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사생활 없는 방, 20명이 돌리는 세탁기 1대’…청년들이 선택한 2평의 현실
청년 가구, 주거비 부담에 고시원·하숙 찾아
저렴한 월세 식사 제공 등 생활비 절감 장점
공간 협소 공용시설 부족…주거 대안 한계
2025-10-28 15:16:54 2025-11-03 10:16:17
[뉴스토마토 김태현 기자·라선근 인턴기자] 아침마다 벽 너머에서 울리는 알람 소리에 잠을 설칩니다. 넣을 공간이 없어 침대 옆엔 옷가지와 생활용품이 뒤섞여 있습니다. 20명이 함께 사용하는 세탁기 한 대는 쉴 틈이 없습니다. 청년들이 선택한 대안 거주지의 현주소입니다. 
 
<뉴스토마토> 취재진은 지난 15일부터 24일까지 서울 관악구와 서초구, 동작구 등의 고시원과 하숙집 열세 곳을 방문해 청년들의 삶을 관찰했습니다. 
 
<뉴스토마토> 취재진이 지난 24일 방문한 서울 서초구 소재 월 52만원에 임대되고 있는 고시원. 1평이 조금 넘는 크기로 성인 남성이 들어가면 여유 공간이 없다. (사진=뉴스토마토)
 
1~2평 공간, 빨래 돌리기 위해 무한 기다림 
 
최근 고시원 중개 플랫폼에서는 ‘쌀과 라면 무제한 제공’, ‘합리적 가격’ 등을 강조하는 모습이 자주 포착됩니다. 플랫폼에 올라와 있는 사진만 봐도 공간이 넉넉하지 않아 보이지만, 실제로 찾아보면 성인 남성 한 명이 누우면 가득차는 1~2평 공간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수납 공간이 부족해 옷가지와 생활용품을 놓으면 가득 차는 방이 월 30만~40만원 수준으로 임대됐고 면적이 조금 넓어지면 50만원 선까지 올랐습니다. 
 
공용 세탁기 한 대를 20명 이상의 입주자들이 사용하기 때문에, 빨래를 하기 위해선 앞선 사람의 세탁이 끝날 때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합니다. 건조기 사용을 놓친 빨래들은 건조대에 널려 꿉꿉한 냄새를 만들어냅니다. 코인 빨래방이나 세탁 대행업체들이 우후죽순 생기고 있지만 생활비를 줄이기 위해 고시원을 선택한 청년들에게 큰 대안은 아닙니다. 
 
<뉴스토마토> 취재진이 지난 24일 방문한 서울 동작구 소재 고시원. 공용 공간에 빨래를 말리는 건조대가 빼곡하게 널려져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쌀과 라면 제공'이라는 달콤한 문구와는 달리 주방은 두 사람이 사용하면 몸을 부딪힐 정도로 좁았습니다. 공용 화장실과 샤워실도 협소하고 수가 부족해 출퇴근 시간대엔 이용이 어려워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청년들이 고시원이나 하숙집을 찾는 이유가 있습니다. '저렴한 주거비' 때문입니다. 
 
관악구의 한 고시원에 거주 중인 A(31)씨는 “서울은 전세 보증금이나 월세가 너무 비싸다. 반면 고시원은 보증금이 없거나 저렴하고 공과금이 월세에 포함돼 부담이 적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불편함은 청년들이 감당해야 합니다. A씨는 “샤워실이나 화장실을 다른 사람이 사용하고 있으면 하염없이 기다려야 한다. 빨래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노후된 고시원은 방음이 안 되고 주방 옆 방이면 바퀴벌레가 나오기도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부동산 정보 플랫폼 ‘다방’이 지난 23일 발표한 ‘9월 다방여지도’에 따르면 서울 지역 전용면적  33㎡ 이하 연립 다세대 원룸의 평균 월세(보증금 1000만원 기준)는 72만원으로 집계됐습니다. 청년층(19~34세)의 2024년 평균 연소득(3092만원)을 감안하면 당장 주거비로만 한 달에 월급(약 230만원)의 3분의 1이 나가는 상황입니다. 국가데이터처 ‘지표누리’에 따르면 소득 대비 주택임대료 비율(RIR)이 20%를 넘으면 주거비 부담이 과중하다고 평가합니다. 
 
월급이 늘어나는 속도보다 주거비가 오르는 속도가 빠르다 보니 청년들은 월세가 10만원이라도 적은 곳을 찾아 나섭니다.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전월세 가격이 오르면서 주거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고시원이나 하숙집 등 대안 주거를 찾는 수요가 늘어나는 이유입니다. 
 
숙소 중개 플랫폼 ‘맘스테이’에 따르면 올해 1~9월 하숙, 셰어하우스 등의 장기 숙소 방문 예약 건수는 1193건으로 전년 같은 기간(773건) 대비 약 54% 증가했습니다. 특히 ‘방문 예약’은 회원만 가능한데 신규 가입도 같은 기간 3013명으로 전년비(1203명) 2.5배 증가했습니다. 이승원 맘스테이 대표는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물가와 월세 상승, 보증금 부담으로 국내 학생뿐만 아니라 유학생들도 고시원, 하숙 등 보증금 부담이 적고 식사까지 제공하는 가성비 좋은 숙소를 많이 찾는다”고 말했습니다. 
 
원룸과 비슷한 가격에 식사가 제공되는 건 하숙의 장점 중 하나입니다. 맘스테이를 통해 홍보 중인 하숙집 평균 월세는 50만~60만원 수준으로 평일 기준 하루 두 번(아침·저녁) 반찬과 국이 포함된 식사가 제공됩니다. 고시원과 비교했을 때 방이 큰 곳도 있고 빨래를 대신 해주는 곳도 있습니다. 
 
고시원과 하숙을 모두 경험한 김영주(28)씨도 보증금과 공과금 등 생활비에 대한 부담이 적어 두 곳을 선택했습니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같은 이유로 고시원과 하숙집을 찾는다”며 “쌀과 라면, 집밥이 제공되는 점은 좋았지만 여러 사람과 함께 생활해 나만의 공간이 없는 점이 불편했다. 특히 식사와 빨래를 할 때가 불편했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15일 <뉴스토마토> 취재진이 방문한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한 하숙집의 주방 모습. (사진=뉴스토마토)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주거 환경 탓에 결국 부담을 떠안고 원룸을 계약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하숙집은 1~2평 크기의 방으로 면적이 넓지 않았고 제공되는 식사는 냉장고 속 반찬 몇 통이 전부였습니다. 임대인은 “직접 조리한 반찬을 언제든 이용할 수 있고 수시로 확인해 채워놓는다”고 안내하며 “너무 차면 전자레인지에 돌려서 이용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반찬은 김치, 오이무침, 장조림, 어묵볶음 네 가지가 전부였고 스무 명 이상의 청년들이 식사하기에는 양이 부족해 보였습니다. 
 
최근 원룸을 계약한 직장인 B(33)씨는 “생활비를 아끼려 하숙집을 찾아봤지만 제공되는 식사 메뉴가 부실하고 시설도 안 좋았다”며 “방은 잠만 잘 수 있는 정도의 크기였고 생각보다 저렴하지 않았다. 생활하는 데 포기해야 할 조건들이 너무 많아 결국 원룸으로 들어갔다”고 말했습니다. 
 
청년 주거 지원 있지만, 편법에 사각지대까지
 
대안 주거를 찾는 청년들이 늘고 있지만 협소한 공간, 부족한 공용시설 문제는 개선이 필요한 곳이 많았습니다. 서울시는 청년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월 최대 20만원을 12개월간 지급하는 ‘청년월세지원’ 사업을 운영하고 있지만 한시적이라는 한계도 명확합니다. 
 
또 지원 조건 중 ‘주민등록등본상 서울시에 거주’ 항목을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취재진이 방문했던 하숙집은 홈페이지에 ‘전입신고 불가’라고 명시돼 있었습니다. 거주하고 있지 않으면서 전입한 것처럼 꾸며달라는 요청이 빈번하게 발생해 이를 방지하기 위함이라고 하지만, 이 때문에 전입신고를 하지 못한 청년들은 일부 혜택을 받을 기회조차 갖지 못하게 됩니다. 
 
주거 관련 상담을 진행하는 서울시 주택정책과 관계자는 “전입신고를 하지 않았을 때 현주소에서 거주 사실이 확인되지 않으면 주민등록 말소가 될 수 있고 추후 재등록 시 과태료가 부과된다”며 “청년월세지원 같은 복지사업에도 지원할 수 없으니 전입신고 하는 것을 권장한다”고 당부했습니다. 
 
김태현 기자 taehyun13@etomato.com
라선근 인턴기자 rieul@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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