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담판 무산…엎친 데 덮친 '관세협상'
"쌀·쇠고기 안 열면 협상 없다"…판 걷어찬 미국 '초강수'
관세 일주일도 안 남았는데…사라진 고위급 협상테이블
2025-07-24 18:10:45 2025-07-25 15:36:14
[뉴스토마토 유지웅·김태은 기자] 한·미 재무·통상 수장의 '2+2 통상협의'가 돌연 무산됐습니다. 쌀·쇠고기 시장 개방을 둘러싼 미국 압박이 최고조에 이른 가운데, 한국 정부가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서 협상이 결렬된 걸로 보입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출국 직전 일방적 통보를 받은 정황이 확인됐는데요. 이번 협상 취소는 이례적인 강경 조치라는 해석이 나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출국 1시간 전 '이메일 통보'…공항서 발길 돌린 부총리
 
미 재무부는 24일 오전 9시경 이메일을 통해 25일(이하 현지시간) 예정됐던 2+2 협의를 연기한다고 일방 통보했습니다.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의 '긴급 일정'을 그 이유로 들었습니다.
 
우리 측 협상 대표인 구 부총리는 인천공항에서 비행기에 오르기 직전, 1시간을 남기고 갑작스러운 통보를 받고 발길을 돌렸습니다. 또 다른 협상 대표인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이미 미국 현지에서 회담 준비에 들어간 상태였습니다.
 
구체적 설명도 없었습니다. 베센트 장관의 긴급한 일정 역시 확인되지 않는데요. 이는 명백한 외교적 결례로서, 단순한 '일정 취소'가 아니라 '정치적 메시지'로 풀이됩니다.
 
"쌀·쇠고기 시장을 열지 않으면, 협상판 자체를 걷어차겠다"는 뜻입니다. 우리 정부가 '레드라인'으로 설정한 미국산 쌀 수입 확대, 30개월령 이상 소고기 수입 허용이 미 측 핵심 요구사항과 정면충돌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됩니다. 
 
기재부는 "미국 측과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일정을 잡을 계획"이라고 설명했지만, 상호관세 부과 시점(8월1일)이 불과 일주일도 남지 않은 가운데 향후 협의 성사 여부도 불투명해진 게 현실입니다.
 
2+2 협의는 양국 재무·통상장관이 동시에 참석하는 만큼, 수위 높은 '빅딜'이 성사될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정부는 "김정관 산업부 장관, 여한구 본부장의 미국 측과 협의는 당초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는데요. 그러나 2+2 협의가 결렬된 마당에 유의미한 성과를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열린 인공지능(AI) 서밋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사진=AFP연합뉴스)
 
트럼프, 농산물에 '진심'…미일 합의도 한국에 '악재'
 
미 측은 일본과의 무역합의 이후, 한국에 대한 압박 수위를 최대치로 끌어 올리는 모양새입니다. '일본의 양보'가 한·미 협상의 기준이 된 셈입니다. 
 
앞서 일본은 일본이 5500억달러(약 760조원)에 육박하는 대미 투자를 약속했습니다. 특히 '성역'으로 여겨왔던 쌀 시장까지 일부 개방했는데요. 이 점은 미국이 한국 압박을 정당화하는 사례로 작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3일에도 "상대국이 시장을 개방할 경우에만 관세를 내리고, 그렇지 않을 경우 더 높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못 박았습니다. '일본'에서의 성과도 강조했습니다. 
 
이처럼 미국이 농산물 개방을 우선순위에 두는 건 정치적 효과가 크기 때문입니다. 미국산 농산물의 경우, 상대국 관세나 물량 제한만 해소돼도 수출이 즉시 늘어나는 구조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성과 발표→지지층 결집'이라는 단기 사이클에 집착해 온 만큼, 농산물 시장은 가장 손쉬운 협상 타깃입니다. 미국 중서부 농업지대, 이른바 '팜 벨트'는 트럼프의 핵심 지지 기반이기도 합니다. 
 
앞서 영국, 베트남, 인도네시아와의 협상에서도 농산물 시장 개방은 핵심 의제로 다뤄졌고, 대부분 일정 수준의 양보가 이뤄졌습니다. 
 
"농산물 개방 불가피…전략적 수용 필요"
 
전문가들은 농산물 개방을 불가피한 흐름으로 보고, 협상 과정에서 전략적 판단이 필요하다고 조언합니다. 곽노성 동국대 명예교수는 "미국은 기본적으로 농산물 수출국"이라며 "일리노이·인디애나·아이오와 등 내륙 곡창지대 생산물만으로도 자급이 가능한 만큼, 나머지 생산물은 수출 전용으로 흘러간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농산물 개방은 어차피 진행될 사안"이라며 "정부가 농산물 시장을 레드라인으로 설정하되, 점진적으로 풀어주는 것도 하나의 전략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김정식 연세대 명예교수는 "한국은 대미 무역에서 약 600억 달러 흑자를 내고 있다"며 "수출을 줄이기보다는 수입을 늘려 무역흑자를 줄이는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평가했습니다.
 
양준석 가톨릭대 교수는 2+2 협의 취소를 두고 "일정 문제를 들었지만, 트럼프 행정부라면 충분히 압박 전략일 수 있다"며 "미국이 얼마나 빠르게 협의 재개를 제안하는지에 따라, 단순 일정 때문인지 전략적 조치인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한편, 나흘간 방미 일정을 마친 위성락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은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 겸 국가안보보좌관과 대면하지 못한 채, 금일 귀국할 예정입니다. 
 
대통령실은 "루비오 장관이 트럼프 대통령 호출로 회의에 참석하면서 면담이 불발됐고, 유선 협의로 입장을 교환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현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한·미 간 고위급 면담이 줄줄이 무산되면서, 외교 기류가 심상치 않다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유지웅 기자 wiseman@etomato.com
김태은 기자 xxt197@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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