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억달러+α' 거부…천문학적 '트럼프 청구서'
'15%냐, 20%냐'…관세 '운명의 담판'
2025-07-30 18:05:03 2025-07-30 18:24:06
[뉴스토마토 유지웅 기자] 정부가 제시한 '2000억달러(약 276조원)+알파(α)'의 대미 투자 제안을 미국이 사실상 수용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조선업 협력을 골자로 한 '마스가(MASGA)' 프로젝트까지 제시했지만,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은 "최선의 협상안을 가져오라"며 추가 양보를 요구했습니다. 이 발언이 제안 이후 나왔다는 점에서 정부의 맞춤형 카드가 무력화됐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판 깨는 뇌관 '대미 투자'…2배로 올렸는데 "2배 더"
 
29일(이하 현지시간)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러트닉 장관은 최근 스코틀랜드에서 한국 정부 당국자들과 만나 "최선의, 최종적인 협상안을 테이블에 올리라"며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안할 땐 모든 것을 가져와야 한다"고 했습니다. 
 
한국 제안은 '최선'이 아니며 '최종안'으로 받아들일 수도 없다는 의미로, 추가 양보 없이는 협상 진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메시지로 해석됩니다. 현재 한·미 양국 간 가장 큰 입장 차이는 '대미 투자금 규모'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기존 1000억달러의 2배 규모인 2000억달러 이상을 제시했지만, 미국은 4000억달러(약 553조원) 대미 투자 요구를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앞서 일본이 약속한 대미 투자액 5500억달러(760조원)가 기준이 된 탓입니다. 
 
미국은 한국과 일본의 '대미 무역흑자' 규모가 비슷하다는 점을 들어 동등한 책임 분담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의 3개월치 명목 국내총생산(GDP)에 해당하는 돈을 '협상 청구서'로 내민 셈입니다. 
 
대미 투자는 한국 정부·기업이 함께하는 식인데, 반도체나 2차전지의 경우는 이미 바이든 행정부 시절 상당한 규모의 설비투자가 진행돼 더 이상 여력이 없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실제 한국 기업의 대미 해외직접투자(FDI)는 2020년 152억달러(약 21조원)에서 2024년 223억달러(30조원)로 50% 가까이 뛰었습니다. 2023년엔 한국이 사상 처음으로 미국의 최대 투자국(연간 기준)이 되기도 했습니다. 
 
정부는 금융기관의 대출·보증 확대 등을 통해 최대 3000억달러(약 416조원)까지 투자액을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입니다. 그러나 이마저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성에 찰지는 미지수입니다. 
 
그가 최종 협의 과정에서 강하게 개입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앞서 최종 협상에서 일본 측 '투자 제안 패널'에 적힌 대미 투자액(4000억달러)에 선을 긋고 '5000억달러'로 수정하기도 했는데요. 이후 일본의 대미 투자액은 최종적으로 5500억달러(약 760조원)까지 늘어났습니다. 이익 점유 비율도 패널에 적힌 50%에서 최종 90%로 상향됐습니다. 
 
일본이 제안한 '투자 제안 패널'에 적힌 대미 투자액을 '5000억달러'로 수정한 트럼프 대통령. (사진=댄 스커비노 백악관 부비서실장 엑스)
 
효력 없는 '마스가'…반도체·바이오까지 띄운 정부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한국과의 관세 협상이 내일 끝나느냐'는 기자 질문에 "관세는 내일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그는 앞서 기자들 질문이 겹친 탓에 정확히 알아듣지 못했고 "내일 무엇을 끝낸다는 것이냐"고 되묻기도 했습니다. 한국을 특정하지는 않았지만, 협상 시한이 임박한 상황에서 여전히 만족하지 않고 있음을 시사한 발언입니다. 
 
트럼프의 협상 스타일상 합의 전에는 상대국 제안에 긍정적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경향이 강하지만, 마스가 프로젝트와 같은 대규모 제안 이후에도 여전히 미 측이 선 긋기를 이어가는 점에서 우리 정부의 협상 카드가 실질적인 효력을 거두지 못하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현실적으로 한국이 기대할 수 있는 최상의 시나리오는 일본·유럽연합(EU) 수준인 '상호관세·자동차 관세 15%'입니다. '국가 안보'를 명분 삼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예외 조항을 악용하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미체결국' 일본·EU와의 형평성 고려를 기대하긴 어렵습니다. 
 
그는 미국과 관세 협정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엔 15~20%의 상호관세율 적용하겠다고 최후 통첩한 상태입니다. 한국은 타결을 끌어내야 하는 처지여서, 협상력이 점점 약화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최악은 25% 관세를 부과받는 경우입니다. 앞서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미국의 관세정책이 그대로 강행되면 한국 경제가 안정을 회복한다고 해도,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최대 0.4%포인트 감소할 수 있다"고 예상했습니다. 지난해 한국의 실질 GDP(약 2292조원)를 고려하면 연간 최대 9조2000억원가량이 증발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KIEP 분석에는 일본·EU 관세율이 15%로 낮아진 점이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이 점을 고려하면 중장기적인 GDP 손실은 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은행은 지난 5월 우리나라의 상호관세율이 일본과 같은 15%로 낮아진다는 점을 전제로 올해 연간 성장률을 0.8%로 전망했습니다. 상호관세율이 25%로 확정되면 GDP 성장률은 5월 전망보다 0%에 가깝게 더 떨어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방미 첫날인 이날 러트닉 장관과 2시간 동안 통상 협의를 진행했습니다. 만남은 사전에 조율된 일정은 아니었던 걸로 전해지는데요. 다급한 한국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구 부총리는 31일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과 면담할 예정입니다. 
 
한편,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30일(한국시간) 브리핑에서 한·미 관세 협상과 관련해 "조선이 아닌 다른 분야도 대한민국이 기여할 부분이 많기 때문에 반도체, 이차전지, 바이오 등에 대한 논의도 이어가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사실상 '마스가 프로젝트'만으로는 타결이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을 내비친 발언입니다. 
 
유지웅 기자 wisema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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