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화된 공기업으로는 KT, 포스코, KT&G가 대표적이다. 이들 모두 다양한 문제점을 안고 있지만, 업종 진입 장벽이 높은 포스코나 KT&G는 그나마 현상 유지를 하고 있는 듯하다. 반면 KT는 정보통신이라는 경쟁이 가장 치열한 업종에서 출발했기 때문인지 2002년 완전 민영화 이후 지속적인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민영화 이후 주가 동향이나 혁신 기술 개발만 보더라도 KT는 단 한 번도 뚜렷한 성과를 보여주지 못한 점이 이를 방증한다.
특히 최근 KT를 비롯한 통신업계와 금융권의 보안 문제는 심각한 수준이다. KT의 경우, 불법 기지국과 복제폰을 활용한 해킹으로 일부 가입자 개인정보가 유출되었다. 이는 SKT의 대규모 유출 사태(2025년 상반기 약 2300만명 개인정보 유출, 1348억원 과징금 부과)와 롯데카드의 악성코드 공격(1.7GB 분량 개인정보 유출)과 맞물려 국가적 보안 위기를 상징한다.
이와 관련해 최근 이재명 대통령은 "보안 없이는 디지털 전환도, 인공지능(AI) 강국도 사실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해킹 피해 최소화를 위한 근본적인 종합 대책을 마련해달라"며 범정부 차원의 체계적 보안 대책을 주문했다.
이러한 사건들은 단순한 기업 실수로 치부할 수 없다. '기본적인 보안조차 못 지키는 3류 기업인가?'라는 의심이 들 만큼 통신·금융 인프라의 취약점이 노출된 셈이다. 이로 인한 사회적 파장은 국민 개인정보 유출과 시스템 신뢰 붕괴로 이어지며, 국가 경제 안보에도 직격탄이 되고 있다.
이렇게 된 원인을 곰곰이 따져보면 결국 '사람 문제'로 귀착된다. 완전 민영화 이후 거의 25년 동안 KT에는 쟁쟁한 인물들이 CEO로 왔다가 사라지는 일이 반복됐다. 정권 교체의 영향이 컸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오너가 없는 민영화된 공기업이기 때문에 정권 눈치를 보는 것은 KT만의 문제가 아니다. 수출 중심의 개방형 통상국가인 대한민국에서 기업이 정부와 상생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오히려 오너가 있는 기업일수록 권력과의 협력이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는 동서고금을 막론한 원리이며, 한국식 자본주의는 이미 '민간' 중심의 미국식 모델을 단순 이식할 단계를 넘어섰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최근 해킹 사태는 통신업계의 구조적 취약점을 드러내며, 국가 AI 정책에서도 보안 문제를 최우선으로 다뤄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새 정부의 AI 중심 경제성장 전략에서 초혁신 선도산업(정보통신, 미디어, 콘텐츠, 금융 등)이 강조되고 있고, 이들 분야는 KT의 40여개 계열사 사업과 직결된다. 따라서 키워드는 '초격차 기술, 글로벌, 퀀텀점프'로 정리해볼 수 있고 여기에 보안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차기 KT CEO의 미션은 명확하다. '처세'는 기본으로 하되, 정보통신 분야에서 '퀀텀점프 대전환'을 이끌 비전을 제시하고 실행할 인물을 영입해야 한다. 단순한 혁신이 아닌, K-정책금융연구소가 대선 때부터 주창한 '선순환 삼위일체' 전략을 적용하는 것이다. 즉, '기술 기반 벤처·스타트업 + 국민 성장 공공·민간 믹싱 펀드 + 기술 특례 IPO(기업공개)'를 통해 초격차 기술을 확보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 여기에 보안도 핵심 키워드로 추가해야 한다.
결국 기업의 성공은 최고경영자 '사람'에 달려 있다. KT의 역사성, 문화, 기술력, 자금력을 바탕으로 'KT 퀀텀점프, 제2 창업'의 구체적 청사진을 내놓을 리더가 절실하다. 국민적 여망을 주인으로 받들고 혁신을 동시에 추구한다면, KT는 쇠락의 늪에서 벗어나 국가 AI 정책의 핵심 파트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정재호 뉴스토마토 고문·K-정책금융연구소 소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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