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 사면 정례화 수순…2금융권 건전성 '경고등'
2025-08-28 15:20:51 2025-08-28 17:51:27
 
[뉴스토마토 유영진 기자] 연체 기록을 지우는 '신용 사면' 제도가 사실상 정례화하는 양상입니다. 박근혜정부 이후 벌써 네 차례나 이뤄졌지만 부작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특히 중·저신용자 비중이 큰 보험사·카드사·저축은행 등 2금융권에는 건전성 관리에 경고등이 켜졌습니다. 
 
연체율 오르는데 신용 사면까지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내달 30일부터 성실 상환 연체 채무자의 연체 이력 공유와 활용을 제한하는 신용 사면을 시행할 계획입니다. 대상은 2020년1월부터 이달까지 5000만원 이하 연체가 발생한 개인과 개인사업자 약 324만명입니다. 이 중 272만명은 이미 전액 상환을 마쳐 곧바로 신용 회복 대상에 해당하며, 나머지 52만명도 연말까지 채무를 모두 갚으면 연체 기록이 삭제될 예정입니다. 
 
이번 신용 사면은 외환위기 이후 역대 최대 규모입니다. 금융권에서는 신용 사면을 마냥 반기지만은 않고 있습니다. 연체 기록 삭제로 신용불량자가 신규 고객으로 유입돼 단기적으로는 영업 활성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경기 악화에 건전성 관리가 중요한 시기에는 오히려 부담으로 작용합니다. 
 
2금융권 한 관계자는 "신용 사면 취지에 공감하고 신규 영업도 늘 수 있어 좋지만, 최근 금융사 건전성 상태가 좋지 않아 달갑지만은 않다"며 "특히 2금융권으로 유입되는 소비자는 중·저신용자기 때문에 다시 연체할 확률이 높다"고 전했습니다. 이어 "잦은 신용 사면으로 금융사들이 리스크를 짊어지고 있다"고 부연했습니다. 
 
금융권이 연체 기록을 공유하는 이유는 연체 경험이 있는 차주의 재연체 위험이 높기 때문인데 신용 사면이 시행되면 위험을 식별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2금융권은 저신용자가 신규로 유입될 경우 연체율 상승이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큽니다. 최근 2금융권 연체율이 10년 만에 최고 수준을 보이는데 신용 사면까지 시행되면서 연체율 관리가 난항을 겪을 전망입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보험사 부실채권비율은 지난 6월 말 기준 1%로 전분기 말 대비 0.07%p 상승했습니다. 부실채권비율은 전체 대출채권 가운데 3개월 이상 연체 대출이 차지하는 비율로, 2012년6월 이후 최고치입니다. 같은 기간 대출채권 연체율은 0.66%에서 0.83%로 0.17%p 급증했습니다. 
 
전국 79개 저축은행의 연체율은 지난 1분기 말 기준 평균 9%로 나타났고, 전업 카드사 8곳(신한·삼성·KB국민·현대·롯데·우리·하나·비씨카드) 연체율은 평균 1.93%로, 두 업계 모두 1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코로나19 이후 경기 침체가 이어지면서 취약 차주가 늘어나 연체율이 크게 늘었습니다. 
 
2금융권 다른 관계자는 "연체 기록을 공유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데 기간을 짧게 하는 것도 아니고, 이를 아예 없애버리는 건 금융사에게 부담"이라며 "신용점수가 대대적으로 높아지면 그만큼 성실 상환자와의 형평성 문제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2금융권에서는 연체됐던 차주가 재진입하면 연체율이 상승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사진은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에 '임대 문의' 안내문이 붙어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네 정부 연속 신용 사면
 
이재명정부가 이번 신용 사면을 시행하면 역대 다섯 번째 신용 사면입니다. 2000년 김대중정부 당시 한 차례를 제외하면 박근혜정부부터 네 번 연속으로 신용 사면이 이어지는 셈입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신용 사면이 반복되다 보니 금융사에서는 볼멘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김대중정부는 2000년 IMF 외환위기 여파로 신용불량자가 된 이들을 대상으로 신용 사면을 최초 시행했습니다. 대상은 1000만원 이하 대출이나 100만원 이하 카드 대금을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됐다가 전액 상환한 차주 106만명이었습니다. 이어 박근혜정부에서도 외환위기 후유증으로 어려움을 겪는 신용불량자 11만명을 대상으로 신용 사면을 단행했습니다. 
 
코로나 이후에는 문재인정부가 2021년 250만명, 윤석열정부가 2024년 290만명을 대상으로 대규모 신용 사면을 실시했습니다. 당시에는 코로나 기간 중 2000만원 이하 연체가 발생했다가 전액 상환한 차주가 대상이었습니다. 이번 이재명정부는 연체 금액 기준을 2000만원에서 5000만원으로 확대하면서 대상자가 324만명으로 늘어났습니다. 
 
문제는 신용 사면이 결국 땜질식 처방에 그친다는 점입니다. 신용 사면이 취약 차주에게 금융권 재진입의 기회를 열어주지만 경기 침체기에는 차주들이 다시 연체에 빠질 가능성이 큽니다. 실제로 신용 사면이 시행됐던 2021년과 2024년 직후 금융권 연체율이 상승세를 보였습니다. 
 
잦은 신용 사면은 상환을 늦춰도 된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도덕적 해이 우려와 함께 성실 상환자와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됩니다. 연체 차주가 금융권으로 재진입한 뒤 다시 연체가 발생하면 성실 상환자에게 가산금리가 부과되는 등 비용이 전가될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신용 사면이 자칫 신용정보 제도 도입의 본래 취지를 훼손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김상봉 한성대 경영학과 교수는 "잦은 신용 사면은 시장 원리에 맞지 않고 신용평가 체계를 흔들 수 있다"면서 "금융권은 신용 기록이 사라지면 담보 중심으로 대출을 내줄 가능성이 높아 오히려 재진입이 어려울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김 교수는 "신용점수가 다같이 높아지면서 새로 진입하는 사회 초년생에겐 오히려 진입 장벽을 높이는 꼴"이라며 "과거에도 시행할 때 큰 효과가 없었는데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유영진 기자 ryuyoungjin1532@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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