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속에서 물꿩 새끼들이 더위를 피하려고 아빠 품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오늘날 지구촌의 가장 큰 현안과 화두는 지구온난화 현상입니다. 지구온난화는 기후변화로 이어져 가뭄과 홍수,폭염,산불 같은 대형 재앙을 불러옵니다. 최근 미국은 텍사스를 비롯한 남부에 홍수가 발생해 290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는데, 집이 급류에 둥둥 떠다니는 모습을 TV 뉴스 화면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유럽은 섭씨 40도에 육박하는 폭염에 시달립니다. 우리나라도 7월 초순 한낮 기온이 섭씨 35도를 윗돌며 열대야가 계속돼 1906년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높은 수치를 연일 갱신하고 있네요.
지구온난화가 지금처럼 계속된다면, 일부 지역의 조류 종은 최고 72%까지 멸종할 거라고 세계야생기금(WWF)은 경고하고 있지요. WWF는 이미 많은 조류가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으며, 온난화의 연쇄효과가 이미 시작했다고 하네요. 또 일부 철새들은 이동할 계절이 왔는데도 이동하지 않고 있답니다. 미국은 중서부 동부 지역과 5대호 일대의 조류 종 가운데 약 3분의 1이 줄었고, 호주 북동부 열대 습지의 새는 4분의 3이 사라졌고 합니다. 온난화가 지금처럼 계속된다면 철새들의 주요 서식지인 유럽 지중해변 습지는 오는 2080년까지 완전히 파괴될 것이며, 서식지 변동으로 텃새들 마저 재난을 맞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어요.
우리나라에서도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의 조짐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어요. 이상 난동은 물론, 봄철 가뭄, 여름철 폭염 일수가 점점 길어지고, 대형 산불도 자주 발생합니다. 과거처럼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뚜렷한 사계절이 아니라 봄, 가을이 짧아지거나 사라지는 아열대성 기후로 바뀌고 있어요. 올해는 장마마저 일찍 끝나고 폭염이 찾아왔어요. 인간보다 기후에 민감한 새들의 생존 전략은 이미 변화하고 있어요. 여름철새인 왜가리와 백로의 집단 번식지가 점차 북상하고 있고, 겨울철 추위를 피해 월동지로 떠났던 여름철새들이 한반도에 잔류하는 경우가 늘고 있어요.
한반도에서 볼 수 없었던 아열대성 조류도 곳곳에서 목격되더니 이제는 우리나라에서 번식을 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어요. 그 가운데 하나가 물꿩(Pheasant-tailed Jacana)이랍니다. 물꿩을 처음 본 것은 19년 전인 2006년 여름입니다. 그해 여름 휴가를 맞아 손꼽아 기다리던 물꿩을 보러 북제주군 한경면 용수리로 날아갔어요. 용수리에 있는 용수지는 약 900㎡ 정도의 작은 습지로 수면 위는 온통 수생식물 마름으로 덮여 있었어요. 맹위를 떨치는 7월의 폭염 속에서 이들을 관찰하고 촬영하는 팀들이 위장막 속에서 팬티 바람으로 저를 맞아주었어요. 위장막 속은 한증탕보다도 후끈했어요. 습도가 높았고, 복사열이 온실효과를 더해 누구라도 옷을 벗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환경이었고, 달려드는 모기 떼가 고통을 가중시켰어요.
여름깃에서 겨울깃으로 변해가는 물꿩이 경남 우포늪 가시연 위를 거닐고 있다.
“삐요우, 삐요우” 새끼들을 부르는 수컷 물꿩의 울음소리가 들렸어요. 이들을 기다리며 겪는 모든 고통을 잠시 잊고, 카메라를 잡았어요. 흩어져 있던 새끼 제 마리가 어느새 달려와 수컷의 날개 품으로 팔짝 뛰어 들어갔어요. 어미의 날개 속에 몸은 감춰지고 축 처진 다리 여덟 개만 보였어요. 아열대 지방에서 날아온 녀석들도 폭염에는 속수무책이더군요. 어쩌면 이런 생소한 모습이 아열대 지방의 일상일지 모르겠어요. 수컷은 무더위에 지친 새끼들에게 시원한 사랑을 건네주기 위해, 틈 날 때마다 목욕을 해서 자신의 체온을 낮추고 새끼들을 불러 모아 양 날개 속으로 끌어 모읍니다. 비록 짧은 순간이지만 새끼들은 뜨거운 태양볕을 피해 아빠가 만들어준 천연 에어컨 속에서 아빠의 숨소리를 들으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을 보내는 것 같았어요.
수컷은 뜨거운 한낮에 이러한 행동을 40~50분 간격으로 반복했어요. 수컷의 새끼 돌보기는 이처럼 눈물겨워요. 이와 달리 암컷은 먼 발치서 구경하며 거드름만 피우고 있죠. 물꿩은 호사도요처럼 일처다부의 번식 습성을 가지고 있는 새랍니다. 암컷이 산란을 하면, 수컷이 알을 품고 부화한 새끼들도 혼자서 양육하죠. 암컷은 수컷보다 크며 자기 영역권 안에서 여러 마리의 수컷을 거느립니다.
이때 다른 암컷이 영역권에 나타나면 암컷들 사이에선 격렬한 생존경쟁이 벌어지죠. 새로운 암컷이 승리하면 기존의 알과 새끼들을 모두 없애버리고, 수컷은 새 강자와 짝짓기해 자식을 새롭게 양육합니다. 아열대성 조류인 물꿩은 1993년 7월15일 경남 창원 주남저수지에서 박진영, 정옥식 당시 경희대 조류연구소 조사팀에 의해 한반도에서 처음으로 관찰됐어요. 그 뒤 간헐적으로 제주, 충남 천수만에서 관찰되더니 2025년 여름엔 강원 강릉 등 한반도 곳곳에 찾아와 번식을 하고 있어요.
물꿩의 번식지가 늘고 있는 현상은 한반도 기후변화가 이미 시작되었다는 지표랍니다. 희귀한 철새가 한국을 찾은 것이 반가운 일이긴 하지만, 그 원인이 기후변화라니 다소 걱정스럽긴 합니다. 철새의 이동 경로 변화와 번식지 북방한계선의 북상이 그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생존 수단이 되겠지만, 한편 수천만년 전부터 이어온 지구 생태계에 이상 조짐이 나타난 것입니다. 물꿩의 한반도 번식은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탄소 배출량 감소에 지구촌이 지혜를 모아 실천하라는 메시지라 생각합니다.
사진·글=김연수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겸임교수 wildik0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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