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바케팔레 린포체 화석의 출토 당시 모습. 돔형 정수리뼈가 선명하게 드러나 보인다. (사진=네이처 논문/Lindsay Zanno)
[뉴스토마토 서경주 객원기자] 몽골 고비사막은 한 세기 넘게 고생물학자들에게 ‘끝없는 보물창고’로 불려왔습니다. 1920년대 로이 채프먼 앤드루스(Roy Chapman Andrews, 1884~1960)가 이끈 미국 자연사박물관 탐사대가 이곳에서 최초의 공룡알을 발견한 이래, 티라노사우루스의 친척 타르보사우루스(Tarbosaurus), 깃털 달린 벨로시랩터(Velociraptor), 프로토케라톱스(Protoceratops) 등의 화석이 잇달아 출토되어 세계 과학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그 덕분에 앤드루스가 영화 속 인물 ‘인디아나 존스’의 실제 모델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몽골 과학아카데미 연구진과 미국, 일본,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다국적 과학자들이 참여하고 내셔널지오그래픽협회가 지원한 탐사·연구팀의 초그트바타르 친조리그(Tsogtbaatar Chinzorig) 박사는 몽골 도르노고비(Dornogovi) 주 후렌 두크(Khuren Dukh)에서 두꺼운 돔 형태의 정수리뼈를 지닌 신종 공룡 자바케팔레 린포체(Zavacephale rinpoche) 화석을 발굴했습니다.
‘자바(Zava)’는 티베트어로 ‘기원’을, ‘케팔레(cephale)’는 라틴어로 ‘머리’를 뜻하며, ‘린포체(rinpoche)’는 티베트어로 ‘존귀한 존재’를 의미합니다. 연구자들은 절벽에 드러난 두개골이 너무도 귀하게 여겨져 이러한 이름을 붙였다고 설명했습니다. 한편 ‘파키케팔로사우루스(Pachycephalosaurus)’라는 이름은 그리스어로 ‘두꺼운 머리를 가진 도마뱀(thick-headed lizard)’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번에 발견된 화석은 지금까지 알려진 돔 형태의 정수리뼈 공룡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으며, 가장 온전한 골격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학문적 의의가 큽니다.
박치기하는 공룡, 파키케팔로사우루스
후기 백악기(약 1억 600만~6,600만 년 전)에 북미와 아시아에 살았던 파키케팔로사우루스류는 마치 투구처럼 두꺼운 정수리뼈와 머리에 난 기묘한 돌기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일부는 20cm가 넘는 두꺼운 정수리뼈를 지녔으며, ‘머리로 들이받는 공룡’이라는 이미지가 대중문화 속에 강하게 각인돼왔습니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이들이 정말 머리로 부딪치며 싸웠을까, 아니면 두꺼운 정수리뼈는 짝짓기 의사 표현이나 집단 내 위계 과시를 위한 장식물이었을까?”라는 물음이 이어졌습니다. 논쟁이 계속되는 것은 어느 쪽도 확실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확보된 화석 대부분이 후기 백악기의 두개골 파편에 불과해, 진화 초기 단계에서 이 돔 구조가 어떻게 발달했는지는 알 길이 없었습니다.
자바케팔레 린포체 화석의 지리적·지층적 위치와 화석을 기초로 구성한 자바케팔레 린포체 공룡의 그림. (이미지=네이처 논문/Linsay Zanno)
1억 800만년 전, 돔 같은 머리의 등장
이번에 새로운 공룡 화석이 발견된 후렌 두크 지층은 약 1억800만년 전 초기 백악기(Aptian~Albian기)에 형성된 것으로, 이번에 발견된 자바케팔레 린포체 화석은 기존 파키케팔로사우루스류 화석 기록보다 무려 1400만년이나 앞섭니다.
자바케팔레 린포체는 아직 완전히 성장하지 못한 ‘10대’ 개체였습니다. 다리뼈의 성장 고리를 분석한 결과 생후 2~3년 정도로 추정되었지만, 몸길이가 1m도 채 안 되는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이미 완전히 발달한 돔 형태의 정수리뼈를 갖고 있었습니다. 연구진은 이를 두고 “정수리뼈가 체구 성장보다 먼저 발달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해석하며, 이 구조가 생존보다는 사회적·성적 행동과 깊이 연관되었음을 시사한다고 밝혔습니다.
파키케팔로사우루스류를 두고 가장 뜨거운 논쟁은 ‘머리 박치기’ 가설입니다. 이 공룡들이 염소나 영양류처럼 두꺼운 머리를 서로 들이받아 힘을 겨루었다는 주장인데, 1997년에 개봉된 영화 <더 로스트 월드: 쥬라기 공원>에도 이런 모습으로 재현되었습니다. 그러나 돔 형태의 머리뼈 내부 구조를 보면 충격 흡수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반론도 꾸준히 제기되어 왔습니다.
자바케팔레 린포체의 발견은 이 논쟁에 새로운 단서를 제공합니다. 아직 어린 개체조차 두꺼운 머리뼈를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은, 이 구조가 단순히 성체 수컷의 전투 무기가 아니라 어린 시기부터 과시와 사회적·성적 신호(socio-sexual signaling)로 사용됐을 가능성을 뒷받침합니다. 이번 연구의 교신저자이자 노스캐롤라이나 자연과학박물관의 고생물학자 린지 재노(Lindsay Zanno)는 “돔 형태의 뼈는 포식자를 막거나 체온을 조절하는 데 쓸모가 없으며, 가장 가능성 높은 기능은 서로를 뽐내거나 짝짓기 경쟁에서 상대를 압도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뜻밖의 단서들: 손뼈와 위석(胃石)
이번 화석은 단순한 두개골만이 아니라 손뼈, 꼬리, 그리고 소화 보조를 위해 삼킨 위석(gastrolith)까지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파키케팔로사우루스류 화석에서 손뼈가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덕분에 이들의 앞다리 구조와 움직임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가능해졌습니다.
또한 위석의 발견은 식성 연구에도 중요한 단서를 제공합니다. 연구자들은 파키케팔로사우루스류가 주로 식물성 먹이를 섭취했으며, 단단한 줄기나 잎을 잘게 부수기 위해 돌을 삼켜 소화에 활용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이는 이들이 단순히 ‘머리에 장식만 달린 수수께끼의 공룡’이 아니라, 생활 방식 또한 정교하게 진화했음을 보여줍니다.
공룡 진화의 퍼즐 맞추기
이번 연구 결과는 학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지금까지 파키케팔로사우루스류는 후기 백악기 공룡으로만 알려져 있었지만, 자바케팔레 린포체는 그 연대를 훨씬 앞당기며 진화사의 공백을 메우는 결정적 단서가 되었습니다. 린지 재노 박사는 “이 화석은 돔 구조가 어떻게 진화했는지를 보여주는 최초의 명확한 증거”라며 “거시적 진화 경향(macro-evolutionary trends)을 이해하는 길을 열었다”고 강조했습니다.
공룡은 약 2억3000만년 전 트라이아스기 후기부터 백악기 말까지 약 1억6000만년 동안 지구 생태계에서 가장 번성했던 척추동물로 지구상에서 독특하고 압도적인 존재였습니다. 그리고 멸종된 후에도 공포심과 경이로움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며 인류의 상상력을 자극해왔습니다.
이번 발견은 단순한 ‘새로운 공룡의 흔적’을 넘어섭니다. 1억년 전 어린 공룡의 머리뼈 속에는 생존을 넘어선 사회적 행동과 진화 전략이 담겨 있습니다. 이는 동물의 생존 전략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단순한 크기나 힘이 아니라, 집단 내 소통과 사회적 유대일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논문링크: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86-025-09213-6
파키케팔로사우루스의 복원도. (이미지=Wikipedia)
서경주 객원기자 kjsuh57@naver.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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