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이 문명과 라오인 이야기)(20)라오스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
여행자 일상 위협하는 라오스의 개 문화
자전거와 개 떼의 추격전, 도시 생활 속 의외의 위험
집과 마을을 지키는 충직한 동반자
2025-08-25 06:00:00 2025-08-25 06:00:00
동남아시아, 인도차이나반도. 일반적으로 태국과 베트남을 떠올리게 합니다. 온화한 기후 탓에 전 세계 최고의 휴양 국가이자 관광 국가로 알려진 곳입니다. 하지만 이들과 맞닿아 있는 인도차이나반도 유일의 내륙 국가 '라오스'. 낯선 만큼 모든 것이 어색하지만 그 속살을 살펴보면 의외로 우리와 많은 부분이 통할 수 있을 것 같은 친숙한 곳이기도 합니다. 뉴스토마토 K-정책금융연구소의 글로벌 프로젝트 '은사마'가 주목하는 해외 거점 국가 라오스의 모든 것을 소개합니다. (편집자주)
 
1. 뚜벅이 
 
14년 전 아직 장기 여행자 신분이었을 때, 나는 라오스 수도 위양짠 메콩강변 게스트하우스에서 몇 개월을 났다. 여행자라고 했지만 거동이라곤 새벽에 강가로 산책을 나가는 것이 다였다. 나를 깨우는 것은 쿤따라는 절에서 울리는 북소리와 닭 울음소리였다. 라오스로 들어와서 처음 버린 것은 휴대전화 알람 소리였다. 수도라지만 닭을 치는 집이 많았고, 성질 고약한 닭은 목이 쉴 때까지 소리를 뽑아 올렸다. 닭 울음에 쫓길 필요는 없다. 
 
켐콩. 메콩강변이란 라오어. 밤에 켐콩은 야시장이 서는 제법 흥성거리는 곳이지만, 새벽은 고요하다. 켐콩에서 새벽에 유일하게 활기를 불어넣는 사람이 있었다. 서양 중년 여성으로 6시가 되면 켐콩에서 요가를 시작했다. 현지인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서서 그녀와 마주하고 동작을 따라 했다. 해질녘에는 에어로빅 패들이 둘로 갈려 율동을 했다. 한 패는 중년 여성들로 요일마다 다른 색깔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율동을 한다. 라오인에겐 요일마다 정해진 색깔이 있고, 요일에 따른 불상이 따로 있었다. 매일 다른 체육복은 은근한 부의 상징이었다. 젊은 축은 자유로운 복장으로 몸을 흔들었다. 아침 요가는 무료, 저녁 에어로빅은 유료인데 강제성은 없고, 단 위에서 수고하는 리더들을 위해 푼돈을 바구니에 넣는 정도였다. 
 
석양 무렵 위양짠 메콩강변에서 에어로빅을 하는 주민들. (사진=우희철 작가)
 
나는 뚜벅이였고, 오로지 구경이 낙인 시절이었다. 할 일이 없고 갈 곳이 없으니 사람이 보이고, 식물이 보이고, 하늘이 보였다. 심심함이 관찰을 낳았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게스트하우스를 나와 골목길을 걸어서 강변으로 향하던 중 종아리 쪽에 강습을 받았다. 돌아보니 공격을 마친 개가 대문 안으로 사라졌다. 바지를 걷어보니 피와 함께 심하게 물린 자국이 나 있고, 통증이 점점 심해졌다. 놀라움이 더 컸다. 공수병에 걸릴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몰려왔다. 라오스 개들은 예방접종이 되어 있지 않아 개에게 물렸을 때 먼저 개를 잡아 함께 병원에 가야 한다는 말을 들었던 터라 황망하기 이를 데 없었다. 개가 사라진 집을 보니 번듯한 빌라였다. 이 동네는 인민혁명당 정부에서 퇴역한 장성이나 퇴임하는 고급 관리들에게 택지를 나눠 줘서 형성된 마을이었다. 주인을 몇 번 불렀으나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강제로 깨울 수도 없는 노릇이라 불안을 재우지 못하고 귀가했다. 
 
같이 묵고 있던 분이 동네 성격으로 보아 예방접종을 했을 가능성이 높고, 미친 개는 아닐 거라고 안심시키면서 응급처치를 해주었다. 마음이 진정되고 난 뒤에는, 산책로 하나를 잃었다는 상황에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살점이 붙은 뼈다귀를 한 대접 얻어 당일 오후에 그 집을 방문했다. 주인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으나 사과할 기색이 전혀 없었다. 개와의 화평을 위해 뼈다귀를 주는 것도 단호하게 거절했다. 주인 말이 가관이었다. 자기 집 앞으로 다니지 말고 다른 길로 다니면 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부아가 치밀었지만 외국인이 어쩌겠는가? 또 한번은 길을 가다 덤비는 개가 있어 주인에게 주의를 주었는데 이번에도 같은 반응이었다. 나는 개 주인에게 이 길로 산책을 나올 수밖에 없고, 개가 덤비면 내가 방어할 수밖에 없으니 어떻게 되더라도 당신 책임이라고 쏘아붙이고 물러났다. 다음 날부터 골프채를 한 자루 지팡이 삼아 산책을 나갔다. 벼르고 있다는 것을 아는지 그 개는 잠자코 통행을 눈감아 주었다. 
 
2. 자전거 
 
주인과 함께 공양에 참례한 라오스 개. (사진=우희철 작가)
 
나는 개가 무섭다. 가장 무서운 존재가 개 떼. 위양짠은 자전거로 생활이 가능한 도시다. 행정구역상 서울보다 여섯 배 이상 넓지만 도시 구역은 두 개 구 정도의 넓이에 인구가 집중되어 있다. 자전거로 한 시간 정도면 어디나 닿을 수 있다. 수도에 들어온 이태 동안 이동은 자전거로 해결했다. 
 
밤에 자전거를 타는 것은 치명적이다. 밤길에 자전거를 타다가 한번은 제대로 개에게 물리고야 말았다. 이전에도 개 떼에게 쫓긴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친구가 나를 방문하러 왔다가 개 떼에게 쫓겨 넘어지기도 했다. 자전거 위에 있는데 개 떼가 달려들면 대책이 없고, 피하다가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다. 자전거로 생활하는 교민은 개에게 물린 경험을 공유하고 있었다. 정신없이 페달을 밟아 개들의 영토를 벗어나려면 진땀을 흘려야 했다. 자전거에서 내려 침착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하는데, 당해보면 그럴 엄두가 나지 않는다. 한두 마리도 아니고 떼를 지어 달려들면 얘기가 달라진다.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 개들에게 걸어서 접근하면 자신의 구역이라는 것을 확인시키고자 으르릉거릴 뿐 물지는 않는다. 적당한 속도로 무단 통과를 하고자 하는 자전거에 대해선 무자비하게 보복한다. 모터바이크를 쫓는 개도 있지만 속도에 져서 영역을 벗어나면 이내 돌아간다. 
 
3. 변두리의 개 떼 
 
내가 홈스테이를 치던 황금언덕이란 동네는 밤이 되면 개 떼가 지배했다. 어두워지면 한 마리씩 모여들어 마을을 지키는 든든한 군단을 형성했다. 지난 아픔을 교훈 삼아 나는 이사를 하자마자 같은 골목에 사는 개들과 안면을 텄다. 부잣집 동네와 달리 마을 사람들은 개에게 '독점적 충성'을 요구하지 않았다. 이웃인 내가 개들에게 특식을 대접할 수 있는 이유였다. 내 체취도 그들에게 미리 확인시켜 두었다. 승합차로 일을 하던 시절이라 개가 달려들 여지도 적었지만, 걸어서 나들이를 할 때면 수인사를 튼 개들은 자기 영역 사람으로 나를 대해주었다. 
 
밤에 이방인이 마을에 들어오면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온 동네 사람들이 깰 정도로 개 짖는 소리가 요란해졌다. 마을을 지키는 개 떼 덕분에 마당 앞에 있는 대문은 밤이고, 낮이고 문단속을 신경 쓰지 않고 지냈다. 도심에선 몇 번 도둑을 맞았지만, 개 떼들이 우군이 된 외곽에선 오히려 한 번도 도둑을 맞아보지 않았다. 
 
4. 라오스에선 '절집 개로 태어나라'
 
국립공원 푸카오쿠와이에 풀려 있는 물소. (사진=김재용 작가)
 
라오인은 개를 많이 기른다. 프랑스 식민주의자들이 보급한 플랫하우스라는 도시형 주거 형태나 셋방살이가 아니라면 집주인들은 거의 개를 기른다. 개는 밥을 주는 주인에게 집을 지키는 것으로 보답한다. 
 
라오인들은 개를 묶지 않는다. 입마개를 한 개는 정말 보기 드물다. 개만 묶지 않는 것이 아니고 모든 동물이 해방되어 있다. 고양이, 소, 물소, 돼지, 염소, 닭…. 
 
소는 묶지 않고 오히려 논밭을 목책, 죽책, 망으로 가둔다. 우두머리에 대한 충성심이 높은 소의 습성을 이용해서 목동은 한 마리에게만 워낭을 메게 한다. 대장 소를 길들이면 알아서 무리를 몰고 나가 풀을 뜯기고 때가 되면 종대를 이루어 집으로 돌아온다. 라오스를 방문한 여행자들에게 라오스 여행에서 받은 첫 번째 인상을 말해보라고 하면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소! 
 
개들은 낮에는 대체로 천사들이다. 주로 잠을 자기 때문이다. 대로 가운데 드러누워 잠을 자는 개도 쉽게 볼 수 있다. 이쪽으로도 저쪽으로도 피할 필요가 없으니까. 개 중에 상팔자는 절에 사는 개다. 스님이 앉는 자리는 신도들이 감히 올라가지 못하지만, 개는 그곳에서 잠을 청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리고 있다. 
 
라오스=프리랜서 작가 '제국몽'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
0/300

뉴스리듬

    이 시간 주요 뉴스

      함께 볼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