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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8월 21일 16:37 IB토마토 유료 페이지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업력이 상당하고 비교적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갖춘 중견 제약사들이 잇따라 기업공개(IPO) 문을 두드리고 있어 관심이 쏠린다. 업계에서는 이들이 산업 고도화 흐름 속 경영 전략의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는 평가부터 승계 부담을 줄이려는 의도일 거라는 예측까지 다양한 반응들을 내놓고 있다. 이에 <IB토마토>는 이들이 IPO 출사표를 던지게 된 배경과 함께 표면적인 명분부터 그 이면에 숨겨진 이유까지 심층적으로 들여다보고자 한다.(편집자주)
[IB토마토 이재혁 기자] 40년간 비상장을 유지해온 명인제약의 기업공개(IPO) 추진 행보를 둘러싸고 오너 일가의 증여세 절감 목적이라는 해석과 글로벌 제약사로 도약을 위한 승부수라는 평가가 공존하고 있다. 다만 사측은 이번 상장 추진이 승계와는 무관하다는 입장을 확고히 표명하고 있으며, 업계에서 예상한 기업가치를 상회하는 희망공모가액을 제시해 이에 대한 근거를 마련했다. 향후 기업가치가 높게 책정될수록 승계 의혹에서 더욱 멀어지게 되는 만큼 내달 실시될 수요예측 결과에 관심이 쏠린다.
(사진=명인제약)
견조한 실적과 탄탄한 재무구조에서부터 시작하는 의문
2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명인제약은 지난달월 코스피 상장을 위한 예비심사 승인을 받고 이날 증권신고서 제출까지 완료했다. 명인제약은 지난 1988년 설립돼 국민 잇몸약 '이가탄'과 변비약 '메이킨' 등으로 입지를 다져온 중견 제약사로 치매 등 중추신경계(CNS) 질환 치료제가 주력이다.
지난해 회사의 전체 매출액은 2694억원, 영업이익은 927억원으로 집계되며, 업계 최고 수준인 34%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했다. 지난해 말 기준 유동비율은 865%에 달하고, 부채비율은 9.38%에 불과한 상태다.
예심 청구일 기준 최대주주인 이행명 회장의 명인제약 지분율은 66%이며, 지난해 말 기준 이 회장을 비롯한 특수관계인 보유 지분율은 95.3%에 달한다.
이에 업계에서는 업력이 40년 된 명인제약의 뒤늦은 상장 추진을 둘러싼 갑론을박이 오가고 있다. 통상 IPO를 추진하는 이유로 자금조달 및 재무적 투자자들의 엑시트 창구 역할이 꼽히는데, 명인제약의 견조한 실적, 안정적인 재무구조, 높은 최대주주 지분율을 감안하면 별다른 이유가 쉽게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주식 증여세 절감 목적 '승계 전략' 의혹
이번 상장의 이면에 '숨은 의도'가 있을 것이라고 보는 이들은 오너인 이행명 회장이 1949년생으로 고령이라는 점과, 최대주주 측이 압도적으로 많은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승계를 위한 목적으로 추진되는 상장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현행 상속세 및 증여세법상 비상장 주식의 경우 순손익가치와 순자산가치를 가중평균하는 보충적 평가 방식을 적용해 산출한 1주당 가액 기준으로 증여세를 부과한다.
지난 2023년 설립된 명인다문화장학재단이 지난해 말 보유하고 있는 명인제약 주식수 50만주(지분율 4.46%)의 취득원가는 253억원으로 기재돼 있다. 취득 당시 1주당 약 5만원 꼴로 평가된 셈인데, 여기에 발행주식수를 곱하면 현재 명인제약의 기업가치는 약 5600억원, 혹은 그 이상으로 추산돼 적지 않은 증여세를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 예상된다.
반면 상장주식은 기준일 전후로 2개월, 총 4개월간의 종가 평균을 기준으로 평가한다. 쉽게 말해 상장 이후 시가총액이 비교적 최근 평가액인 5600억보다 낮게 형성되면 상장을 통해 승계하는 것이 유리한 셈이다.
정치권에서도 회사가 상장 이후 주가를 누르고 상속증여세를 납부하는게 유리하다는 판단에서 상장을 추진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2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경제는 민주당: 코스피 5000시대 실현을 위한 민주당이 할 일 기업편' 세미나 강연 말미에서 명인제약 사례를 언급했다.
당시 이 의원은 "40년간 비상장 회사로 운영되던 회사인데, 갑자기 회장님이 승계를 할 때가 되니 느닷없이 상장을 추진한다"며 "비상장 회사는 자산과 수익을 공정가치로 평가해서 세금을 내고, 상장 회사는 주가로 낸다. 그래서 이제 와서라도 상장 시켜 주가를 누른 다음 상증세를 납부하면 세금을 아낄 수 있다"고 꼬집었다.
(사진=명인제약)
"글로벌 진출 위한 신뢰도 제고 목적"
반면, 명인제약 측은 이번 상장이 승계와는 전혀 무관하며, 회사의 전문 특화 분야인 CNS의 글로벌 진출 기반을 마련하기 위함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명인제약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인터뷰에서 "단순 자금조달을 넘어서 지배구조 개선, 경영 투명성 강화,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는 경영 인프라 구축이 상장 목적"이라며 "신뢰도 제고와 글로벌 파트너십 확대, 우수 인재 확보 등 중장기 성장 기반을 마련할 목적으로 이번 상장을 추진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서는 글로벌 제약사로 도약하고자 했던 명인제약의 실제 행보가 자금조달과 기업 신뢰도 제고 목적의 당위성을 높이고 있다. 명인제약은 일본 후생성 의약품 외국제조업자 인증(AFM)을 취득한 후 완제의약품 수출과 더불어 향정신성 원료 일본시장 원료의약품 신고제도(JDMF) 등록 품목인 트리아졸람 원료를 수출하면서 일본 원료의약품 시장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또 최근에는 이탈리아 뉴론 파마슈티컬스와 조현병 치료제 '에베나마이드(Evenamide)'의 국내 독점 라이선스 계약 체결, 뉴론의 글로벌 임상3상 비용의 일부를 부담하기로 하면서 글로벌 파트너십을 강화하고 있다. 아울러 글로벌 임상3상에 돌입하는 유력 파이프라인의 확보는 주가 상승의 모멘텀으로써 그 자체로도 상장 이후 주가를 의도적으로 누를 것이란 일각의 우려에 대한 반박 근거로 작용할 수도 있다.
여기에 더해 명인제약의 공모예정 주식 수는 340만주로 구주 매출 없이 모두 신주를 발행한다. 기존 발행주식 총수와 함께 1460만주가 상장된다. 구주매출을 통한 최대주주 현금화가 없다는 점에서 공모 자금 전액이 미래를 위한 투자에 활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날 공개된 증권신고서에 따르면 명인제약은 희망공모가액을 4만5000원~5만8000원으로 제시했다. 이에 따라 상장 후 시총은 6570억원에서 8468억원 사이에 형성될 전망이다. 그간 업계에서 추정한 기업가치보단 높아 명인제약 측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모양새다. 앞으로 기업가치가 높게 책정될수록 승계 의혹에서 더욱 멀어지게 되는 만큼 오는 9월 실시되는 수요예측 결과에 관심이 쏠린다.
이재혁 기자 gur9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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