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3일 중국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열린 전승절 80주년 기념 대규모 열병식에 참석했다. (사진=연합뉴스)
그들은 막역했다. 짐작했던 것보다 더 막역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3일(현지시간) 베이징 톈안먼(천안문)에서 진행한 전승절 80주년 열병식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맨 마지막으로 맞이했다. 그 바로 앞 영접 대상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었다. 푸틴이 '의전 서열 1위'였고, 김정은이 2위였다. 러시아는 세계 2위 핵보유국이고 북한은 '사실상 핵보유국'이다. 두 나라 모두 미국에 맞서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 미국과 전략 경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의 확실한 동지들이라는 점에서, 중국은 이들을 화끈하게 예우했다.
공식 의전만 그런 게 아니었다. 26개국에서 온 외빈들과 기념 촬영을 하기 위해 걸어가면서 시진핑은 푸틴의 등에 손을 올려 친밀감을 표했다. 푸틴은 이미 지난달 31일 중국에 들어와 있었다. 이날 톈진에서 개막한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에서 시진핑을 만났고, 이어 2일 베이징으로 이동해 정상회담을 했다. 시진핑은 푸틴을 "라오펑유"(老朋友·오랜 친구)라고 부르며 "영원한 선린 우호"를 강조했고, 푸틴은 시진핑을 "친애하는 친구"라며 "우리의 밀접한 소통은 전례 없는 높은 수준인 러·중 관계의 전략적 본질을 반영한다"고 화답했다. 두 정상은 이날 회담장에 같은 차를 타고 이동했다.
등에 손 올리고…시진핑·푸틴·김정은 각별한 스킨십 과시
시진핑은 2019년 6월 평양 방문에 이어 6년 만에 베이징 톈안먼에서 재회한 김정은과도 각별했다. 톈안먼으로 입장하는 각국 정상들을 영접하면서 제자리에 서서 한 손으로 악수하던 시진핑은 김정은에게는 한발 다가서 두 손을 내밀면서 그의 팔을 두드렸다. 시진핑의 부인 펑리위안 여사는 한국어로 "반갑습니다"라고 직접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시진핑이 가운데 서고 양옆에 푸틴과 김정은이 함께 톈안먼 망루에 오르던 중 시진핑이 멈춰 서서 뭔가를 설명하자 김정은이 '짝다리'를 짚고 서서 담소를 나눴고, 망루에서 열병식을 참관하는 중에도 두 정상은 서로 몸을 숙여 머리를 모으고 단독 대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날 열병식에 이은 연회를 마친 뒤 정상회담을 한 푸틴과 김정은도 정상회담장에 푸틴의 차를 함께 타고 갔다. 서로 상석을 권하다 나이가 어린 김정은이 양보하고 반대편으로 걸어 돌아가 탑승했다. 푸틴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쿠르스크에서) 용감하게 싸워준 북한군을 절대 잊지 않을 것"이라고 했고, 김 위원장은 "북한이 러시아를 도울 수 있다면 반드시 도울 것이며, 러시아에 대한 지원은 형제의 의무"라고 했다. 가히 함께 총을 잡고 싸우고 있는 '혈맹'이었다. 이날 회담은 2019년 4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2023년 9월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 2024년 6월 평양에 이어 네 번째 정상회담이었다.
사문화됐다는 시각도 있지만 북한과 중국은 '유사시 자동 개입'이 살아 있는 동맹 관계이고, 북한과 러시아도 지난해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으로 '자동 개입'에 버금가는 동맹 관계다.
이런 세 나라가 1959년에 중국 인민공화국 창건 10주년 경축대회 이후 66년 만에 한자리에 모였고, 그것도 북한이 45년 만에 다자외교 현장에 등장한 마당이니 3국이 정상회담을 하고 공동합의문(성명)을 발표하느냐가 국제적 관심사였다. 당장 트럼프발 관세 전쟁이 한창이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도 진행 중이라는 점에서 3자 합의문이 나온다면 그 초점은 미국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북·중·러 세 정상은 각별한 스킨십을 과시하면서도, 3자 정상회담은 하지 않았다.
시진핑은 이날 열병식 연설에서 "역사는 인류의 운명이 서로 밀접하게 연결돼 있음을 경고한다"며 "인류는 다시 평화와 전쟁, 대화와 대결, 윈-윈 협력과 제로섬 게임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고 했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은 막을 수 없다"고도 했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걸고 일방 독주하고 있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겨냥한 고강도 비판이었다. 하지만 그는 '미국'이나 '트럼프'를 직접 거명하지 않으면서 '선을 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뉴시스)
초대형 연대 이벤트 하면서도 '제도화 선 긋기'
이날 3국은 미국에 맞서는 '초대형 연대 이벤트'를 만들면서도, 그 이벤트를 제도화하는 3자 정상회담까지는 가지 않았다. 이는 중국의 뜻이 분명하다. 미국과 전략 경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은 필요 이상으로 미국과 서방을 자극하는 '신냉전-진영화 구도'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다. 당장 시진핑은 트럼프와 관세 협상을 벌여야 하고, 국제적인 공급망 조정이라는 난제와도 맞서야 한다. 서방의 '디리스킹(derisking: 위험 분산)과 다각화(diversification)'는 분명 중국 경제 침체에 심각한 압박 요인이다.
각각 핵 개발과 전쟁으로 인한 고립과 경제난에서 벗어나려는 북한, 러시아와는 처지가 다르다. 김정은은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인 2021년부터 국제 정세를 '신냉전-다극화' 구도로 규정하고 적극 편승했고, 푸틴은 2022년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이를 현실화하는 데 앞장서온 데 비해 시진핑의 중국은 이같은 신냉전 구도 인식 자체를 거부해왔다. 북·중·러 톈안먼 회동을 앞두고 일부에서는 3국 정상회담을 거쳐 3국 합동 군사훈련까지 가는 게 아니냐는 전망도 나왔으나, 아직까지는 '가능성의 영역'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시진핑, 푸틴, 김정은과의 돈독한 개인적 친분을 통해 외교 성과를 낼 수 있다고 강조해온 트럼프로서는 구조적 도전에 맞닥뜨린 형국이다. 미국이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 축으로 공들여온 인도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베이징 열병식은 불참했지만, 직전 중국 톈진에서 시진핑 주도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에 참석해 시진핑, 푸틴과 포옹했다. '트럼프 광풍' 덕에 이들이 모였다는 비아냥이 나온다. 트럼프가 어떻게 대응할까? 방법이 마땅치 않다 시진핑은 희토류를 앞세워 전면 대응하고 있고, 김정은에게는 이미 더할 제재도 없다. 푸틴의 러시아는 관세와 경제 제재가 무기가 될 수 있으나 우크라전 휴전 협상은 이미 푸틴이 주도권을 잡았다.
황방열 통일외교 전문위원 bangyeoulhwa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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