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카리스마 넘치는 '새로운미래당'의 젊은 당수
본명은 타나톤 쯩룽르앙낏. 별명은 엑이고, 한자명은 장해문(莊海文)이다. 태국 화인(華人)은 광동 차오저우 출신이 주류이고, 이들이 태국의 정통 하이쏘를 이룬다. 하이쏘(High Society)는 로우쏘(Low Society)와 대비되는 사회적 용어로, 쉽게 말해 '금수저'로 번역할 수 있다. 반대로 로우쏘는 '흙수저'를 뜻한다.
태국 중도좌파정당 초대 당수 타나톤 쯩룽르앙낏. (사진=타나톤 쯩룽르앙낏 페이스북)
2. 엑의 성장 배경
엑은 1978년 태어났다. 그의 선친은 타이써밋이라는 그룹의 재벌 회장이었다. 엑의 출신 배경은 금수저를 넘어 다이아몬드 수저였다. 엑은 명문고인 우돔쓱사를 졸업하고 타마쌋 대학에 입학했다. 우돔쓱싸는 태국 최고 명문인 쭐라롱꼰 대학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다니는데, 엑이 타마쌋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했다는 것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타마쌋 대학은 학생운동으로 유명한 저항의 상징이다. 엑이 창당한 당과 그 후신 정당들의 간부 중에 타마쌋 대학 출신이 많다. 현 인민당의 부대표를 맡고 있는 마이도 수학과 예술에서 전국 수석을 차지한 수재였는데 진학 지도를 담당한 교사가 성향을 보고 타마쌋을 추천했다. 엑은 졸업 후 영국 노팅엄대학에 유학해 공학 학사학위를 다시 취득했다. 그의 학업은 이어져서 쭐라롱꼰 대학에서 정치경제학, 스턴 비즈니스 스쿨·뉴욕대·홍콩 과기대의 조인트 프로그램에서 국제금융, 스위스 세인트갤런 대학(HSG)에서 국제상법 등 총 3개의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이것은 엑이 타고난 운이라 할 수 있다. 집안에 재력이 없었다면 다양한 학업 기회를 가질 수가 없었을 테니까.
3. 사회활동가 엑
엑은 타마쌋 대학을 다닐 때 학생운동에 참여해서 학생회장이 되었고, 연합조직의 사무부총장으로도 활동했다. 학생운동이 사회운동으로 전환되어 '인민의 친구들', '빈민을 위한 의회' 같은 사회개혁 활동에도 참여하고, 우본라차타니의 빡문댐 건설 과정에서 토지를 잃은 수몰민에게 보상을 요구하는 캠페인에도 참여했다. 이런 활동은 가정의 걱정거리를 넘어 불화가 불가피했다. 엑의 삼촌은 교통부장관을 두 번 지내고 당시 군부 정권하에서 산업부장관을 맡고 있었는데, 엑은 빡문댐 건설이 무책임할 뿐만 아니라 정권이 후원자들의 뒷배를 봐주는 정실자본주의라고 쏘아붙였다.
4. 기업가 엑
아버지가 타계를 하면서 엑은 가업을 승계하게 되었다. 엑은 2002년부터 2017년까지 타이써밋그룹의 부회장을 지냈다. 회장은 어머니. 엑은 기업가치가 7000억원도 되지 않던 회사를 3조원이 넘는 규모로 성장시켰고, 3000억원 남짓 매출로 75%의 이익을 달성하는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올렸다. 이는 테슬라에 완성차를 공급하는 계약으로 달성한 업적이었다.
5. 창당
엑은 그간 접어두었던 사회개혁의 꿈을 이루기 위해 기업을 나와 진보정당을 창당한다. 타이 문화에 '끽'이란 하위문화가 있다. 배우자나 애인 외에 따로 만나는 이성을 끽이라고 한다. 남성 끽이 나이 차이가 날 때 여성 쪽에서 상대방을 지칭하는 은어가 '대디', 노골적으로는 '슈가 대디'라 한다. 젊은 여성들은 엑을 '아빠'란 애칭으로 부른다. 엑이 창당 당시 당에 80억원이 넘는 자금을 빌려줬기 때문이다. 이것이 빌미가 되어 나중에 당이 해산되었다. 그 후신인 '먼걸음당', '인민당'은 여기에서 교훈을 찾고 누구에게도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해 모금으로만 운영한다. 인민당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모금액과 당원이 실시간으로 집계되고 있다.
올해 9월5일 기준 인민당 모금액은 4935만5881바트(약 212억원)이고, 당원 지원자는 11만7939명이며, 정식 당원은 10만5792명이다. 당원 대기자가 1만2147명인 상태. 창당 과정에서 엑이 당을 위한 슈가 대디였던 것은 분명하다. 태국 젊은 여성 지지자들이 엑을 '대디'라고 농담 삼아 불렀지만, 현실은 역전되어 이제는 그들이 '슈가 맘'이 되었다.
6. 카리스마와 당 활동가
태국 진보정당은 초대 당수 엑, 2대 당수 피타와 같은 지도자들의 카리스마에 의존하지만 경쟁 당들에 비하면 의원과 활동가의 독립성이 비할 바 없이 높다. 인민당 초대 당수 후보로도 거론됐던 마이는 내부 사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제가 엑이나 '같은 하늘 아래' 편집장이었던 이론가 '톰'과 토론한다고 가정해보세요. 그들은 극도로 이상주의적인 주제를 종종 토론하는데 '정신 차려! 이렇게는 안 돼!'라고 하는 것은 우리들입니다."
7. 2019년 총선거와 당 해산
진보운동재단의 대변인 초의 트레일 레이스 첫 도전. (사진=초 페이스북)
2018년에 창당해서 2019년 참가한 첫 총선에서 당은 17.63%의 지지율로 500석 중 80석을 차지했다. 당은 전 총리인 탁신계 '타이를 위한 당', 군부 쿠데타 세력으로 집권당인 '민족세력당'에 이어 3당이 되었고, 엑은 야당 연합의 수상 후보자가 되었다. 신생당으로서 엄청난 약진이었다. 여기에 놀란 지배 연합은 선거관리위원회와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당을 2020년에 해산시켰다. 엑이 당에 꿔준 돈을 기부로 보고 문제를 삼은 것이다. 엑을 포함한 당의 간부인 의원 11명이 의석을 잃고 10년간 정치활동이 금지되었다.
개별 의원에 대한 공격도 동반되었다. 당 대변인이었던 파니까, 별명 '초'는 학창 시절 친구와 함께 라마9세 국왕의 사진을 들고 있는 10년 전 사진에 "(자애로운 국왕 폐하와 같은) 캡션이 없어야 한다"는 설명을 달았다. 2023년 9월20일 대법원은 초가 페이스북에 게시한 메시지가 군주제를 존중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평생 공직을 맡을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녀는 쭐라롱꼰 대학을 최우등으로 졸업한 수재로 방송인이다.
헌법재판소는 선거관리위원회가 제소한 당의 군주제 전복 혐의에 대해서는 기각했다. 왕당파 지배 연합은 군주제 개혁과 군부의 정치 개입을 반대하는 선명한 대표 세력으로 당장은 중도 좌파당을 위치시킬 필요가 없었다.
당이 해산되자 의원 9명이 부리람주에 지역적 기반을 둔 '타이자부심당'으로, 1명은 왕당파인 '타이민족개발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4명은 당의 결정에 지속적인 반대표를 던져 제명되어 있었다.
엑은 남아 있는 55명의 의원이 몸담을 새로운 당을 찾아야 했다. 2014년에 창당된 ‘타이민족공동개발당’의 후신으로 의석이 없던 '위대한 벌(Royal Bee)'당에 입당한 후 재창당하는 방식을 택했다. 당명을 '먼걸음당'으로, 영문명을 'Move Forward Party'로 정했다. 한국에서는 이를 '전진당'이나 '행동전진당'으로 번역한다. 타이어로는 '까우 끌라이'나 '까우 까이'로 발음이 되는데 까우는 발걸음, 까이는 멀다는 뜻이다. 한자로 굳이 옮기자면 장정(長征)과 어감이 비슷하다. 엑은 미리 점찍어 둔 피타를 환생한 당의 지도자로 세웠다. 피타는 엑과 당원들의 바람처럼 스타 대중 정치인이 되어 다음 총선에서 당을 태국 제1당으로 이끌었다.
수상이 되지 못해 생긴 피타의 별명은 '거의 수상'으로 이는 그의 저서 제목이기도 하다. (사진=피타 페이스북)
8. 당 해산 이후의 활동
엑은 창당 동지인 타마쌋 대학 법학 부교수였던 '삐야붓'과 진보운동재단을 만들어 활동가로 되돌아갔다. 엑은 코로나19 당시 왕실 소유의 바이오사이언스그룹이 아스트로제네카 백신으로 폭리를 취했다는 폭로로 왕실을 궁지로 몰어넣었다. 엑은 사막 마라톤과 같은 익스트림 스포츠광이어서 정치 외적으로도 대중이 눈길을 거둘 수 없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