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사이언스)"태어날 때부터 플라스틱에 오염"…2100조 달하는 건강 손실
"재활용만으로는 위기 못 막아"
2025-08-06 08:56:34 2025-08-06 14:10:19
세계 지도와 쓰레기 더미, 플라스틱 병으로 뒤덮은 지구 이미지.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뉴스토마토 임삼진 객원기자] 전 세계를 덮친 플라스틱이 인류 건강을 잠식하고 있다는 경고가 나왔습니다. 세계적 의학 저널 <랜싯(The Lancet)>은 최근 발표한 정책 보고서에서 "플라스틱이 인간의 모든 생애 단계에서 질병과 사망을 유발하며, 연간 1조5000억달러(약 2100조원)의 건강 손실을 초래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보고서의 제1저자인 필립 랜드리건(Philip Landrigan) 미국 보스턴칼리지 교수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플라스틱 오염의 범위와 심각성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그 영향은 취약 계층, 특히 영유아와 어린이에게 가장 크게 미친다"며 "이는 사회에 엄청난 경제적 비용을 초래한다. 우리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행동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플라스틱 협정에 인간과 행성의 건강을 보호하는 조치가 포함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70년 새 200배 폭증…2060년엔 연 12억톤 생산
 
플라스틱 생산은 1950년 200만톤에서 2022년 4억7500만톤으로 급증했습니다. 현재 추세대로라면 2060년에는 연간 생산량이 12억톤에 이를 것으로 전망됩니다. 그 중 35~40%는 일회용 포장재로, 사용 후 버려져 대부분이 소각되거나 바다로 흘러갑니다. 플라스틱은 화석 연료 채굴부터 생산, 사용, 폐기까지 모든 단계에서 인간과 지구를 위협한다고 보고서는 지적했습니다. 이는 대기 오염, 유해 화학물질 노출, 미세플라스틱의 신체 침투로 이어집니다. 현재 전 세계에 80억톤의 플라스틱이 오염을 일으키고 있다고 보고서는 밝혔습니다. 이는 에베레스트 정상부터 가장 깊은 해구까지에 이릅니다. 재활용률은 10%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태아·유아기부터 노년기까지…모든 세대 위협
 
보고서는 플라스틱 화학물질과 미세플라스틱(MNPs)이 인류의 건강을 전 생애에 걸쳐 위협하고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태아기 노출 시에는 유산·조산·기형 등 위험이 증가하며, 유아기에는 폐 성장 저해, 신경 발달장애, 소아암 가능성을 높입니다. 성인기에는 당뇨, 심혈관질환, 불임, 암과 연관돼 있습니다.
 
특히 미세플라스틱은 혈액, 모유, 정액, 태반, 심지어 뇌와 심장 조직에서도 검출된 바 있습니다. 연구진은 "MNPs가 위장관과 폐, 혈액-뇌 장벽을 통과해 장기에 침투할 수 있다"며 "그 영향은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뇌졸중과 심장마비 등과 연관성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플라스틱 화학물질, 무관심 속의 침묵 살인자
 
전 세계 플라스틱에는 1만6000종 이상의 화학물질이 사용되고 있으며, 이 중 상당수는 내분비계 교란, 간독성, 발암물질로 분류됩니다. 하지만 70% 이상은 인체 건강 영향이 아직 평가조차 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미국을 포함한 38개국을 대상으로 한 최근 연구에서는 △비스페놀A(BPA) 허혈성 심장질환 사망 23만7000건, 뇌졸중 사망 19만4000건 △프탈레이트(DEHP) 중년 조기 사망자 16만4000명 △PBDE(난연제) 태아기 노출로 인한 IQ 손실 1170만 포인트 등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들 3개 물질로 인한 전 세계 건강경제 손실은 연간 1조5000억달러에 달합니다. 플라스틱은 저렴한 재료로 여겨지지만, 과학자들은 건강 피해 비용을 포함하면 이렇듯 비용이 높다고 주장합니다. 
 
 
전 세계 플라스틱 생산, 플라스틱 폐기물 발생, 및 플라스틱 사용 현황. (사진=랜싯)
 
"재활용으론 못 막는다"…산업계 주장에 정면 반박
 
석유수출국과 플라스틱 산업계는 그동안 "생산을 줄이기보단 재활용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해왔습니다. 그러나 보고서는 이를 정면으로 반박합니다. 플라스틱은 화학 구조가 복잡해 종이·유리·철강처럼 순환이 어렵고, 독성물질까지 포함돼 재활용도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랜싯은 "플라스틱 위기를 재활용으로만 극복할 수 있다는 주장은 업계의 '그린워싱(greenwashing)'"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공장 옆 어린이, 쓰레기 줍는 노동자…가장 약한 이들이 먼저 피해 입어
 
보고서는 플라스틱 위기가 가난하고 취약한 계층에 집중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아이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오염된 채 출발선에 서는 상황"이라고 경고했습니다. 
 
플라스틱의 해악은 여기 그치지 않습니다. 플라스틱은 매년 2.45Gt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며, 기후 위기를 가속화합니다. 바다에 흘러들어간 미세플라스틱은 탄소 흡수와 생태계 기능을 저해하고, 해조류·어류·육류 등으로 인간에게 다시 되돌아옵니다. 
 
또 플라스틱 표면은 항생제 내성균의 진화와 확산을 촉진하는 '플라스티스피어(plastisphere)'로, 세계보건기구(WHO)가 경고한 항생제 내성 확산의 새로운 통로가 되고 있습니다. 
 
국제 협약 막는 건 '산유국+산업 로비의 결과'
 
현재 유엔은 플라스틱 오염에 대응하기 위한 '글로벌 플라스틱 조약(Global Plastics Treaty)' 최종 협상을 앞두고 있습니다. 100개국 이상이 생산 제한을 지지하는 반면, 사우디아라비아 등 산유국과 플라스틱 기업은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영국 가디언지는 최근 보도에서 "산유국과 로비스트들이 협상 구조를 파괴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건강 중심 접근으로 전환해야"
 
이에 <랜싯>은 보건 중심의 새로운 글로벌 대응 체계 '플라스틱 건강 카운트다운(The Lancet Countdown on Health and Plastics)' 출범을 선언했습니다. 
 
이 카운트다운은 △생산·배출 추적 △환경·인체 노출 모니터링 △질병과 경제적 피해 추적 △정책 개입 및 사회적 반응 평가 등 4대 분야 지표를 통해 매년 국가별 플라스틱 위기 대응 성적표를 발표할 계획입니다. 
 
보고서는 "미세플라스틱이 인간의 뇌에서 검출된 지금, 플라스틱은 더 이상 쓰레기가 아니라 독극물이며, 위기는 이미 시작됐다"고 경고했습니다. "우리는 플라스틱 해악에 대해 더 연구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당장 행동할 만큼은 충분히 알고 있다"는 필립 랜드리건 교수의 말 속에는 즉각적인 행동을 촉구하자는 절박함이 담겨 있습니다.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daum.net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
0/300

뉴스리듬

    이 시간 주요 뉴스

      함께 볼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