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머리갈매기와 유조(위)가 영종도 염습지에서 먹이를 찾고 있다.
전 세계에 약 1만4000마리만 남은 국제적 멸종위기종 검은머리갈매기(Saunders’ Gull)의 고향은 한반도 경기만 일대의 서해 갯벌입니다.
검은머리갈매기는 주로 갯벌의 마른 염습지에서 번식하는데, 한국에서는 영종도와 송도, 시화호 매립지에 집중 분포하고 있으며, 일부는 중국 동북부 해안에서도 발견됩니다. 따라서 서해 갯벌은 검은머리갈매기에게 가장 중요한 터전이자 고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과 중국에서 검은머리갈매기의 서식지가 급속히 사라지면서, 이 종은 지구상에서 언제 자취를 감출지 모를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검은머리갈매기는 사방이 트이고 사면이 물로 둘러싸인 갯벌의 마른 염습지에서 무리를 지어 번식하는 특성이 있는데, 이러한 조건을 충족하는 장소는 많지 않습니다. 과거 영종도와 송도, 시화호 매립지는 이들의 이상적인 번식지로 수많은 개체가 터전을 잡았지만, 공항과 신도시 건설 등 토목공사가 진행되면서 대부분의 번식지가 사라졌습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아직 번식이 이어지고 있으나, 개체수는 예전보다 크게 줄어든 상황입니다.
검은머리갈매기는 몸길이 약 32cm, 날개 길이 85cm 정도의 작은 갈매기로, 검은색 부리와 붉은 다리를 지녔습니다. 암수의 겉모습은 비슷하지만 수컷이 조금 더 큽니다. 번식기에는 머리 전체가 검게 변해 이름 그대로 ‘검은머리갈매기’라 불리며, 눈 주위에는 하얀 테가 뚜렷합니다. 겨울철에는 머리색이 사라지고 눈 뒤에 작은 검은 반점만 남아 있습니다.
같은 크기의 붉은부리갈매기도 여름철에는 머리가 검어 두 종을 구분하기 어려운데, 붉은부리갈매기는 부리가 붉고, 검은머리갈매기는 사계절 내내 검은 부리를 지닌다는 점이 뚜렷한 차이입니다.
검은머리갈매기는 갯벌과 강 하구에서 수백 마리씩 무리를 지어 생활합니다. 하늘에서 급강하해 갯골의 작은 물고기와 새우를 낚거나, 갯벌 위를 걸으며 게와 갯지렁이를 잡아먹습니다. 번식지는 포식자의 접근을 막기 위해 물길로 둘러싸인 염습지를 선택합니다. 부화한 어린 새가 곧바로 물로 피신할 수 있고, 주변에서 새우나 치어 등의 먹이를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번식지에 침입자가 들어오면 집단적으로 대응합니다. 번식 장소 반경 1.5㎢ 내에 들어온 외부 침입자를 향해 무더기로 급강하하며 위협하고, 사람에게도 머리 위까지 몰려와 경고 비행을 합니다. 이런 습성 덕분에 번식기에는 하늘을 나는 개체 수만 세어도 대략적인 번식 규모를 추정할 수 있습니다.
마른 칠면초 위에 만든 둥지에는 검은 줄무늬의 알이 2~3개 있는데, 주변과 잘 섞여 있어 눈여겨보지 않으면 찾기 어렵습니다. 부화한 어린 새들은 둥지에 오래 머물지 않고 풀숲에 숨어 있다가 어미가 가져온 먹이를 먹습니다. 성장하면 어미는 어린 새들을 물가로 이끌어 사냥법과 비행을 익히게 하며, 한 달 정도 지나면 날 수 있고 두 달 후면 어미와 떨어져 독립 생활을 시작합니다.
검은머리갈매기 무리가 송도 매립지 습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어린 새들의 깃털은 흑갈색 얼룩무늬로 위장돼 포식자의 눈을 피할 수 있지만, 매나 새호리기 같은 시력이 좋은 맹금류에게는 종종 희생됩니다. 검은머리갈매기들이 집단으로 대응하더라도 날쌔고 민첩한 송골매의 공격은 특히 치명적입니다.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은 검은머리갈매기를 멸종위기 '취약종(Vulnerable)'으로 분류했습니다. 이에 따라 환경부 국립생태원, 인천시, EAAFP 등은 최근 보호 대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위성추적장치를 부착해 이동 경로와 서식지 활용을 연구하고, 인공 부화를 통해 개체수 회복도 시도하고 있습니다. 2019년에는 인천 송도에서 구조한 알 40개 가운데 31개가 부화에 성공했고, 그 중 15마리를 야생에 방사했습니다. 일부 개체에는 위성추적기를 부착해 생존율과 이동 패턴을 모니터링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초기 단계지만, 중요한 진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검은머리갈매기는 서식 조건이 적합하면 집단적으로 번성하지만, 환경이 불리하면 번식을 포기합니다. 최근 경기만 갯벌이 무분별하게 매립·개발되면서 개체수가 급격히 감소한 것은 이를 잘 보여줍니다. 산업화와 도시화의 필요성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의 대체 서식지를 확보하지 않는다면 이 종은 가까운 미래에 우리 곁에서 사라질 수 있습니다. 검은머리갈매기를 지켜내는 일은 곧 서해 갯벌의 생명력을 보존하는 일이며, 그 선택은 지금 우리의 몫입니다.
글·사진=김연수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겸임교수 wildik02@naver.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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