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넘긴 SPC 노조파괴 재판…쟁점은 ‘지시’ 여부
1년 넘게 재판 진행…증인신문만 1년 더해야 할 수도
2인자 황재복 ‘허영인 지시’ 증언…허 회장 '지시' 부인
허 회장 "관련자 증언 다 들어보자"…노조 "시간 끌기"
법정 나온 현직 직원들, 허 회장 앞에선 '증언 뒤바꿔'
재판 길어지자 법정 안팎선 '노사 갈등'만 더 심해져
2025-06-23 07:00:00 2025-06-23 07:00:00
[뉴스토마토 강석영 기자] 허영인 SPC그룹 회장의 ‘노조파괴’ 혐의 재판이 시작된 지 1년이 넘었습니다. 선고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릴 전망입니다. 쟁점은 허 회장이 노조파괴를 ‘지시했는지 여부’입니다. 지난해 6월 황재복 SPC 대표는 법정서 허 회장의 지시를 인정했고, 다른 사건 관계인들도 검찰서 이런 취지로 진술했습니다. 반면 허 회장 측은 ‘지시’를 인정하지 않고, 법정서 반대신문을 해야 한다며 사건 관계인들을 증인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증인이 많아 재판도 길어지는 겁니다. 노조는 허 회장 측이 시간만 끈다고 주장합니다. 법정서 허 회장과 대면한 현직 직원들이 그에게 불리한 말을 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입니다.
 
SPC 그룹 계열사 밀다원 주식을 저가에 양도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허영인 SPC그룹 회장이 지난해 2월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사진=공동취재)
 
허영인 회장, 지난해 5월부터 재판…증인신문만 7개월째 
 
허 회장 등 SPC·피비파트너즈 전현직 임직원 19명에 대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등 위반 혐의 재판이 해를 넘겼습니다. 허 회장 등은 자사 직원들에게 ‘민주노총 탈퇴를 강요하라고 지시했다’라는 혐의를 받고 지난해 4월 기소됐으며, 5월부터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부장판사 강완수)에서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재판이 길어지는 건 지난해 12월부터 노조파괴에 가담했다고 지목된 관리자들에 대한 증인신문이 이어지고 있어서입니다. 증인신문은 허 회장 측의 요청입니다. 그보다 앞선 6월 그룹 2인자였던 황 대표가 법정서 ‘허 회장이 노조파괴를 지시했다’라는 취지로 증언한 데다 관리자들도 검찰서 이런 취지의 진술을 하자 지시를 인정하지 않는 허 회장 측이 ‘검찰서 조사받은 직원들을 모두 증인으로 불러 반대신문을 하자’고 주장한 겁니다. 지난 18일에도 피비파트너즈 서울 동부사업부 관리자가 증인으로 출석했습니다. 전국 8개 사업부 중 세 번째입니다. 아직 5개 사업부에 대한 증인신문이 남아 있습니다. 증인신문만 1년을 더 해야 할 판입니다. 
 
노조는 시간 끌기라고 비판합니다. 허 회장 측이 반대신문을 하면서 검찰 주신문의 2배 가까운 시간을 쓴다는 겁니다. 임종린 민주노총 파리바게뜨지회장은 “시간을 끌면서 노조 세력화를 막으려는 것”이라며 “노조가 없어진 뒤에 판결이 나면 무슨 의미냐”라고 했습니다. 임 지회장에 따르면, 파리바게뜨지회는 2020년 무렵 조합원 숫자가 760명이었지만, 지금은 180명으로 줄었습니다. 회사의 노조파괴 때문이라는 주장입니다. 
 
허 회장 측이 많은 증인을 부르고, 신문에 시간을 많이 쓰는 건 재판을 유리하게 이끌려는 전략으로 보입니다. 현직 직원들이 회장과 직접 대면한 자리에서 회사에 불리한 진술을 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피고인석과 증인석 거리는 1m도 안 됩니다. 직원들은 허 회장 앞에만 서면 검찰에서 했던 진술을 뒤집습니다. 검사는 허 회장의 혐의를 입증하는 게 아니라 진술을 번복한 증인들과 다퉈야 하는 겁니다. 
 
올해 4월 증인으로 출석한 현장관리자 A씨는 앞서 검찰 조사에선 ‘조합원들에게 불이익을 주겠다고 압박하고, 민주노총 탈퇴서를 받아서 상급 관리자에게 가져가면 포상금을 받았다’라고 인정했으나 법정에선 “(한국노총 조합원으로서 민주노총 조합원을 빼내기 위한) 자발적 노조 활동이었다”라고 했습니다. 5월 중간관리자 B씨가 출석했는데, 그는 검찰에선 “사업부장의 노조탈퇴 지시가 있었다”고 진술했으나 법정에 나와선 “검찰 조사 때 잘못 말했다”고 말했습니다. 중간관리자 C씨는 “민주노총(조합원) 중 강성인 애들은 빼”라고 했던 진술을 번복하면서 “검찰이 구속수사 전환으로 협박해 사실과 다르게 진술했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2월 서울시내의 한 파리바게뜨 외관 전경. (사진=뉴시스
  
재판 길어지자 법정 안팎선 건건마다 ‘사측 대 노조’ 마찰
 
재판이 길어지는 조짐을 보이자 법정 안팎에서 회사와 직원들, 노조 사이의 갈등도 더 깊어지는 모양새입니다. 
 
올해 1월 피비파트너즈는 관리자 전체를 상대로 교통비 부당 청구를 문제로 삼고 나섰습니다. 관리자들은 그동안 차량 운행에 필요한 기름값을 자비로 충당한 뒤 영수증을 제출, 교통비를 보전받아왔습니다. 그런데 본인 영수증이 아니라 타인의 영수증을 내고 교통비를 부당 수급하는 사례가 빈번했던 겁니다. 횡령에 해당하지만, 그간 회사의 암묵적 동의 아래 관행처럼 돼왔다고 합니다. 다만 이런 점들이 고려돼 부당 청구를 했던 관리자들에 대한 징계위원회가 별도로 열리지는 않았고, 재발방지책을 세우는 선에서만 상황이 끝났습니다.
 
문제는 회사가 이 일을 지적하고 나선 시점입니다. 당시는 허 회장 측 요청으로 관리자들에 대한 증인신문이 막 시작되던 참이었습니다. 이에 임 지회장은 “유류비는 협력사 시절부터 관리자 수당처럼 여겨졌다”며 “갑자기 부당 청구라며 수천만원을 내놓으라는 건 증언에 영향을 미치려는 시도”라고 말했습니다. 반면 회사 측은 “유류비 확인은 정상적 경영의 일환에서 전사적·정기적으로 진행한 감사활동”이라고 반박했습니다. 
 
4월 말엔 재판에 나온 사측 변호사가 증인에게 말을 걸었다가 노조와 마찰을 빚기도 했습니다. 당시 피비파트너즈 직원이 증인신문에 출석하고자 법정 밖에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사측 변호사 한명이 B씨와 접촉한 겁니다. 이 광경을 목격한 노조는 검찰에 바로 항의했습니다. 앞서 법원은 지난해 9월12일 구속기소된 허 회장의 보석을 허가했는데, 보석기간에 지켜야 할 조건으로 ‘증거인멸 금지 및 사건 관계자들과 이 사건 소송의 변론과 관련된 사항으로 직접 또는 제3자를 통해 간접적으로 접촉·논의 금지’를 내건 바 있습니다. 
 
검찰은 해당 변호사에게 허 회장의 보석 조건을 언급하며 “접촉만으로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에 변호사는 “(증언을 하러 온) 직원이 힘든 상황에서 기댈 곳이 없으니 말을 걸었다”며 “(그에게) ‘위증하면 안 된다, 묻는 말에 짧게 대답해라, 신뢰할 만한 사람으로 보이는 게 중요하다’라고 했다”고 말했습니다.
 
서울 서초구 SPC그룹 본사 전경. (사진=뉴시스)
 
황재복 대표 ‘허 회장 말 듣고 탈퇴 종용 실행했다’ 증언
 
재판의 전환점은 지난해 6월 황재복 대표가 법정서 ‘노조탈퇴 종용은 허 회장 지시’라고 인정한 일입니다. 그동안 황 대표는 노조탈퇴 종용 작업이 본인의 단독 결정이라고 주장했다가 구속된 뒤엔 허 회장의 지시였다고 진술을 번복했습니다. 허 회장이 검찰서 “(노조파괴는) 황 대표가 결정했다”며 “황 대표가 나를 팔아 작업을 한 것”이라고 말한 데 대해, 황 대표는 법정서 “탈퇴 종용은 회장님 말씀을 듣고 했다”며 “불법적 일을 전문경영인이 하는 건 불가능하다. 불법적 일을 하는 데 어느 임원이 저를 따라오겠느냐”라고 말했습니다. 
 
황 대표는 1987년 SPC그룹에 입사해 재무·인사·총무·영업 등 분야를 거친, ‘SPC맨’으로까지 불린 핵심 간부였습니다(황 대표는 2024년 12월 그룹 인사 때 회사를 떠남). 그룹 경영에 깊숙이 관여한 2인자의 결정적 발언이기 때문에 그의 진술이 뒤집히지 않는 한 허 회장이 혐의를 완전히 벗어나는 건 쉽지 않아 보입니다.
 
반면 허 회장 측은 (노조파괴라고 불린 일련의 활동은) 사내 한국노총 조합원과 민주노총 조합원 사이에 벌어진 갈등이고, 민주노총의 불법 집회로 회사 피해가 커지자 한국노총 활동을 독려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강석영 기자 ksy@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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