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태현 기자·정주현 인턴기자] 부동산 임대업 등을 목적으로 분양받을 수 없는 지식산업센터(이하 지산)를 마치 제3자에게 임대할 수 있는 것처럼 속이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거액의 돈을 투자했다가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는 겁니다. 분양사들이 속이려는 목적을 품고 의도적으로 사실과 다른 설명을 해도, 현행법상 피해자가 구제받기 어려운 구조적 허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주 지식산업센터 사기 분양 피해자 대책위원회가 지난 2023년 9월5일 광주지법 앞에서 엄정 처벌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사진=뉴시스)
3일 <뉴스토마토>가 지산 사기 분양 관련 판결문 8개를 확인한 결과, 분양 대행사들은 '부동산 임대업'을 목적으로 지산을 활용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임대업을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것처럼 속여 계약을 했다가 8건의 소송에서 모두 패소했습니다.
분양 대행사의 책임을 인정한 각 법원은 공통적으로 "분양 대행사들이 허위 사실을 고지함으로써 피해자들을 기망한 때에 해당된다"고 했습니다. 지산에 부동산 임대업이 가능하다는 설명을 듣고 투자한 사람들은 사례마다 차이가 있으나, 개인이 임대사업을 목적으로 분양을 받아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설명을 듣고 계약을 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지산에 입주 가능한 시설일 경우 분양대금의 80~90%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습니다. 수도권 내 공장입지의 어려움 등을 완화하기 위한 대안으로 제도가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다만 지산은 '산업직접활성화 및 공장설립에 관한 법률'(산업집적법)에 따라 제조업, 지식기반사업, 정보통신산업 등으로 입주대상시설이 제한돼 있습니다. 특히 입주자 또는 관리자가 비대상 업종으로 사용하거나 제3자에게 임대하는 행위는 법으로 금지돼 있습니다.
그럼에도 분양 대행사들은 제도를 악용 "부동산 임대업도 가능하다"는 식으로 홍보하고 투자자들을 모집했다고 합니다. 피해자들은 분양 대행사의 말만 믿고 분양을 받은 뒤 은행 대출을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임대업은 지산의 설립 목적과 다르기 때문에 대출이 불가능했던 겁니다. 피해자들은 은행으로부터 '임대 목적의 경우 대출이 불가능하다'라는 통보를 받고서야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됐다고 합니다.
<뉴스토마토>가 지산 사기 분양 피해자들로부터 확보한 계약서 내용. (사진=뉴스토마토)
문제는 또 있습니다. 피해자들이 분양 대행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더라도 구제를 받기가 쉽지 않다는 겁니다. 분양 대행사로부터 기망을 당했다는 피해자의 주장이 법원에서 인정될 경우엔 그나마 투자한 돈을 돌려받을 수 있지만, 대부분은 계약서에 기재된 내용 때문에 돈을 돌려받지 못합니다. 피해자가 온전히 손해를 떠안는 경우도 속출하고 있습니다.
피해자들이 쓴 계약서에는 "산업집적법 등 관련법에서 정한 사항을 준수해야 한다"며 "이를 준수하지 않아 발생되는 피해는 전적으로 을의 책임"이라는 문구가 들어가 있습니다. 피해가 발생할 경우 피해자들은 분양사의 손해까지 배상해야 하는 셈입니다.
계약을 할 당시 임대업이 가능하다고 설명을 들은 피해자들은 확인서에 "본인은 '분양계약'과 관련해 '분양계약서' 및 본 '확인서'의 내용을 상담 사원을 통하여 숙지했다", "본인은 '분양계약'과 관련해 상담사원으로부터 전매 및 임대보장에 관해 약속받은 사실이 없다"는 내용을 기재합니다.
임대업이 문제가 없다면 계약서에 '부동산 임대업'을 쓰면 되지만 피해자들은 분양사의 요구에 따라 지산에 입주할 수 있는 요건인 '정보통신업'으로 분양받고 계약서를 씁니다. 법원 판결 때 피해자들이 불리해지는 원인 중 하나입니다. 일부 피해자들은 이미 다수 계약을 했던 분양 대행사가 허위 설명을 한 점, 믿고 사인했기 때문에 속았다고 인정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피해자들은 계약서상의 해당 문구 때문에 돈을 돌려받기 어렵게 되는 겁니다.
이종선 지식산업센터 사기 분양 전국 피해자 대책위원장은 "(분양 대행사가) 설명을 하고 사인을 시킨다. 계약서 문구를 자기들 유리한대로 작성했는데, 계약서만 보고 재판을 하니 (우리가) 패소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지자체·분양사 책임 회피 속 제도적 사각지대 지속
산업집적법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는 지산에 대한 입주 승인, 분양 공고문 승인, 설립 승인 등 권한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감독 의무가 강제되지 않아 사후 규제가 사실상 작동하지 않는 구조입니다. 무엇보다 현행법상 지산은 단지 안과 밖을 구분해서 입주할 수 있는 사업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단지 안의 경우에는 법의 취지에 맞게 제한되지만, 단지 밖의 경우에는 지자체장이 인정하는 사업을 영위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습니다.
한 사기 분양 피해자가 고양시청에 보낸 질의서에 대해 고양시는 "(지산엔) 실사용 사업자와 일반인 모두 입주할 수 있고, 최초 수분양자도 임대업이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최초 수분양자도 임대업이 가능하다'라는 건 산업집적법의 입주 자격 요건에 반하는 해석입니다. 지자체 조차 제도를 혼동하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지산 건립은 지자체들이 예비 청년가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열을 올린 사업이었습니다. 지산 입주자들이 늘어나면 지자체 입장에서는 공실 감소 등에 따른 단기적 이익이 생기고, 분양 대행사로서는 분양 수식을 거두게 됩니다. 사기 분양이 벌어지더라도 어느 누구 하나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실제로 한 분양 대행사는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처음에는 문제가 좀 있어서 지자체에서 유선으로 연락도 오고 공문도 보냈지만, 지금은 영업 방식이나 광고에 대해서 따로 터치가 없다"고 했습니다.
김태현 기자 taehyun13@etomato.com
정주현 인턴기자 wjdwngus98@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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