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오승주·김지평 기자]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글로벌 경제 질서의 핵심 원칙으로 자리 잡으면서 국내 정책금융기관들도 환경(E) 부문 강화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탄소중립과 RE100 등 국제적 흐름이 확산함에 따라 공적 임무를 수행하는 정책금융기관에 ESG 경영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습니다.
새 정부 역시 ESG 정책 강화 기조를 분명히 하고 있는데요. 최근 국정기획위원회가 발표한 국정 과제에는 '기후위기 대응과 지속가능한 에너지 전환' 전략 등 탄소중립 추진 내용이 포함됐습니다. 공시 인프라 강화, 공공기관 책임성 강화 등을 통해 ESG가 의무로 작동하는 환경이 가속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20일 뉴스토마토 K-정책금융연구소가 국내 13개 정책금융기관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발간 현황과 환경 부문 성과를 분석한 결과, 2024년(1~12월) 기준 최신 보고서를 발간한 곳은 기업은행, 기술보증기금, 한국주택금융공사,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등 4곳에 그쳤습니다.
한국산업은행, 한국수출입은행, 신용보증기금,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주택도시보증공사(HUG), 한국해양진흥공사 등 6곳은 2023년 보고서를 발간했으며, 한국무역보험공사는 2021년 이후 보고서 발간을 중단한 상태입니다. 무보 측은 "비용적인 측면을 고려해 공시 의무화 전까지 발간을 보류하고 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한국벤처투자와 한국해외인프라도시개발지원공사(KIND)는 보고서를 발간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ESG 활동 성과가 담긴 한국주택금융공사 2025 통합보고서 중 일부. (이미지=주금공)
녹색금융·친환경 채권 발행 확대
2024년 보고서를 낸 기관들은 친환경 채권 발행, 녹색금융 확대, 재생에너지 전환 지원 등에서 성과를 보였습니다. 특히 정책금융기관이라는 특성에 맞게 친환경 관련한 채권 등을 발행하며 중소·중견기업이 친환경 경영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기업은행은 8조6200억원 규모의 ESG 채권을 발행해 국내 은행권 발행액의 69.7%를 차지했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RE100 참여 기업을 위한 8020억원 규모의 전용 펀드를 조성해 재생에너지 투자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기술보증기금은 5조4000억원의 녹색금융을 공급하고 713억원 규모의 녹색자산유동화증권을 발행했습니다. 주택금융공사는 그린보금자리론을 기반으로 2324억원의 지속가능채권을 발행해 친환경 주택금융을 확대했습니다.
2023년 보고서를 낸 기관 중 산업은행은 녹색금융 공급액을 19조6000억원으로 늘려 전년 대비 20% 증가를 기록했고, 3000억원 규모의 한국형 녹색채권을 발행했습니다. 수출입은행은 친환경 선박, 태양광, 이차전지 분야 등에 19조9000억원의 친환경 여신을 공급하고 17억6000만달러 규모의 ESG 채권을 발행했습니다.
신용보증기금은 녹색금융 보증 10조952억원을 공급해 전년 대비 공급 규모를 13.4% 확대했습니다. 해양진흥공사 역시 친환경 선박 신조 사업에 6312억원, 친환경 선박 전환 보조금 지원사업에 130억원을 집행했습니다.
온실가스 감축 성과 기관별 편차 커
정책금융기관은 온실가스 감축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온실가스 감축 실적은 환경 부문의 핵심 지표로, 정부의 탄소중립 정책과 직결될 뿐만 아니라 국제 ESG 공시기준에서도 Scope 1·2(직접·간접 배출량) 감축 여부가 핵심 평가 요소로 작용합니다. 정부는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을 40% 줄이고, 2050년에는 탄소중립을 달성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습니다.
온실가스 감축률은 각 기관의 기준 배출량 대비 실제 배출량이 얼마나 줄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인데요.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알리오)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감축률은 KIND가 95.65%로 가장 높았고, HUG(94.66%), 해양진흥공사(87.21%)가 그 뒤를 이었습니다.
신보(47.64%), 무보(43.17%), 주금공(43.09%), 캠코(40.51%), 중진공(39.5%), 기보(39.41%)도 40% 안팎의 성과를 냈습니다. 반면 수은(24.96%)과 산은(8.78%)은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에 머물렀으며, 특히 한벤투는 -22.05%로 기준 배출량보다 실제 배출량이 오히려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지난 2월 서울 여의도 한국해외인프라도시개발지원공사(KIND)에서 김복환 KIND 사장(왼쪽)과 윤희성 전 수출입은행장이 '해외투자개발사업 활성화 및 탄소중립 전환 지원을 위한 업무협약서'를 체결했다. (사진=수은)
의무공시 앞두고 장기 전략 필요
현재는 자율 공시 체계로 인해 보고서 발간 여부와 수준이 기관마다 제각각이지만, 정부는 올해부터 ESG 공시 의무화를 단계적으로 추진할 계획입니다. ESG 정보와 기후 공시를 강화하고 공공기관 평가에도 ESG 요소를 보다 엄격히 반영하겠다는 방침입니다.
전문가들은 ESG 공시 의무화가 다가오는 만큼 정책금융기관이 형식적인 참여를 넘어 장기 전략과 구체적 이행계획을 마련해야 하며, 정부 역시 명확한 정책적 관점과 방향 제시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이인형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탄소중립 실현 등 ESG 경영 성과에 대한 공시 의무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면서 "ESG 공시는 글로벌 공조가 이뤄져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아직 관망하는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유럽이나 중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정책적 관점이 아직 부족하다"면서 "정부가 산업구조 전환과 미래 성장 동력이라는 명확한 인식을 바탕으로 일관성 있는 장기 정책을 제시하고 시장과 적극적으로 소통해야 한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정재호 뉴스토마토 K-정책금융연구소장은 "한마디로 이산화탄소(CO2) 배출은 곧 비용이 되는 것이 기후산업인데 피하거나 돌아갈 수 없는 전 세계적 산업 테마의 대세라고 진단한다. 기후변화에 민감한 유럽 노선에 반대하는 미국 노선도 있지만 일시적이라고 본다"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지정학적으로 해양과 대륙을 누비면서 개방형 통상국가로서의 지위를 굳건하게 다져온 대한민국은 RE100, CF100 기후산업 전략을 선도적으로 갖추는 것이 마땅하다. 뿐만 아니라 지금은 유럽발 탄소세, 미국발 관세, 국내발 전기세라는 삼재(三災)를 동시에 해결하는 속도전이 필요한 때이다. 그러하니 정책금융기관들은 자기 기관만 평가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금융 공급 정책의 주요한 축이 되어야 하고 실천적으로 기술 기반 중·벤·스를 찾아서 밀어주는 일을 특화된 팀을 만들어 재빠르게 대응해야 한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지난 3월 경기 파주시에서 열린 '2025년 제1차 ESG경영위원회'에서 강석진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이사장(왼쪽 네번째)이 관계자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중진공)
오승주·김지평 기자 sj.oh@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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