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재연 기자] 경기도 가평에 쏟아진 기록적인 폭우로 총 20개 축사가 피해를 입었습니다. 20개 축사엔 1403마리 가축이 있었는데, 재난을 겪은 동물들은 집단적으로 공황에 빠졌을 걸로 보입니다. 특히 가평 서북쪽에 위치한 상면의 한 축사에선 젖소 94마리 중 32마리가 유실되거나 죽을 위기에 처하고, 남은 62마리는 토사에 파묻혀 있었던 걸로 드러났습니다. 살아남은 소에 대한 스트레스 관리와 질병 예방이 시급한 상황입니다.
'소도 공황 상태'...침수된 축사에 남겨진 동물들
가평군청이 파악한 피해 통계에 따르면, 문제가 된 상면의 한 축사에선 지난 21일 기준 소 31마리가 물에 휩쓸려 가고, 1마리는 죽을 위기에 처해 도살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살아남은 소 62마리는 현재 침수된 축사에서 오염된 토사와 함께 생활 중입니다.
21일 경기도 가평군에 위치한 축산농가에 전날 새벽에 내린 집중호우로 토사물이 들어찼다. (사진=뉴스토마토)
20일 가평에는 시간당 76㎜의 기록적인 폭우가 내렸습니다. 밤 12시부터 오전 6시까지 6시간 동안의 쏟아진 누적 강수량은 197.5㎜에 달합니다. 가평군청에 따르면, 지난 16일부터 20일까지 쏟아진 폭우로 21일 오후 9시 기준 △사망 3명 △실종 4명 △이재민 66명 △주택 붕괴·도로 유실·산사태 52건 등 대규모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가평군을 가로지르는 조종천도 범람해 인근 마을은 쑥대밭이 됐습니다. 수마가 지나간 뒤 살아남은 주민들은 복구를 위해 또다시 씨름하고 있었습니다.
물폭탄에 피해를 입은 건 동물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문제가 된 상면의 농가는 조종천에서 200m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이곳엔 우유 생산을 위해 94마리의 젖소가 사육되고 있었는데, 32마리가 이번 홍수로 죽거나 떠내려 갔습니다. 생존한 젖소 62마리는 복구가 끝날 때까지는 침수된 축사에서 오염된 토사물과 함께 생활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복구는 결국 사람을 위주로 진행될 수밖에 없습니다. 젖소들은 상당 기간 토사와 함께 지내야 하는 겁니다.
축사 관계자는 생존한 젖소들을 걱정했습니다. 사람과 같이 동물도 주변 환경과 처해진 상황에 따라 혈압 상승, 식욕 감퇴 등 스트레스 반응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홍수로 젖소가 스트레스를 받아 산유 능력과 번식력이 떨어질까 우려되는 겁니다. 특히 토사와 지낸 젖소는 세균에 오염되기 쉽고, 그런 젖소에서 짠 우유를 마시게 되면 사람도 영향을 받게 될 게 뻔합니다.
실제로 낙농가는 여름철 고온 스트레스로 인한 젖소 피해를 막기 위해 환경 관리에 큰 신경을 씁니다. 공사장 소음과 진동으로 인해 기르던 가축이 피해를 받은 사례가 환경분쟁조정피해구제위원회까지 올라간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경기도청 관계자도 침수로 오염된 축사에서 소가 유선염 등 질병과 전염병에 걸릴 것을 우려했습니다. 젖소는 오랜 시간을 땅에 앉아 보내는데 바닥이 토사와 분변으로 가득해 발병 확률이 높다는 겁니다.
21일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오른쪽에서 세번째)이 가평군 집중호우 피해 축사를 방문해 농가 관계자 이야기를 듣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21일엔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도 가평 집중호우 피해 축사를 방문, 현장을 점검했습니다. 송 장관은 지방자치단체 관계자에게 "백신 접종을 진행하고 스트레스 완화제를 사료에 첨가하라"고 했습니다.
폭우·폭염 반복에도...'대책' 없이 다뤄진 동물들
폭우로 인한 동물 피해 사례는 매년 반복되고 있습니다. 지난 2023년에는 홍수로 가축 57만9000마리가 폐사했습니다. 앞서 2020년에 발생한 집중호우 땐 전국에 있는 가축 53만9066마리가 폐사했습니다. 당시 전남 구례에 있는 축사가 폭우에 잠기자 우리에 있던 소들이 지붕 위로 도망쳐 올라가는 일도 있었습니다.
농식품부가 지난 21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이번 집중호우로 죽은 가축은 △닭 142만9000마리 △오리 13만9000마리 △돼지 855마리 △젖소 149마리 △한우 529마리 △꿀벌 1101군으로 확인됐습니다. 또 올해 폭염으로 폐사한 가축은 52만6006마리에 달합니다. 지금이 7월 중순임을 감안하면 남은 여름 동안 가축 폐사가 계속될 걸로 보입니다. 지난해엔 104만9548마리, 그러께인 2023년엔 92만5460마리의 가축이 폭염으로 폐사됐습니다.
김도희 동물해방물결 캠페이너도 "정부가 말하는 자연재해는 동물에 대한 피해가 아닌 농가의 피해로 국한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대책도 그런 관점에서 세워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정진아 동물자유연대 사회변화팀장은 "산불, 폭우 등 기후위기로 인한 재난이 늘어날 전망인데 대책을 마련하는 과정에 동물에 대한 방안도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정재연 기자 lotus@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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