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뉴스토마토 김하늬 통신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강경 외교가 오히려 비서방 국가들의 결속을 강화하는 '방아쇠'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중국·러시아·북한 정상은 베이징 전승절 열병식에서 처음으로 나란히 등장하며 반미 연대를 과시했습니다. 트럼프의 민족주의적 외교 기조, 다자주의 경시, 통상 전쟁 등 트럼프의 외교가 미국 중심의 전후 질서를 흔들고, 그 공백을 중국이 메우는 계기가 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역설적으로 트럼프의 정책이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돕는 결과를 낳은 겁니다.
트럼프는 또 평화 중재자를 자처하며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시도했지만 성과는 미미한 상황입니다.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통화 후 2주 안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양자 회담을 성사시키려 했으나 회담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 사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역에 대한 공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3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시진핑 주석이 열병식 때 한 연설에서 미국을 언급하지 않아 매우 놀랐다고 밝혔다. (사진=EPA 연합뉴스)
반서방 연대에…트럼프, '불편한 심기'
트럼프 대통령은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습니다. 3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그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전승절 열병식 연설에서 미국을 언급하지 않은 사실에 대해 "매우 놀랐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시 주석은 내 친구다. 하지만 연설에서 반드시 미국이 언급됐어야 했다. 우리가 중국을 매우 많이 도왔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의 지원으로 일본 패망이 앞당겨졌고, 그로 인해 전쟁 중인 중국에 큰 도움이 됐다는 의미로 풀이됩니다.
앞서 전승절 행사가 시작될 때는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당신들이 미국을 상대로 음모를 꾸미는 동안, 블라디미르 푸틴과 김정은에게 나의 따뜻한 인사를 전한다"고 썼습니다. 겉으로는 인사였지만, 실상은 북·중·러 3국의 반미 연대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역설적으로 표현한 겁니다.
소규모 보복도 뒤따랐습니다. 전승절 다음 날 미국 정부는 중국 화학업체에 대한 제재를 발표했습니다. 타미 피곳 미 국무부 수석 부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재무부의 조치는 합성 마약이라는 치명적 재앙을 끝내고 광저우 텅웨 같은 기업과 그 대표들이 책임을 지도록 하기 위한 법 집행과 외교적 수단의 일환"이라며 "미국을 다시 안전하게 만들겠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의지를 반영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3일(현지시간) 중국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열린 전승절 80주년 기념 대규모 열병식에 참석했다. (사진=연합뉴스)
강경 외교가 오히려 전략적 연대 강화 촉발
국제 전문가들과 외신들은 트럼프의 외교 스타일이 '반미 축' 결속의 촉매제로 작용했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시 주석이 푸틴·김정은을 초청해 첫 공동 등장을 성사시킨 것은 미국 중심 국제질서에 대한 도전이자 비서방 국가들의 전략적 대응 체제가 본격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겁니다.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의 정책이 전후 미국 중심 질서를 흔들었고, 그 공백을 중국이 글로벌 리더 역할로 채우게 됐다"고 평가했습니다. 트럼프의 강경 노선이 중국의 리더십 부상을 촉발하며 반미 축 내 권력 중심의 이동을 가속했다는 의미입니다.
<AP통신> 역시 "베이징 퍼레이드와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는 중국·러시아·북한의 결속이 미국 압박 속에서 강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정학적 전환의 신호"라고 분석했습니다. 이어 "트럼프 행정부 하반기 외교 방향이 반서방 국가 협력 강화라는 구조적 변화를 드러내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존 볼턴 전 미국 국가안보보좌관도 "중국·러시아·북한·이란을 포함한 권위주의 연대가 이제 미국의 주요 외교적 위협으로 부상했다"며 "트럼프의 강경 외교, 특히 고립주의적 행보가 이 연대를 가속화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쟁 중재 의지도 굽히지 않고 있습니다. 그는 푸틴 대통령과의 알래스카 회담 이후에도 며칠 안에 전쟁 관련 협의를 이어가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러시아가 열병식에서 '반서방 전선'을 과시한 직후 우크라이나 전역을 대대적으로 공습하면서 돌파구 마련은 요원한 상황입니다. 이날 트럼프는 "푸틴에게 전할 메시지는 없다. 그는 내 입장을 알고 있다"며 "그가 어떤 결정을 하든, 우리는 행복할 수도, 불행할 수도 있다. 만약 불행하다면 여러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뉴욕=김하늬 통신원 hani4879@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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