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주용·김성은·유지웅 기자] 정부가 발표한 3500억달러(약 487조원)의 대미 투자안은 자금 조달 방식과 운용 계획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은 채, 사실상 수익의 대부분이 미국에 재투자되는 구조로 설계됐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금액 조정에 직접적으로 개입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법적 구속력도 없어 미 측 필요에 따라 바뀔 수 있는 '정치적 숫자'에 불과하다는 우려도 제기됩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트럼프가 정한 3500억달러…'법적 구속력' 전무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3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에서 관세 협상 타결 직후 화상연결언론간담회에서, 대미 투자 펀드와 관련해 "설명에 한계가 있으며, 모호함이 있는 게 사실"이라고 인정했습니다.
이어 "미국도 완전한 구체적인 디테일을 갖고 있다 보지 않는다"며 "구체적 부분은 향후 협의·운용 과정에서 구체화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당초 정부가 준비한 1000억달러 투자안에 이어, 2배 이상인 '2000억달러(약 276조원)+알파(α)' 카드까지 퇴짜를 맞은 끝에 나온 최종 타결안입니다. 최초 안보다 3.5배 불어난 금액이지만, 액수 외엔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라는 뜻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수익 배분 구조'가 전무하다는 점입니다.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한국 투자에 따른 수익의 90%는 미국민에게 간다"고 적었습니다.
반면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저희 내부적으로는 수익이 미국에 재투자된다는 의미로 이해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실제 수익이 누구에게 얼마만큼 돌아가는지, 의결권은 누가 갖는지조차 명확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만약 90%를 미국에 재투자하는 방식이라면, 일본과 마찬가지로 졸속 협상 논란이 불가피합니다. 미국 내 재투자로 흘러가는 구조인 만큼, 실질 수익이 얼마나 남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정부는 수출입은행과 무역보험공사가 일부 대출·보증을 맡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연기금이나 민간 자금의 참여 여부, 전체 자금 조달 구도 등 핵심 내용은 여전히 비공개입니다. "부실이 야기될 파이낸싱은 수용할 수 없다"는 원칙론만 반복하며, 구체적인 역할 분담이나 책임 비율은 제시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실상 법적 구속력도 없습니다. 상호 협의 끝에 도출된 '정치적 합의선'에 불과하다는 평가입니다. 달리 말하면 액수가 더 커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를 주도할 주체는 사실상 미국입니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펀드 규모의 최종 결정 단계에서, 직접 개입하며 3500억달러를 확정했습니다.
여 본부장 역시 "트럼프와 협상하는 과정에서 숫자가 왔다 갔다 하면서 최종 오늘의 결과로 수렴했다"고 언급했습니다. 앞으로도 왔다 갔다 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워싱턴의 앤드루 W. 멜론 강당에서 열린 AI 정상회의에 참석해 연설한 뒤 서명한 AI 관련 행정명령을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국이 더 부담 큰 구조…수익 90%도 미국으로"
전문가들은 이번 대미 투자에서 잠정적인 규모만 정해졌을 뿐,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가 산적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합니다.
왕선택 서강대 대우교수는 "대미 투자 금액이 지나치게 커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며 "조선 부문을 제외하더라도 약 300조원에 달할 텐데, 이 자금을 어떻게 마련할지가 걱정된다"고 했습니다.
이어 "향후 협상을 통해 충격을 완화할 수 있는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김상봉 한성대 교수는 "한국의 3500억달러는 일본의 5500억달러보다 적다고는 하지만, GDP나 외환보유액을 고려할 때 한국이 부담하는 비중은 절대 작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실제 3500억달러는 지난해 한국 국내총생산(GDP)의 20.4%에 육박합니다. 반면 일본의 투자 규모는 약 13.1%, 유럽연합(EU)은 6.9% 수준입니다.
김 교수는 이어 "더 큰 문제는 수익의 90%를 미국이 가져간다는 것인데, 이 부분은 아직도 구체적인 결정 없이 불리한 구조로 남아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한국의 이번 대미 투자를 두고 "일본이 체결한 투자 협정과 유사한 방식"이라며 "이번 투자 역시 미국 대통령이 주도하고 자국 산업에 집중될 전망"이라고 내다봤습니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
김성은 기자 kse5865@etomato.com
유지웅 기자 wisema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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