 사실관계를 기초로 하는 공직자의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 수사를 이어갔습니다. 사실상 배임죄 수사를 계속한 겁니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얻은 진술과 증거를 바탕으로 이재명 대통령(대장동 개발 당시 성남시장)을 배임죄 공범으로 특정했습니다. 배임액도 651억원에서 4895억원으로 크게 늘려 공소장을 전면 변경했습니다. 이에 1심 재판부는 검찰의 별건수사를 인정하고, 이해충돌방지법 수사로 얻은 증거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던 겁니다.
1심 판결문에선 검찰이 개정 형사소송법을 이용해 꼼수를 쓴 정황도 드러납니다. 2022년 1월1일 검찰의 피의자신문조서 증거능력을 제한한 형사소송법 개정 시행을 기준으로, 검찰은 법 시행 전 기소한 배임 사건에서 법 시행 후 작성한 이해충돌방지법 피의자신문조서를 증거로 제출했습니다. 피의자신문조서 증거능력을 쉽게 인정받으려는 꼼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울러 대검은 대장동 사건에 대한 '항소 부제기'를 지시한 이유로 유동규 전 본부장이 1심에서 검찰 구형보다 중형을 받았기 때문에 검찰이 항소할 실익이 없다는 점도 들었습니다. 강백신 검사에 따르면, 이준호 중앙지검 4차장검사가 지난 7일 오후 11시20분경 대검으로부터 이러한 취지의 통보를 받았다는 걸 수사·공판팀에게 말했다고 합니다.
사실 유 전 본부장에 관한 검찰의 구형은 이 사건 결심공판 때부터 논란이 됐습니다. 검찰은 지난 6월 대장동 일당에 대한 결심공판에서 유 전 본부장에겐 징역 7년을 구형한 반면, 정영학 회계사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준공무원으로 공적 책임이 있는 유 전 본부장보다 민간업자인 정 회계사에게 중형을 구형한 겁니다. 검찰에 유리하도록 진술 태도를 바꾼 유 전 본부장을 봐주는 구형이란 지적이 나온 이유입니다.
그러나 재판부는 오히려 유 전 본부장에게 징역 8년, 정 회계사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습니다.
결국 대검은 '대검 검토 요청사항'을 통해 법원에서도 인정한 검찰권 남용을 수사·공판팀에 지적했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 지휘부가 항소 포기를 결정한 건 수사·공판팀이 대검 요구사항에 대해서 소명한 내용이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한 걸로 추정됩니다.
법원 판단에 더해 최근 남욱 변호사 등은 대장동 관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 검찰의 강압 수사를 더욱 구체적으로 진술하고 있습니다. 특히 남 변호사가 지난 7일 정진상 전 민주당 당대표실 정무조정실장의 대장동 관련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폭로한 강압 수사 정황(본지 11월7일자
"정일권 검사, 애들 사진 보여주며 '배 가른다'고 했다"…남욱, 대장동 ‘강압수사’ 폭로)은 형법 125조(폭행, 가혹행위)에 해당할 정도로 충격적입니다.
하지만 검찰 내에서 검찰권 남용을 반성하는 검사는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일각에선 지난 3월7일 법원이 윤석열씨를 구속취소하는 결정을 내린 것에 대해 즉시항고 포기한 검찰 수뇌부에 반발하지 않았던 검찰 내 분위기를 지적합니다. '선택적 분노'라는 겁니다.
특히 대장동 1심 선고 항소 포기에 따른 검란에 관해선 검찰이 자신의 오류를 반성하지 않고 선택적으로만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비판이 나옵니다. 검사의 처분에는 오류가 없다는 '검찰 무오류 신화'에 대한 믿음이 검찰 조직을 지배하고 있다는 지적이기도 합니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검찰이 항소와 상고를 남발하는 이유는 무오류 신화 때문"이라며 "재판에서 검찰권 남용이 인정되더라도 자신의 오류는 눈 감는 게 검찰"이라고 말했습니다.
강석영 기자 ksy@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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