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권이 바뀔 때마다 어김없이 반복되는 풍경이 있다. 바로 주요 공공기관 수장 자리를 둘러싼 혼선이다. 정책금융기관의 수장은 공석으로 남거나, 임기를 연장한 채 자리를 지키거나, 아니면 교체 압박에 시달리는 상황이 되풀이된다.
실제로 한국산업은행은 지난 6월부터, 한국수출입은행은 7월부터 수장이 없는 상태다. 기술보증기금은 지난해 11월부터 연임으로 임기를 이어가고 있으며, 신용보증기금은 8월, 중소기업은행은 내년 1월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다. 국가 경제의 중추를 담당하는 정책금융기관들이 리더십 공백 속에서 표류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혼란의 근본 원인은 제도적 모순에 있다. 현행 공공기관 운영법은 기관장 임기를 3년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대통령 임기는 5년이다. 이 어긋난 시간차가 매번 정권 교체기에 충돌을 야기한다. 전임 인사가 자리를 지키면 '알박기'라는 비판이 나오고, 새 정부가 교체를 서두르면 '찍어내기' 논란이 터진다. 결과는 늘 같다. 어느 쪽이든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같은 갈등이 되풀이된다.
문제는 단순한 인사 공백이 아니다. 정치적 갈등이 본질을 가리는 동안 현장은 피해를 본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이 간절히 기다리는 정책 자금 집행은 늦어질 수 있다. 민생과 직결된 분야에서 사업 집행이 지연되면 국민 삶의 질은 그만큼 저하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건 이런 상황이 정권을 막론하고 반복된다는 점이다. 여당이 되면 기관장 교체를 주장하고, 야당이 되면 임기 보장을 외친다. 보수든 진보든 마찬가지다. 정권 유불리에 따라 입장을 바꾸는 정치권의 이중적 태도가 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이 악순환을 끊기 위한 가장 현실적인 해법은 대통령 임기와 공공기관장 임기를 일치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한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21대와 22대 국회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여러 차례 발의됐지만 번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법안의 취지는 분명하다. 정부와 공공기관이 정치적 책임을 공유하고 정책 집행의 효율성을 높이자는 것이다. 하지만 정치권의 이중적 태도와 이해득실 앞에서 합의는 지금껏 밀려났다.
정책금융기관을 비롯한 공공기관의 역할은 정부와 발맞춰 국정 목표를 수행하는 것이다. 이전 정부에서 임명된 인사가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 크고 작은 잡음과 갈등이 불가피하고, 새 정부의 정책 추진에도 제동이 걸릴 수 있다.
다행히 이재명 대통령도 대선 과정에서 이 같은 문제를 인식하고 임기 일치제를 공약으로 제시한 바 있다. 공약 이행 여부는 지켜봐야겠지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되는 리더십 공백과 갈등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라도 제도적 정비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혼선의 악순환은 이제 멈춰야 할 때다.
오승주 정책금융팀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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