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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7월 21일 06:00 IB토마토 유료 페이지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이재명 정부의 정책 기조가 반영된 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국내 기업 지배구조의 대전환이 예고되고 있다.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 명문화, '전자주총 제도화', '최대주주 3%룰 확대' 등은 단순한 제도 변경을 넘어 기업 경영의 기본 원칙과 투자자와 기업 간 관계를 재정의하는 중대한 분기점이다. 변화의 방향은 소액주주 권익 강화이지만 그 여파는 산업 전반과 자본시장 전반에 깊이 스며들 전망이다. <IB토마토>는 창간 6주년을 맞아 상법 개정의 핵심 내용과 주요 쟁점을 짚어보고, 이에 따른 산업·시장·정책의 파급효과와 기업·정부·투자자의 역할 변화를 총체적으로 살펴본다.(편집자주)
[IB토마토 황양택 기자] 개정된 상법 핵심은 소액주주 권익 보호 강화다. 개정안의 상징적 사항인 ‘이사의 주주충실 의무’는 법률 공포 후 바로 적용될 예정이다. 주주 보호는 물론이고 기업 지배구조 개편까지 대격변이 예고됐다. 이를 토대로 상장사 가치 평가를 제고하는 것이 궁극적 목표다. 다만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만큼 개정안을 둘러싼 다양한 평가가 따른다. 실제 적용 과정에서 개정 내용에 대한 엇갈린 해석이 제기될 수 있어 추가적인 논쟁이 불가피하다.
주주충실 의무부터 3%룰 확대까지…'전체 주주' 권익 강화
개정 상법 내용은 크게 네 가지로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명문화 ▲전자주주총회 제도 법적 근거 마련 ▲상장사 사외이사 독립이사 변경 및 의무적인 선임 비율 상향 조정 ▲감사위원 선임과 해임 시 최대주주 의결권 제한 강화 등이다.
먼저 이사의 충실의무 개정은 그 대상을 현행 ‘회사’에서 ‘주주’까지 더하는 것이 골자다. 이사가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모든 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고 이익까지 공평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자주주총회 건은 개최 의무와 주요 내용을 새로 반영하고 운영 방침까지 명문화한 것이다. 현행법에는 관련 사항이 적혀 있지 않다. 총회 소집지를 본점 소재지나 그에 인접한 곳으로 해야 한다는 정도만 담겼다. 개정안은 원격지에서도 전자적 방법으로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을 더욱 확실히 해뒀다.
상장사 사외이사 명칭을 독립이사로 바꾸는 것은 ‘회사의 외부자’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목적에서 이뤄졌다. 사내이사나 집행임원, 업무집행지시자로부터 독립적인 기능을 수행한다는 점도 함께 추가됐다. 지배주주나 경영진에 대한 감시·견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라는 뜻이다. 독립이사 선임 의무비율은 기존 4분의 1에서 3분의 1로 확대된다.
감사위원을 선임하거나 해임할 때 최대주주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3%룰’도 한층 강화한다.
현행 상법에서는 ‘사외이사 감사위원’에 대한 영향력을 개별 주주가 의결권 3%까지만 행사할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다. 지분이 아무리 많아도 3% 이상 영향을 줄 수 없다. ‘사외이사가 아닌 감사위원’의 경우 개별 주주 3% 외에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 합산 3%도 적용받는다. 최대주주는 특수관계인 지분까지 더해 의결권 3%로 특별히 제한했다.
개정안은 사외이사가 아닌 경우뿐만 아니라 사외이사 감사위원에 대해서도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 합산 3%를 확대 적용한다. 사내이사든 사외이사든 구분하지 않겠단 의도다. 감사위원 구성에 대한 최대주주 집단의 영향력을 더욱 제한한 셈이다.
그동안 최대주주 집단이 3% 초과 지분에 대한 의결권을 행사하기 위해 보유 주식을 특수관계인에 양도, 3%룰을 우회하는 방식으로 감사위원 선임·해임에 영향을 미치곤 했는데, 이러한 폐단을 방지코자 한 것이다.
개정안 가운데 이사의 주주충실 의무는 공포일 즉시 시행된다. 전자주주총회 개최 건은 오는 2027년 1월1일 예정이다. 독립이사 건은 공포 후 1년이 경과한 날부터 시행되며, 상장사 의무비율 확대 요건은 법 시행 이후 1년 이내에 갖춰야 한다. 3%룰 확대는 공포 후 1년이 경과한 날부터 적용된다.
'여야 합의' 상법개정안 본회의 통과 (사진=연합뉴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글로벌 스탠다드 반영
개정 전 상법은 주주 보호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이 줄곧 제기돼 왔다. 재계를 비롯해 상장사 대부분의 지배구조는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 중심으로 이뤄진다. 법적 구조상 나머지 주주가 의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수단이나 그 실효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목소리를 내더라도 형식적인 선에서만 다뤄지는 경우가 많다.
최대주주 집단에 대한 견제 장치 역시 미흡하다고 지적된다. 개정 상법에서 독립이사 선임 비율을 높이고, 최대주주의 감사위원 지배력을 낮추는 이유도 두 집단의 독립성이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감시와 견제 기능이 저하됐다.
이러한 양상은 외국인의 국내 투자를 위축시키고, 자본시장에 대한 신뢰도를 하락하게 만든다는 비판으로 이어진다. 국내 상장사 가치가 글로벌 기업과 비교해 저평가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원인과 배경에 기업의 지배구조 문제가 필수적으로 언급되는 이유다.
상법 개정은 선진국의 글로벌 스탠다드와 방향성이 부합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해외서는 상법이나 회사법에서 이사의 주주충실 의무를 명확히 하고 있다.
앞서 올 상반기 진행된 한국금융법학회 세미나 자료에 따르면, 미국의 ‘델라웨어 일반회사법’과 ‘모범사업회사법’이 해외 입법례로 주요하게 거론된다. 델라웨어는 이사에 대한 손해배상책임 문제에서 충실의무를 논하고 있는데, 그 대상으로 회사와 함께 주주도 같이 언급했다. 모범회사법의 경우 이사의 책임기준 규정에서 신인의무와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와 주주라고 표현했다.
영국의 회사법 제172조에서는 이사의 신인의무를 성문화했다. 내용을 보면 회사 성공을 촉진해야 하고, 전체 사원(주주)의 이익을 위해야 하며, 주주 외에 채권자 등 이해관계자도 고려해야 한다.
코스피와 코리아 디스카운트 (사진=연합뉴스)
엇갈리는 평가…시행 후에도 해석 다툼 여지
상법 개정에는 국내 기업과 주주 등 각자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만큼 평가도 엇갈리고 있다. 앞서 국내 여러 단체와 협회에서는 서로 다른 의견과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시민단체인 경제개혁연대는 “개정 상법이 시행된다면 주주의 총회 참석 기회가 폭넓게 보장되고, 지배주주 영향력 제한으로 이사회의 독립성 확대에 기여할 것”이라며 “이사가 주주 이익에 대해서도 충실하게 업무 수행을 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라고 진단했다.
반면 한국경제인협회는 경제 8단체 공동 입장문을 통해 “자본시장 활성화와 공정한 시장 여건 조성이라는 취지에는 공감한다”라면서도 “이사의 소송 방어 수단이 마련되지 못했고, 3%룰 강화로 투기세력 등의 감사위원 선임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라고 했다.
개정안 공포 후에도 추가적인 논쟁이 예고돼 있다. 이는 개정 내용에 대한 해석을 축소하거나 확대하는 등으로 전개될 소지가 있다. 특히 공포 후 바로 시행되는 이사의 주주충실 의무 건은 실제 적용하는 과정에서 기준과 범위 해석 등 불명확한 부분이 발생할 여지가 크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IB토마토>에 “이번 상법 개정은 소액주주를 보호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강화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라며 “다만 상법 자체는 원론적인 얘기고 해석에 따라 방향성이 다를 수 있다. 세부적인 하위 제도를 마련하는 등 포괄적 보완이 필요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황양택 기자 hyt@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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